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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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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강연

우리 할아버지입니다

멀리 가는 향기 2012. 2. 6. 15:21

 

                                                                                       2005.10

 

편집자  김혜선 씨가 가 찾아와서  손기정 스토리를 그림책으로 만들자고 했을 때

나는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운동에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위인전이나 평전류의 글은 자칫 왜곡 과장될 우려가 있어 쓰고 싶지 않았다.

 

편집자들의 끈질긴 설득에  마지못해 손기정 선생의 유품과 자료들이 전시된 손기정 재단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옆에 선 두 남자를 만난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젊은 남정네는  손기정 선생의 외손자 이준승이고

퍼머 머리의 다빈치를 닮은 남자는 강형규 화백이다.)

 

나는  강형규의 그림을 눈여겨 보아온 터라

그를 대면하는 순간  그의 눈빛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나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강형규 화백의 별명은 '쾌걸 조로'((조숙하게 늙었다는 ) 그는 나보다 두살 손 아래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일 때(1965년) 텔레비전에서 동경올림픽 실황을 보았단다.

( 부산에서 동경  방송이 잡혔고  당시 그는 텔레비전이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동경올림픽 실황 중계는 그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렇게 대단한 올림픽 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을 흠모하게 되었단다.

그때부터 손기정과 베를린 올림픽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4학년 소년에게 흠모의 대상이 생겼다는 건 축복이다.

 

그가 그린 극 사실주의의 손기정 얼굴은 마치 살아있는 듯 하다.

지금 그는 손기정 평전을 쓰고 있으며 손기정 기념재단을 설립하기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할아버지 입니다>를 진통 끝에 탈고하게 되었고,

화가 김재홍의 재주 많은 손을 빌려 '그레이트 손'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넘어지는 거 겁내지 마라. 무릎이 까지고 피도 나봐야 잘 달릴 수 있지."

 

"네 앞에 가는 사람도 너만큼 힘들고, 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너보다

 더 힘들단다."

 .........................................................................................

 

몇달 전에 벼르고 벼른 책이었는데 이제사 읽게 되었다. 

표지 그림은 석양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는 손자를 잡아주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제목과 표지만 보면 그렇게 평범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이 책이 보통 책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그림 얘기부터 먼저 하자면, 마치 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사진을 옮겨놓은 듯 실사에 가까운 그림이 현실감을 더 불러준다.  이 책의 이야기만큼이나.

초반에는 인자한 할아버지, 다정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일상이 묘사된다. 

 운동회에서 열심히 달리는 손자에게

"네 앞에 가는 사람은 너만큼 힘들고 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너보다 더 힘들다."라는 말을 해준다. 

 한번 쯤 더 곱씹어 볼 이야기다.

 

어느날, 골목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동네 형으로부터 손기정 선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인상적이었던 그 이야기를 저녁 식사 시간에 했더니 식구들이 모두 웃는다. 

 그 손기정 선수가, 바로 소년의 할아버지였으니까.

그제야 소년은 벽에 걸린 사진 한장을 눈여겨 본다.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있지만 꼭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슬픈 사진. 

소년은 할아버지로부터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의 사연을 듣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사건, 그리고 일장기 말소 사건 등등의 이야기가 소년의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56년 뒤, 할아버지의 후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건이 서술된다. 

 바로 황영조 선수의 이야기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이름들이,

이 동화책 속에 역사가 되어 들어가 있다.

제목은 "우리 할아버지입니다"였는데, 마지막에 마무리 할 때는 "우리 할아버지는 손기정입니다."로 끝맺는다.

그 짧은 문장이 얼마나 많은 여운과 슬픔과 감동을 주는 지,

노년의 손기정 달리기 하는 모습을 그려놓은 페이지에서 뒷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바로 뒤는 '손기정이 달려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1912-2002년까지의 여정을 짧게 서술해 주었다.

그가 우승 후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슬프다"라는 한 마디가 적혀 있었고,

그에게 예비되었으나 받지 못했던 기원전 600년의 그리스 청동 투구 반환 사건도 짤막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1950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그가 키운 후배들이 1.2.3위를 차지한 눈부신 순간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 책은 실제 손기정 선수와 그의 외손자의 이야기를 작가가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구성한 책이다. 

 따스한 동화이지만 그 자체로 이미 역사적 얘기가 되어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교육적이고도 감동을 함께 전하는 아주 멋진 책이라고 거듭 강조하겠다.

책의 질감도 고급스럽고 색감도 안정된 갈색톤으로 깊고 고요한 향이 나는 듯하다.

 

                                                                                                     독자 리뷰  ...........마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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