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반사

480 회 안녕 나 간다

멀리 가는 향기 2013. 11. 19. 21:00

동생 친구, 성규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다. 향년 87세

 

35살에 혼자 되셔서 보험외판원으로 3남 1녀를 거두신 분이다.

80 넘도록 보험 일 하시면서 자식들  신세 안지고 홀로 사신 분이다.

인물 좋고 말씨 좋고  사회성 좋은  그 분은  미대 교수 막내 아들을  자랑거리 삼으셨다.

 

암 발병이후 3개월 시한부 생을  선고받고

자식들이 호스티스 병동으로 옮겨 최대한 고통 없이 가실수 있도록 마음 썼다고 한다.

당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시고도  예정된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으셨다고

자식들 불러들여  아파트와 전원주택 유산정리 깔끔하게 하시고

꿈 이야기도 들려주셨단다.

 

"예수님이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나 오셔서 좌우에서 부축해 주시더라."

숨을 거두시며 마지막  남긴 말씀은

 

"안녕, 나 간다."

 

얼마나 멋진  생의 마감인가.

당신에게 짐지워진 자식들 훌륭히 거두고 아무 미련없이 당당하고 편안히  길 떠나셨다.

아마도 그분은 그 곳에서도 극락을 즐기실 터이다.

 

 

 

우리 시어머님은 환갑 되시던 해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조실부모 하고 아홉살 때 작은어머님 따라  월남하신 분.

스무살이 넘도록 글을 몰라 찬송가 거꾸로 들고 입만 달싹 거리다가  이웃집 오줌싸게 국민학생  옷 빨아주는 대가로  한글을 배우고

 성냥개비로 구구셈을 깨우치셨다.

암 투병 중이실 때는 신문 광고지 빼곡히 한문 공부를 하셨고  이면지에 일기를 쓰셨다.

 

시어머니는 믿음이 좋으셨다. 그  먼거리를 추우나 더우나 주일을 지키셨다.

암투병 중이실 때 꿈에 예수님을 뵈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금빛 찬란한 옷을 입고 내 손을 잡아주시더라........"

그날 어머니는  객사하기 싫다고 집으로 가자고 고집하셨다.

그리고 4월 6일에 퇴원해서 8일날 운명하셨다.

 

어머님 손 잡고 임종을 지켜드리는데  온기가 발끝부터 빠져나가  코끝에 보라빛으로 남았을 때  "고맙다." 한 마디 하셨다.

어머님 눈을 감겨 드리면서  보았다. 

마지막 어머니 얼굴이 스무살 꽃다운 처녀 얼굴처럼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하게 변한 것을.

 

시어머님과 남편의 임종을 지키면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사람의 목숨이 찰라이기에 더욱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점칠수없기에  하루를 허투루 보내면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림자처럼 내 등뒤에 붙어있는 죽음이 언제 찾아 올지 모르기에 오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