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연희문학창작촌
후배 이옥수와 공지희가 연희문학 창착촌에 입촌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번 다녀가라는 기별을 받았는데 도무지 짬이 나지 않았다.
이옥수가 북콘서트 다녀간 직후 입원을 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연희에서 지낸다기에 지난 10일 발걸음을 했다.
창작촌 입구 벽화는 펜촉과 한글 자모들이 작가들의 창의적인 노동을 형상화 하고
연희동의 여느 단독주택이나 다름 없는 건물 안에 집필실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이옥수가 엉덩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저 아래 채에서 공지희가 원고를 붙들고 구상중이고
빠른 회복을 위해 꼬리곰탕과 영광굴비, 더덕, 명이나물, 깻잎장아찌, 호박오가리나물을 들고가 보신을 시켰다.
조만간 그녀는 훌훌 털고 일어나서 집과 집필실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강의를 다닐 것이다.
내 발걸음에 맞춰 우르르 달려와 준 난다 후배들.
작품 이야기 여행 이야기로 히낙낙 ..........
나오는길에 공지희 작업실에 들려
'직지와 외규장각 의괘의 어머니 박병선'이야기를 펴낸 후일담을 들었다.
박병선의 전기를 쓰기 위해 파리까지 날아갔던 그녀의 이야기는 산고에 다름아니었다.
프랑스가 약탈해 간 한국고문서에 일생을 바친 박병선은 애국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에서 직지를 찾아내고
그것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임을 증명 해 보이느라 5년여 연구를 하고,
마침내 의궤를 찾아낸다.
2011년 4월 14일 190종 297권의 의궤를 조국으로 데려오기까지
그녀가 벌인 사투는 참으로 눈물겹다.
그녀는 의궤를 세상에 알린 댓가로 도서관에서 해임을 당하고
자신이 프랑스에서 수집한 골동품을 내다팔며 생계를 이었다.
10여년의 세월 끼니를 거르며 한자와 이두로 된 297권의 의궤 한글 해제 작업에 매달리고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데 생을 바쳤다.
의궤반환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에게 외교부 직원은
"가만 있지 않고 왜 자꾸 일을 벌여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합니까 "했다니....
참 애국자 박병선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애쓴 공지희 작가가 대견하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