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반사

353호 일 복 많은 사람이라

멀리 가는 향기 2012. 10. 30. 14:39

 

목요일 오후, 남동생과 시흥에 있는 소래산에 올랐다 

                   

        소래산 휴양림은 2002년도에 조성 된 것 같은데 (정상의 비석이 세워진 년도로 추측)

 세멘으로 만든 물막이용 계단이 우선 눈에 거슬렸다.   안내표지판과 조형물도 세련되지 못했고.

등산로 초입부터  휀스로 구획을 지은 배수지도 휴식 공간을 빼앗아 협소한 느낌이 들게 한다.

산을 오르면서 세멘을 바른  계단, 분명치 않은 등산로(특히 장수동 쪽 방면)와

바닥의 삐죽삐죽 솟은 돌들이 보행에 불편하고 위험했다.

어린이를 동반한 등산일 경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겠다.

 

정상 정복 이십여분 남겨두고 소래산 마애불을 만났다.

 

이 마애보살 입상은  장군 바위 위에 부처를 선으로 음각한 것인데 우리 나래 최대의 석불 조각으로 알려졌다.

조각에 새겨진 옷의 무늬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 것으로 추정한다고.

 북녁 땅에 있었으면 이곳에 김정일 이름과 선전 구호가 새겨졌을 터이다.

혹여라도 양식없는 등산객들이 낙서를 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산을 오르는 중간 중간 군부대 유격장 바리케이트가 있어 섬뜩한 느낌도 든다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산정상에 몇 번이나 올랐냐고 동생이 물었다.

고소 공포증이 있어도 백두산 천지를 굽어 보았고

스위스 하이디 마을에선  왕복 9시간 알프스에 올랐다.

 

 

 

                                           

                                  소래산은 시흥시와 인천시 경계에 있다.

                                  실질적으로 시흥의 진산으로 알려져있다.

                                  남동생이 이쪽은 북한이고 이쪽은 중국이구만 하고 백두산을 빗대어 말했다.

 

                                 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  양쪽의 뷰가 다르다.

                                 도시 계획아래 조성 된 취락지구도 아니고 우후죽순 세워진 건물들에서 느끼는 조망이니

                                생동감보다는  일상에 지친 몸을 구부려  숨 고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하산하는 길에

외곽순환 고속 국도가 소래산 허리를 자르고  끊임없이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소래산의 얼굴은 분명 시흥쪽에 있었다.

그러나 소래산은 시흥의 진산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인간들을 품어주기에 넉넉한 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금요일 오후 ,집에서 폴리마켓을 했다.

해와나무 사장님과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참석했다. 마감이라 사무실을 지키는 직원들이 유감스러워했다는...

 

  현미 잡곡 밥에 죽염소금 약간과 참기름 간으로 만든 주먹밥               새송이는 소금간 하지 않고 그대로 굽고,

                                                                                                                     연어는 통후추를 뿌려 구웠다.

 

 

오리훈제는 흐르는 물에 기름기를 씼어내고 오븐에 다시 한번 구웠다

 

 나는 먹거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 몸의 건강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장에서 만든 음료나 인스턴트, 외식을 삼가고 있다.

 

지난 번 동화세상 세미나 때 총무가 과일을 식초물에 담가서 깨끗이 씻어 왔다고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을 때,

집행부를 맡은 후배가 귀찮게 그럴것 뭐있느냐 여기서 씻어 먹으면 될 것을 &*^$ 했다. 

자기는 집에서도 아이들이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씻어먹게 한다고 했다.

듣고있던 내가 "무슨 엄마가 저래!"하고 나도 모르게 면박을 주었다.

엄마는 늘 임신부처럼 음식을 가려 먹여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그 후배가 속으로 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거리에 무신경한 주부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에 잔소리를 하게 된다.

마이동풍일 텐데도.

 

 집에 손님을 들이는 일은 번거롭다.

음식까지 대접하려면 종일 동동 거려야 하고 부실한 허리도 그만 쉬고 싶다고 아우성 친다.

 

 

몸은 피곤해도 그녀들이 맛있게 먹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입던 옷과 모자들을 벼룩으로 내 놓았다.

"이렇게 이쁜 옷을 내 놔도 서운하지 않겠어요?"

그녀들이 옷을 입어 보고 모자를 써보고 신났다.

                                                               이날 밤 백미숙이 내 인감도장을 가지러 왔다가 보고

돈 버는 방법도 여러가지시네요 해서 웃었지만,

 

벼룩으로 모인 돈은 여섯 아이를 둔 젊은 엄마의 수술비에 보태질 것이다.

그녀가 빨리 나아서(병명을 모른다니 답답하지만) 머루알 같이 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기의

부지런한 엄마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손님들이 떠난 그 밤 부지런이 제주도 여행 가방 꾸리면서 엄니한테 고생을 사서한다고 지청구도 들었다.

그래도 뭐. 내 좋아서 하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