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호 추억을 정리하다
연휴기간 동안 짐 정리를 시작했다.
기자촌 단독주택을 떠나 올 때도 엄청난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아파트 협소한 공간에서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산 우드박스안에 보관하던 귀중품( 값나가는 보석도 아니면서 )을 꺼냈다. 아이들 목소리 녹음 테이프, 방송 출연 녹화 비디오 , 아이들 배냇저고리, 미아 보호용 은팔찌...........
친정 아버지가 필사한 삼국지.
아버지가 밥벌이를 위해 얇은 미농지 서류에 철필로 필사한 글씨들은 인쇄 한 듯 반듯했다.
아버지가 쓰신 가계보 .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어떤 삶을 살다 가셨는지. 아버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 일가를 이루셨는지, 우리 형제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기록해 두셨다.
남편의 중고등학교 개근상장, 반장 임명장. 내가 중 고등시절에 받은 글짓기 상장들.
남편이 그린 설계및 작업 스케치.
그리고 스크렙북들.
우리부부의 연애편지 묶음, 승환이가 군대에서 보낸 편지, 중학교 은사님과 주고 받은 편지, 고등학교 은사님의 편지,대만 증 선생의 편지 ...............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군에 간 남편에게 보낸 편지는 남편 혼자 읽지 못했다.
내무반 군바리들이 돌려가며 읽는 연애편지가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그 편지들을 어렵사리 간직하고 있다가 휴가때 가지고 나와 집에 보관했다.
남편 입영하고 두어달 지나 나는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이등병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줄 알고 애가 탔고..... 나중에 사고 소식을 알고 인편에 편지를 보냈다.
그 시절 연애는 주위 사람 눈에 뜨이면 집안망신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외출할 때 5학년짜리 막내 남동생을 껌딱지처럼 붙였다.
입대 전에 친구들과 관악산 등산을 했는데 그날 남편은 5학년짜리를 업고 청계산으로 넘어왔다.
그때 막내 처남이 정이들었는지 군사우편 편지마다 두현이 소식을 묻고 편지도 동봉 했다.
내가 보낸 편지와 남편의 편지 묶음을 읽다가 우리 청춘시절의 유치한 고뇌들을 이제 그만 버리기로 했다.
승환이 아름이 일기장을 모아두었는데 들춰보다 웃음이 터졌다.
37살에 친구 따라 백일장에 나갔다가 상을 타고,
심사를 하신 정채봉 선생님께 동화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문학아카데미 1기생으로 동화 창작 수업을 받았는데 아름이는 엄마가 집을 비우는 것을 무서워 했다.
남자는 여자보다 철이 늦게 든다. ㅎㅎ
아름이는 천식으로 고생을 해서스트레스 받을 까봐 학원에 보내지 않았는데
학원에 다니는 오빠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망설이다가 아이들 일기장도 몇 권만 남기고 버리기로 했다.
어제 오늘 내일 .........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하루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