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1회 닭 호텔
월송리 집의 닭들을 판대리로 옮기려고 닭장을 지었다.
거푸집에 쓴 목재들을 재활용해서 짓는 거라 손이 많아 가는 작업이었다.
대못을 빼내고 목재에 묻은 세멘을 사포로 긁어 내고
크기가 제각각인 판재들을 모자이크 하듯 이어 붙였다.
경사지 축대를 바람막이 삼아서 지었다.
밑에서는 2층 위에서는 단층 구조.
동생이 뼈대를 세우는 대로 짬짬이 페인트 칠을 했다.
높은 곳의 칠은 이 목사가 거들었다.
공작이 있어 한 쪽은 박공지붕, 다른 쪽은 슬래브 평판 지붕에 유리를 덮었다.
지붕에 2겹 비닐 덮을 때 마침 이 목사가 와서 잡아주었다.
뒷면에도 비닐을 덮고 골프장 나일론 망을 덮어 씌웠다.
폐목재로 동생 혼자 짓다보니 2달 가까이 고생을 했다.
양계 농가의 비닐 하우스 닭장에 비하면 호텔이다.
닭들이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닭들을 철망에 넣어 옮기는 일도 야단 법석.
긴꼬리 닭 수탉이 2마리인데 병아리들 아빠가 누군지 알겠다.
동물들도 감정이 있는 건 분명하다.
공작은 암컷이 탈출한 뒤로 수컷만 두 마리 .
.
며칠 전 금계가 나갔는데
새 집에 익숙치 않아 집을 못 찾아 오고 있다.
제일 예쁜 놈인데 서운해 죽겠다.
파란색 알을 낳는 청계들과 칠면조 한 쌍도 이사를 마쳤다.
동생은 판대리 정원에 관상닭과 공작을 풀어 놓고 싶어 한다.
새끼 때부터 순치를 하면 가능 하다고 .
12월 22일 이 목사 송별 모임을 했다.
구룡동 김덕건 교수와 인력사무실 원사장과 재호 총각도 합석했다.
이 목사가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집사람이 작가님댁 일 좀 거들어 주라해서 왔다가.............
판대리에서 열체크 일을 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20년 12월 게르 지을 때 일손 거든 것을 시작으로 일년 동안 판대리 현장에 드나들었다.
"목사님, 이사가시면 할머니가 제일 서운 하시겠네."
원사장이 말했다.
"이 목사가 왜 안오냐?" 하루에도 두 세번 물으셨다.
어머니는 겨울 동안 출근 안 하는 이 목사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 이 목사한테 전화 해서 근처에 오면 들르라고 해라." 하시기도.
"목사님이 외할아버지를 닮았어." 아름이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아버지처럼 점잖고 다정다감한 성품이라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 같다.
목회 스트레스를 등산으로 풀었다는 사람.
날마다 저녁식사후 2시간 씩 걷기로 건강 관리 하는 사람,
70이 되도록 노래방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
유일하게 아는 유행가 '동숙의 노래"를 이불 뒤집어 쓰고 들었다는 사람,
껄렁해 보일까봐 청바지도 안 입는 사람,
주식, 대출 권하는 스팸 전화에도 " 미안합니다" 하고 끊는 사람.
그는 은퇴 후 얻은 자유 시간을 판대리에서 행복하게 보냈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 세 식구 말동무도 생기고 놉을 얻은 셈이라 적적하지 않았다.
유아교육과 김교수는 '일하지 않으려고' 구룡동에 터잡았다고 한다.
그는 날마다 애견을 끌고 산에 오르는데 6키로씩 걷는다고.
이 목사가 산에서 김교수를 알게 되어 나하고도 친구가 되었다.
이 목사도 구룡동 산에 날마다 가다시피 했었다.
새소리 녹음하고 흰개미집 동영상도 찍어서 보여 주고
멧돼지 다섯마리 만난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다.
구룡동과 판대리 마을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낸 이 목사는,
오크벨리 넘어오는 출퇴근길 풍광을 잊지못할 것이다.
폴리쉬 수탉과 토종닭 훼가리가 서열싸움을 했다.
폴란드 닭이 도망가고 토종닭이 뒤쫒아가는 걸 지켜 보던 남자들이 폴란드를 이겼다며 박장대소.
코로나와 진흙탕 대선으로 우울한 년말 닭들이 웃겨주었다.
2021년은 내겐 잊지못할 해다. 호미, 삽, 괭이들고 흘린 땀이 얼만가.
힘에 부쳐 병원 신세를 졌지만 사람 손으로 일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주는 행복도 맛보았다.
나이드는 것을, 늙어 간다는 것을 인정한 해이기도 하다.
2022년이 밝았다.
온 세상에 검은 호랑이 기운이 뻗혀서 역병으로 고생하는 일없이
평온한 나날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