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호 소공녀
5월 5-6 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책 드라마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충무아트홀 겔러리에서 인형전을 연다.
윤석중 선생님과 방정환 선생님 작품을 작업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쁘다.
동화책 속의 감동적인 장면을 인형으로 연출하기로 마음 먹은뒤
첫번째 만든 작품이 <소공녀>다.
소공녀 사라 이야기는 10살 때 아버지 손 잡고 도서관 나들이 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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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던 사라는 아빠와 떨어져 런던의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사라는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다. 사라가 가지고 있는 온갖 화려한 물건들 덕분이지만,
그보다는 너그러운 성품의 사라가 지어내서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라의 열한 번째 생일날,
사라의 아빠가 죽고 투자했던 다이아몬드 광산도 파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민친 선생은 빈털터리 고아로 남겨진 사라를 다락방에 살게 하고 하녀 겸 프랑스 어 교사로 부려먹는다.
갑자기 하녀 신세가 되어 낡은 방으로 쫓겨난 사라는 자신만의 상상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간다.
사라는 자신이 바스티유 감옥의 죄수이고, 민친 선생은 간수, 옆방 베키는 동료 죄수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잃지 않는다.
나는 책을 통해 사라에게 '있는셈치고'놀이를 배웠다.
사춘기 때 나도 '아빠가 있는 셈치고' 내 방이 있는 셈치고' "배가 부른 셈치고'
상상놀이를 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견뎌냈다.
사라에게 있는 셈치고 놀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여학교 때 '백장미'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공녀는 내게 특별한 책이다.
사라의 낙관적인 성격과 상상력이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나갈수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이웃집 인도 아저씨가 사라가 잠든 사이에 공주방으로 꾸며 놓는 장면이었다.
소공녀
얼마나 잤을까.
세라는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깨나지 못할 만큼 깊이 잠들어있었다.
방안에 있는 뭔가가 세라를 깨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빛이 비치고 탁탁 소리를 내며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라는 몸을 일으키다말고 자리에 일어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추한 다락방에서는 결코 볼 수없는 것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라는 벌떡 일어서서 탁자와 접시 양탄자를 만져보고 침대 쪽으로 가서 담요를 만져 보았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누비잠옷을 집어 들더니 갑자기 그걸 가슴에 껴안았다가 볼에 갖다 댔다.
“따뜻하고 부드러워! 진짜 잠옷이야. 그럴 수밖에 없어!”
잠옷을 어깨에 걸치고 슬리퍼를 신던 세라가 소리쳤다.
“이것도 진짜다. 전부 진짜다! 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야!”
세라는 비틀거리며 책 더미 쪽으로 갔다. 맨 위에 있는 책을 펼치자 안쪽 표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다락방의 소녀에게. 한 친구로부터’
세라는 그 글을 읽자마자 책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세라가 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 1849~ 1924)
184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버넷이 네 살 되던 해인 1854년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어머니와 다섯 남매는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야 했다.
1865년 외삼촌의 권유로 온 가족이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주한 뒤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잡지사에 소설을 기고하기로 결심하고 원고용지 값과 우송료를 마련하기 위해 산포도를 따서 팔며 글을 써야 했다.
잡지사에 보낸 소설이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채택되었다.
그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네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글쓰기에 전념했으며
《고디스 레이디스북》이라는 여성 잡지를 통해 첫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 몇몇 잡지사에서 한 편에 10달러를 받고 한 달에 대여섯 편의 소설을 썼다.
이후 의사인 스완 버넷과 1873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 라이오넬과 비비안을 두었고,
배우인 스티븐 타운센드와 1900년에 재혼했으나 만 2년 만에 이혼했다.
1873년 의사 스완 버넷과 워싱턴 D.C.에서 결혼을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된다.
1924년 10월 29일 뉴욕 주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1886년 《소공자(Little Lord Fauntleroy)》, 1888년《소공녀(A Little Princess)》,
1909년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등이 있다.
내가 경매로 사들인 초판 본1888년)은 개정판 <소공녀>가 나오기 전에 출간된 것으로 잡지에 연재하던 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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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궤짝을 주워다 허름한 다락방을 꾸미고 침대와 식탁은 남편에게
모양 볼 필요없이 허접하게 만들어 달라 부탁했다.
사라와 베티 역의 마땅한 인형이 미국 경매 사이트에서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느 해, 서초동 토요 벼룩시장에서 알맞은 사이즈의 포세린 인형을 발견했다.
다행히 사라와 베티 역할에 맞는 옷차림도 하고 있었다.
얼굴이 똑같은 게 흠이었다.
인형을 파는 나이든 아저씨는 외제라며 새것보다 비싸게 불렀다.
두 개 살테니 깍아 달래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도 벨이 꼬여서 베티 인형만 사왔다.
베티는 흑인소녀라서 얼굴과 손발을 아크릴 물감으로 칠해주었다.
그런데 고만한 사이즈의 인형을 찾기 힘들었다.
할 수없이 토요일마다 서초 벼룩시장에 나가 베티 인형을 팔던 사람을 찾았다.
그러는 동안 반년이 지나 버렸다.
포기하고 있다가 우연히 그 아저씨를 찾았다.
인형이 그때까지 팔리지 않고 좌판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와 베티는 다시 만났다.
나는 분명 물건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외국사이트 경매를 하면서도 이제는 안달을 하지 않는다.
나와 인연이 있으면 낙찰이 될 것이고 아니면 말고 이리 생각하니 느긋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