인형의 집

[스크랩] 지붕 낮은 집

멀리 가는 향기 2007. 8. 9. 10:33

 

두 달이 넘도록 기운을 못 챙기시는 엄니

어떻게 하면 기분 전환 시키드릴까 생각하다가

서울 올라와 셋방 살이 전전하던 만리동을  둘러 보기로 했다.

 

 

 

 

 

 

 

 

 

 

내가 10살 되던 해 (1962년 ) 임신 중이던 어머니는

4남매 손을 이끌고

서울역 뒤 만리동에 있는  아버지의 하숙방으로 이사를 왔다. 

 

지붕 낮고 마당 깊은 이 집

주인  할매가 아이들이 많다고 하도 구시렁 데서

 어머니는 몸을 풀고 얼마 안되 다시 짐을 꾸렸다.


 

이 좁다란 골목에서 남동생들은 구슬치기를 하고 나는 고무줄 뛰기를 하며 놀았는데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눈총을 주어서

 (과외 공부  안 다니고 노는 애들은 우리집 시골뜨기들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날마다 만화 책을 빌려 오시고

만화책 삼매경에 빠질 즈음

도서관으로 데리고 다니셨다.


 

부끄럼 많고 순박한 어머니가 서울 생활 반년만에 영악한 꾀를 내셨다.

 방 두칸에 마루가 있는 길가 집을 얻으셔서 가게를 차린 것이다.

고구마도 찌고 빙수도 만들고 .....

지금 어머니의 가게집은  3층짜리 다세대 가구가 되었고 1층에 세탁소를 하고 있었다.

 

골목안 한옥들은 모두 다세대 주택이 되었는데

칠공주네 집(완쪽 자동자 세워둔 집) 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곧 출간 될 <칠공주집>소재가 되어 준 집인 셈이다.

 

"아이고 저렇게 작은 집을 두고 그때는 고래등 같은 집이라 생각했구나!"

어머니는 저런집을  장만하리라고 마음에 두고 허리띠를 졸라매셨다고 한다.

 

칠공주 집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천지 호텔 사장 본부인이

첩들이 낳은 딸 일곱에 막내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다섯번 째 첩은 호텔에서 남편과 살았다.

그러니까 내 친구도 첩이 낳은 딸이었다.

나는 언제가 이 골목안 사람들  이야기를 소재로 삼을 생각이다.

 

 

 

 

 

 


 

어머니가 허리띠 줄라매서 처음 장만 한 집이 이 집인데

4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어머니는 뜬 눈으로 밤을 지세우셨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인데,

광주 고등법원 출장을 다녀오시던 아버지와 

야간 열차  옆 자리에 앉은 여자와 악연이 시작 된 것이다.

 

그 여자는  두 번째 동거남 사이의 3형제를 고아원에 버리고

야반도주 하던 중이었고.  아버지가 들고 있던 변호사 사무실 서류 봉투를 보고

빚쟁이를  찾아 상경하는 길인데 도와 달라고 접근 한 것이다.

 

 

딸 둘 데리고 미망인이 된  불쌍 한 여자 라고 아버지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자기  딸을 서독에 보내고 공탁금을 빌리고

통정을 한뒤로는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자기 마음 대로 요리했다.

 

식당 차리고 다방 하고....

 

 

 

 

 


 

아버지의 두 집 생활이 탄로 난 다음  아버지는 퇴직금을 받아

어머니에게 이 집을 사주었다.

54평의 네모 반듯한 양옥집이었는데 지금은 길이나서 반토막이 되고 다세대로 변했다.

 

그 여자가 어머니에게 집을 사준 것을 알고는 어찌나 패악을 떨었는지

아버지는  이 집을 팔아 전셋집으로 옮기게 하고 그 돈 마저 가져다 주었다.

그 뿐만 아니다  아버지가 우리들 학비로 쓴다고 사둔 

김포 땅과 망우리 땅도 다 가져갔다.

 

바로 밑에 남동생을 데리고 그 여자가 하는 다방에 찾아갔던 날이었다.

그 여자가 우리를 보자 마자 커피 탈 물이 펄펄 끓는 주전자를 던졌다.

 

그 밤에 동생 손목 잡고 집에 오는데 남동생이 내 눈물 닦아 주면서

자기가  복수 해줄테니 울지말라고 했다.


 

 

이 때부터 우리는 아버지 없이 똘똘 뭉쳐 살았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밥벌이를 하셨고

어머니 대신 내가 살림을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한풀이를 하려면 동생들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명의 남동생들이 밖으로  걷돌지 않도록 다독거렸다.


나는 고등학교 마치자 마자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생활비를 보태고

큰 동생은 직장에 다니며 야간 대학을 마쳤고

둘째는 국비 장학생으로 대학원까지 마쳤고

막내도 4년 내내 장학생 으로 공부하고 수석 졸업까지 했다.

 

우리는 큰동생이 조선일보 기자로 취직되면서 이 집을 떠났다.

 

평안 했던 우리 가정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여자는

실버타운, 모텔, 아파트 등을 소유한 부자가 되었는데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응급실에 버리고 응급실에서 우리 집으로 연락하게 했다.

 

두번 수술 끝에 겨우 몸을 추스린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 받기로 한 돈을  받겠다고 찾아가셨다가 또 쓰러지셨다.

이번에도 응급실에 실어다 놓고 나몰라라 한 것이다.

 

그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는 날마다 지옥을 수없이 오고가신다.

우리는 지난 일 잊으리라하고 아버지를 용서 하라고 하고

어머니는 그 여자에게 분풀이를 못해 자꾸 아프시다.

 

 

참다 못한 큰 동생이 어머니의 한풀이를 해드리자고

그 여자 소유의 부동산과 통장까지 가압류 시켜 놓고 재판을 시작했다.

 

그여자가 어머니의 주장이 전부 날조 된 거짓이라 하고

 자기 자식은 국민학교 밖에 못 가르쳤어도 우리들 대학갈 학비 까지 대주었고

집도 지어 주었다고 해서 우리 어머니 또 열 받으셨다.

 

다행히 아버지가 수첩에 일기처럼 기록을 해 놓으셔서

내가 그거 일일이 찾아 조목조목 반박하고 증거로 제시 할 수있게 되었다.

 

어제밤 한시가 넘도록 장장 네 시간 동안

우리 남편 앉혀 놓고 서럽게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 하신 어머니가

"내가 남편 뺏기고 눈물로 살았지만 자식 가르친 보람이 있네 " 하셨다.

 


 

출처 : 계몽아동문학회
글쓴이 : 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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