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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여행의 추억

청소년 몽골 에코투어팀 브리핑 자료

멀리 가는 향기 2010. 6. 7. 08:34


 

인천 마중물 독서당 어린이들은 4년 째 캄보디아에 매달 200만원씩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평소에  칭찬 받을 일을 해서 모은 용돈으로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후원한 캄보디아를 체험하기 위해  여름, 겨울 방학 스터디 투어를 하고 있다.

 

마중물 독서당 아이들 가정형편은 서울 아이들에 비하면 부유한 편은 아니다.

다만 책을 즐겨 읽어서 인천시 독서영재들이 많고 학교 성적이 좋은 모범생들이다.

 

 

 

 

우리 일행들이 준비한 구호물품들

 

 

공항에 마중나온 레지나 수녀님은 중학교때 고아원 봉사를 다니다 만난 요한이를 남동생으로 입양한 전력이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 할 수 없자 대학 진학을 위해 수녀가 되었다.

도시빈곤층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고 지금은 캄보디아 최고 빈곤층이 사는 쁘레이뱅 마을의 대모가 되었다.

그녀는 종교색을 배제한다. 하느님을 입에 올리지 않고도 인간의 사랑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수도 프논펜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쁘레이뱅 마을에 가져갈 자전거 10대를 사고(수녀님 친구분의 후원금으로)

 

 

 

 

 

서점에 들러 자기 용돈으로 기증할 동화책을 사고 있는 아이들

 

 

구호물품 46박스를 싣고 쁘레이뱅 마을에 도착한 일행

 

 

 

마을사람들에게 빌려주었던 대출금을 상환 받고 또 다시 빌려주는 마중물 박봉숙 학원장

 

 

소를 무료로 분양 받은 가정에서 새끼를 낳으면 다른 가정으로 다시 분양하고

 

 

마을 어린이들에게 회충약을 먹이고

 

준비해간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맨발로 다니던 아이들 거친 발에

 

구호물품은 보물이 되었다

 

 

 

마을 위원장 집에서 숙식을 했는데 부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하루 2끼를 먹는다. 점심이라는 말이 아예 없다고 한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닭을 잡았다.

 

 

땔감을 해오는 아이

 

 

손님상이 이렇게 소박하면 그네들의 식사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우리들의 식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저절로 느끼게 된다.

용진이는 집에 돌아가면 반찬투정을 하지 않겠다해서 일행을 웃겼다.

 현지식을 나 다음으로 제일 잘 먹었다.

 

 

입이 까다로운 아이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 따로 식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물파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흙을 나르고 벽돌도 나르고 자갈도 나르고.... 혼자하면 힘들지만 둘이하면 즐겁다.

 

자기가 후원하는 가정의 우물에 이름을 새기고 그집 식구들과 기념촬영을 한다'

펌프식 우물 파는 비용은 30만원. 19명 일행중에 12명이 우물을 후원했다. 

 

 

이집 가족은 동환이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아침마다 감사 인사를 한다고 했다.

 

제작년에 파준 동환이 우물 앞에선 동환이 누나 강희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동환이 우물물로 농작물을 키워 농장을 만들고 살림이 늘었다고 자랑하는 리나네 가족으로부터 모닝글로리를  받은 것이다.

 

 마중물 어린이들의 후원금이 희망의 결실을 본 사례는 많다. 

대출금으로 장사를 하고 등록금을 내고 집수리를 하고 형편이 나아진 가정이 늘고 그뿐인가 .우리가 선물한 자전거로 8시간 통학을 하고도 장학금을 타는 대학생이 나오고 ....

브레이뱅 마을의 기적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우리가 다녀온 뒤에

훈센총리 상을 타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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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수녀님 최근 서신.

 

김천호 이해경씨의 도움을 받아 집에 우물이 생기자 시작한 일은 국수가게입니다.

맑은 물을 이용하여 이른새벽에 국수기계에서 국수를 뽑고, 육수를 만들어 한그릇에 500리엘씩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지런히 야채를 길러 매일 마을장터?에 내다팔면서 날마다 조금씩 수입을 올리기 시작하셨답니다. 이른아침 아이들과 프놈펜으로 나오는데 고맙다시며 방금 따온 야채를 한아름 주셨습니다. 그리곤 아침 국수장사를 하러 부지런히 달려가셨지요.

 

얼떨결에 받은 야채를 놓고 아주머니 집에 가보니 맛있는 국수를 사먹으러 사람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한그릇 500리엘에 사먹고......

뒷밭은 가지가지의 야채로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큰딸은 학교를 가기위해 준비하고 나오고......

 

얼굴에 한아름 웃음을 머금고 일을하고 계시는 아주머니의 감사인사를 제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신 야채는 맛있게 무쳐서 제가 꼴각했습니다.

이렇게 뇌물 받아먹다가 언젠가 저도 청문회에 서게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화장실 후원은 12만원. 이곳 화장실은 빗물을 받아뒀다가 휴지 대신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친환경 화장실.

 

유치원에 들러 우리 전통 놀이 방법을 시연하는 아이들

 

뒤집기 인형을 이용해서 이야기도 들려주고

 

탈춤도 보여주고

 

리코더, 오카리나 연주도 하고 막춤도 추고 장기자랑을 선보이는 아이들

 

일교차가 심해서 밤이 되면 침낭속에서도 떨어야 하고 먹는 것 씼는 것도 불편하고

집 나오면 X개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한 아이들.

그래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잘 참고 견뎌 주었다.

봉사활동을 끝내고 관광을 위해 6시간 버스를 타고 호텔에 여장을 풀자 ,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뛰어들며 천국에 온 것 같다고 환호성이었다.

 

 

수도 프놈팬의 왕궁과 박물관에 들러서 6.25 전쟁때 우리 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했던 캄보디아가 세계 최빈국이 되게 된 배경을 들었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세계1위인 나라 캄보디아.

아이들은 그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유네스코 셰계문화 유산인 앙코르왓을 둘러본 아이들은 캄보디아의

두 얼굴을 보았다고 감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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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기행문             

                                               중2 조세목( 사진속 푸른 줄무늬 티셔츠 남학생)

.....생략

 

다음날 봉사 활동을 위해 떠난 프레이벵 마을은 충격적이었다. 먼저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 우리와 너무 달랐다. 집은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잘 사는 집은 나무 네 개를 받침으로 위에 양철 지붕을 올렸다. 못사는 사람들의 집은 야자수 나무의 잎사귀를 이용해 지붕을 만들고 얇은 나무로 집을 받쳤다. 캄보디아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나눠지는데 우기 때 어떻게 저 집이 버틸 수 있을지 의심됐다.

 

그들이 마시는 물은 더 놀라웠다. 가정 집 앞이나 옆에는 큰 구덩이들이 있는데 그 구덩이에 우기 때의 물을 저장해서 식수나 생활 용수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흙을 파내서 만든 구덩이여서  물은 흙뿐만 아니라 기생충까지 섞인 더러운 물이다. 그 물을 씻고 밥 짓는데만 쓰는 게 아니라 떠서 마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황당했었다. 개와 소와 돼지와 사람이 같은 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항상 당연하다고 여기는 하얗고 맑은 물을 캄보디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하수는 풍부하다는데 그것을 끌어 올릴 기계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들의 옷차림은 항상 허름했다.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찢어진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녔다. 명품을 찾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정말 언제 빨았는지 의심되도록 때가 묻은 더러운 옷들이 그들에게는 그저 평범했다. 나는 가져온 옷이 부족해 약 이틀 동안 같은 옷을 입었던 적이 있는데 정말 냄새가 심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옷을 빨아 입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충약을 주고 빵을 나눠주고 나서 옷, 신발, 목도리 등을 나눠줬다. 주로 어린애들에게 구충약을 먹여주었는데 약을 처음 먹어보는 듯했다. 어떻게 먹는지 그리고 이 약이 어떻게 이로운지 그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언어의 장벽은 컸다. 말이 안 통해 도울 수 없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공부해온 영어 공부가 이곳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옷을 나눠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바로 ‘삼성아이 유치원’이란 표시가 있는 옷이었다. 내 동생이 입던 옷이었던 만큼 그에 맞는 체구의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옷을 줄 아이를 찾고 있을 무렵 한 아이가 나한테 와서 손가락으로 옷을 집고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옷을 자기한테 달라고 하는듯해 옷을 주었더니 몇 번이나 감사의 표시로 두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정말 저런 옷을 받으면서 기분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을 보니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아이의 옷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에는 우물 파는 곳을 방문하러 갔다. 엄마가 30만원을 내고 우물을 파기로 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솔직히 그 우물이 엄마한테 이득이 되는 것도 없을 텐데 평소에 그렇게 절약 생활을 하던 엄마가 선뜻 그런 돈을 내셨다니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마가 매달 4만원의 후원금을 냈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차를 한 30분 정도 타고서야 우물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집을 딱 들어서는 순간 난 또 다시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인간과 가축간의 구분이 없는 집의 풍경이었다. 소, 돼지, 개뿐만 아니라 바닥에는 그들의 변까지 함께 있었다. 내가 잤던 곳보다 더 더러운 집이었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갔다.

 

건기 때문에 딱딱해진 흙을 삽으로 파서 우물 주변에 놓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나도 옆에서 삽으로 흙을 파봤는데 얼마나 딱딱하던지 삽이 잘 안 들어갔다. 그렇게 일을 하고 우물 작업이 끝나자 사진을 찍었다. 우물 옆에는 ‘Korea 2010.02.07 조세목’ 이라고 썼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데 옆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계속 나만 바라봤다. 저 사람들은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우물을 파는 작업이 단지 누군가를 위해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사실 비록 우리 가족이 돈을 냈지만 만드는 작업은 그 집 사람들이 했는데 떡하니 내 이름을 써놓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부끄러웠다.

 

돌아오는 내내 오토바이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삶이 저들보다 질적인 면에서는 높다고 해서 우리가 저들보다 더 행복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보다 풍요로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욕심은 더 내게 되고, 경쟁적인 교육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과연 이런 삶이 저들처럼 그저 먹고 사는 걱정을 하는 삶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쁘래이뱅의 밤은 아름다웠다. 서울의 밤하늘에선 볼 수 없는 별이 보석처럼 하늘에 박혀 있었다. 밤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별자리를 더 보고 싶었지만 몸이 많이 지쳐 그냥 잤는데 아쉬웠다.

 

캄보디아에 쁘래이뱅은 같은 마을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똑같은 나이에 같은 사람인데 단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이렇게 다르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모르겠다.

 

쁘래이뱅의 생활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 지구에 나처럼 풍요롭게 사는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처럼 불쌍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 사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같은 지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상은 소수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가 올바른 정치를 한다면 아름다운 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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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 우물파기 한 조가 된 녀석들은 5학년 나현빈과 3학년 정준이  이용진이었다.

 

나현빈은 공부엔 취미가 없어 독서당도 엄마 성화에 억지로 끌려다녔지만  내 책 <바람은 불어도>를 읽고 사인을 받겠다고 여행가방에 챙겨온 녀석인데 사회성은 일행 중에 최고였다.

 제일 열심히 무거운 구호품 상자 나르고  벽돌 나르고 자갈 다지고. 쁘레이뱅 마을 사람들한테 백돼지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가장 인기가 좋았다.(그곳 사람들은 피부가 하얗고 살집이 좋은 사람을 부러워 한다)

 

일주일 먼저가서 젠스리 형에게 배운 크메르어 실력으로 아이들이 쇼핑할 때 물건값을 깍아주는 등 대활약을 했다.

 

다음은 나현빈의 글 일부를 옮긴 것임. 그동안 학원에서 쓴 글 중에 최고로 길게 썼다고 스스로 대견해 했다.


 

나현빈( 평상에 앉은 얼굴 허연 잘 생긴 녀석)

 

............ 생략

 

처음에 엄마 아빠가 "캄보디아 갈래?"하고 말씀 하셨을 때,

“응 갈래 그 대신 빨리 보내줘!” 라고 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서였다.

“그 대신 너 혼자 가는 거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혼자 비행기를 탔는데 점점 더 긴장이 되어왔다. 좀 자고 일어났는데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2시 간격으로 2번을 토했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1등석을 타고 캄보디아에 도착을 했다.

 

나는 캄보디아에 2주일 있었다. 엄마는 다른 아이보다 먼저 가서 느끼고 좋은 경험을 하길 바라셨다. 나는 투어 팀이 올때까지 기다리기 지루했다. 다행이 타게오 공방에 손님이 많아서 덜 심심했다.

곡성에서 오신 곡성댁 아줌마는 한국으로 시집온 캄보디아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치신다. 그런데 캄보디아가 궁금해서 오신 분이다. 그런데 이 곡성 아줌마의 아들인 호원이는 활기차고 진짜 시끌시끌하다. 어떤 때는 우리를 웃겨주고, 어떤 때는 우리를 짜증나게 한다.

 

이석재 선생님은 프레이벵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이석재 선생님은 캄보디아 사람이 타는 택시를 탔다. 그런에 택시에 13명이 탔다는 것이다. 발밑에서 사람이 앉아서 다리를 내려 놓지 못하고 계속 있어야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캄보디아를 여행하다 보니 13명 탄 택시를 흔하게 볼 수 있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젠스리 형이 제일 좋았다. 누나들은 쉴 때 놀아주지 않고 백돼지라고 놀렸다 젠스리 형은 나랑 잘 놀아주고 가장 반겨 주었다. 젠스리 형이 보고 싶다.

다음에 캄보디아에 갈 때는 꼭 스터디 투어 팀이랑 함께 갈 것이다. 형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했던 놀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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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빈은 여행 다녀온 뒤 젠스리형에게 대학 등록금 50만원을 보냈다.

자기가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해서 갚기로 하고 엄마한테 꾸어서 보낸것이다.

 

 

 

3학년 용진이는  체구가 작아 계집애들과 형들한테 막내취급을 당해 맺힌 게 많았다.

여행 내내 현지 음식을 제일  잘 먹었다. .

쁘레이뱅 음식이 조미료도 안들어가고 직접 키운 채소로 만들어서 웰빙식이라는 내 말에

아이들이 남긴 반찬도 꼭꼭 씹어서 다 먹었다.

 작은 거인 용진이는 심성이 착해서 현지 아이들에게 공깃돌 놀이를 가르치며 잘 놀았다.

 

반면 인천시 독서영재인 정준이는 사회성이 부족한 편이라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자기가 마실물은 자기가 챙기라고 누누히 얘기 했건만 들고 다니기 귀찮다고 홀짝 마셔버리고는 ,

구호물품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는데 "선생님, 내 물 없어요. "하고 징징거렸다.

결국 남의 물까지 거덜을 내고 말았다.

 

그 정준이가 내게 부탁을 했다.

"선생님 쁘레이뱅에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써주세요.

맨 앞에는 <레지나 수녀님과 마중물 아이들과의 봉사여행을  추억하며> 라고 헌사를 써주시고요.  등장인물도 우리들 실명으로 해주세용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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