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5일 2시, 광주 송정역에 모인 계몽문학회& 황금피안들은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행 대절 버스 타고 <담양 가사문학관>에 도착.
| 가사문학관에는 담양권 가사 18편을 비롯하여 가사 관련 도서 4,500여권과 유물 200여점, 목판 535점 등 귀중한 유물 전시 문학관 주변에는 식영정·환벽당·소쇄원·송강정·면앙정 등 호남 시단의 무대가 자리잡고 있다. |

계몽문학회 최고령 회원 허호석 (90) 선생님도 오셨다.

'인문학 사전' 손동연 시인의 입이 열렸다.
눌재 박상, 소쇄처사 양산보,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등 조선 사대부 가사문학 대가들의 일화가 줄줄....
주변에 송순이 머물던 면앙정, 정철의 식영정, 환벽당 , 소쇄원 등은 가사문학의 산실이었다.

정극인의 '상춘곡'을 가사문학의 효시라는데
조선 후기에는 실생활에서 소재를 얻은 평민과 부녀자들이 주도 하였을 정도.

2002년 12월 28일~29일 계몽식구들과 담양 일원을 돌아쳤는데 실로 24년 만이다.
당시에도 손동연 시인이 가이드 했는데 고등학생이던 아름이가 손 시인의 강의에 폭 빠져서
"EBS에서 일타 강사로 모셔야 한다"고 ,뿐만 아니다 홍종의 작가 아들도 교수님 강의 귀에 쏙쏙 들어 온다고 ......

연산군을 밀어내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조광조는 도덕적인 정치,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훈구세력의 반격으로 기묘사화 직후 조광조는 유배 되었다 사사된다.
양산보는 스승의 사사와 동지들의 희생을 열일곱에 목격한 후 그 원통함과 울분을 참을 수가 없어 낙향과 은둔의 길을 선택.
그는 산수 좋은 무등산 아래 '깨끗하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원을 짓고 속세에 살았다.

양산보와 김인후는 서로 뜻이 맞아 아들과 딸을 나누어 사돈이 되었다.
김인후는 소쇄원에 여러 달 머무르는 동안 <소쇄원사십팔영>을 지었다.
“소쇄원을 지은 사람은 양산보이고, 그 소쇄원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은 김인후이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

제월당에 걸린 <소쇄원사십팔영>
제45영 平園鋪雪(평원포설) - 넓은 뜰에 깔린 눈
不覺山雲暗(불각산운암) 어둑한 산 구름 미처 몰랐는데
開牕雪滿園(개창설만원) 창을 여니 뜰에 눈이 가득하네
階平鋪遠白(계평포원백) 섬돌에도 두루 하얀 눈 쌓이니
富貴到閑門(부귀도한문) 부귀가 이 한산한 문에 왔구나

손시인은 그곳에 심겨진 나무들이 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를 이치에 맞게 설명했다.
그의 박학 다식은 풀과 나무 오리 화투.... 목이 쉬도록 이어졌다.

담장은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도록 자연 이치에 맞게 설계했다고.
우리 일행을 졸졸 따라다니며 곁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
저 선생님 강의는 일년에 몇 번하며 어디서 하냐고 물을 정도.

남도 한정식으로 피로를 풀고

대나무 숲 속 황토방을 숙소로.

일 년 만에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은 회포를 풀고

돌아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명은숙이 타로 공부를 했다기에 언제 쯤 꼬인 일이 풀릴지.......

다음날 일정은 죽록원.
향기통신 열혈 독자 김영미 시인은 아름이 원피스 리폼한 걸 보고 "향기 샘은 영국에서 오신 것 같아요."

10만 여 평의 대숲.

18년 3월, 교토의 치쿠린 대숲보고 좋다했는데 천양지차.

대나무 그네 ㅎ

우리는 의리 남매.

내년 봄을 기약하며 헤어짐이 아쉬운 우리.

왕대나무 죽순이 여기 불쑥 저기 불쑥
어쩌다 터 잡은 수목은 가지를 뻗지 못하고 외대로 큰다.

대나무 껍질을 생전 처음 만져 보았는데 갓 태어난 짐승 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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