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반사

596호 김장

멀리 가는 향기 2014. 11. 30. 12:11

 아파트로 이사 온  뒤로 임실 이모님이 담가 주시는 김장 김치를 받아 먹었다.

이모님 김장은 시골 할머니들이 모여 품앗이로 하기에 짜고 맵다. 그리고 MSG가 들어간다.

이모님이 맘 써주시는 건데 마다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핑계 거리가 생겼다.

외삼촌 댁 김장을 해주시게 되어 우리 것은 하지 마시라 했다. 

 

김장 디 데이는 아파트 안에 장이 서는  수요일로 잡았다.

전날 밤 주문한 해남 절임배추  두 박스 (18 포기)도 배달 되었다.

 

아파트 안에 장 서자마자 무우 갓 미나리 등 등 사다가  어머니 더러 다듬어 달라해서

식탁에 올려 놓고 서서  배추 속을 버무렸다. (앉아서 하는 것 보다 허리가 덜 아프고  작업능률이 오른다.)

나는 시어머니께 배운 아삭아삭하고 슴슴한 이북식 김치 좋아하는데,

엄니는 젓갈과 양념 진하게 넣은 전라도식 김치를 좋아하신다. 

속 버무리는 사이 엄니가 액젖을 주르륵 쏟아 부었다. 

내가 짜서 어떻게 먹냐고 성화를 받쳐도 "짜야 맛있지." 하시면 끝.

엄니 안 볼 때 무하고 배 썰어서 넣고 홍시를 갈아  간을 맞췄다.

 

 

우리 자랄 때는 집집마다 백포기에서 백 오십 포기 배추를 리어커로 실어 날랐다.

 배추 절이는 일이 제일 고역이었다. 새벽에 나가 절인 배추를 위아래 뒤집을 때는 고무장갑을 꼈어도 손이 곱았다.

 

기자촌 시절에는 어머니가  텃밭에  기른 배추를  형제들이 나눠 먹느라

마당에 장작불 피워 놓고 배추 속을 넣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 힘이 장사여서 땅에 묻은 항아리에 까지 꾹꾹 눌어 채웠다.

배추김치, 꼬들빼기 김치, 백 김치, 동치미, 총각김치, 파김치,  팔 다리 허리가 무너지도록 담았다.

남정네들은 마당 한 쪽에서 고기 구워 배추쌈 먹느라 시끌 벅적.

 

예전에 비하면 요즘 김장은 김장이라 할 수도 없다.

배추를 절여서 배달해주고 , 손절구에 찧던 마늘 생강도 믹서로 드르륵 갈아 버리니 천하 쉽다.

그런데도  젊은 엄마들은 시댁 가서 김장 하고 죽을 뻔 했단다.

우리 엄니 말 마따나 죽으면 썩어질 몸인데 어찌 그리 몸들을 아끼는지......

그래서 나는 애들에게 소문내지 않고 거사를 치뤘다.

 (새댁 때 처음 김장을 거들고  손이 화닥거려 잠 못 잔 기억이 나서다.)

나중에 기운 떨어지면 그때 애들 힘을 빌리지 지금은 견딜만 하다.

 

무청 김치는 전라도식으로  미나리, 쪽파 갓 넉넉히 넣고  멸치액젖으로 버무렸다.

"이 놈이 익으면  밥 숟갈에 척척 걸쳐서 묵으면 밥도둑이다."

 

김치통에  무청 김치를 담느라  방심한 사이에  어머니가  배추김치에 웃소금을 팍팍  뿌려 버렸다.

남동생이 소금통을 감춰 버리라던 말을 깜박했다.

김치 담글 때마다 엄니하고 소금 전쟁을 치뤄야 한다.

올 해도 또 무우 잘라서 배추 포기 사이 사이 박는 수 밖에 .

엄니 식성에 맞게 짜고 맵게 담근 김치는 김치통에  파란  딱지를 붙여 표시 해놨다.

위가 탈이 나셔서 덜 짜게 잡수셔야 하는데 ............ 우리 엄니 식성은 아무도 못 말린다.

(식욕과 성욕 절제가 제일 힘들다던데 맞는 말이다.)

 

 

 김장 설거지 마치니 오후 3시. 

이모님 김치를 받아 먹을 때는 삼십만원을 부쳐 드렸는데  내 손으로 하니  십일만원 정도가 들었다.

김장 걱정 거리 하나는 덜었다.

 

 

남들은 김장 하는 날  돼지고기 수육과 굴 쌈을 먹는데,

우리 엄니는 가리는 음식이 아..........주 많아서 

엄니 좋아하시는 묵은지 등뼈찜을 물렁물렁하게 해드렸다.

 

 

"나는 한 것도 없는데 허리가 아프다."는 엄니 말씀에

북한산 온천에 가서  혓바늘 돋고 뭉쳤던 어깨를 풀고 왔다. 

걱정거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