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티 테이블은 인도네시아산 목각 상자인데 그 속에 보물이 가득 들었다
우리 아이들 육아 기록, 아이들 일기장, 탯줄주머니, 장난감,가방, 옷, 친정아버지가 필사한 삼국지....
아름이가 사춘기때 한 말이 있다.
"엄마랑 싸우고 신경질 날 때 일기장 모아 놓은 거 봤어. 그러면 엄마가 나 사랑하는거 다 보여서 화가 풀렸어,"
<꿈나무>는 아들 육아기록이고 <꽃잎>은 딸애 육아기록이다.
27살에 엄마가 되었을 때 겁이 났다. 엄마 노릇을 잘 할 수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입덧을 심하게 해서 남편은 차라리 입양해서 키우자고 할 정도였다. 꼼짝 못하고 하루종일 누워 있으면서 스포크박사의 육아서를 외웠다.
우리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어린시절을 들여다보면 행복할 것 같아 열심히 기록했다.
어린시절 병치레를 많이 한 탓에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의 성장발달이 평균치보다 못할까봐 그레프를그리며 관찰하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대단한 인내심과 체력과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아기의 신체발달에 따라 2개월 단위로 하루생활 시간표를 만들어벽에 붙여 놓고 그대로 따라 했다.
2주간만 씨름을 하면 그대로 따라온다 .그때부터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요리할 수 있게 된다. 바느질도 하고 장보기도 하고 책도 읽고...
아기들의 행동발달과 신체 발달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변화들을 낱낱이 기록해두었다.
보행기를 타고 다리 힘을 기를수 있게 될 때 세무로 신발을 만들어주었다. 지금이야 미끄럼방지 양말이 있어 문제가 없지만.
신혼때 세들어 살던 집은 목재회사 회장댁 별채였다.
정원이 넓고 계단식 뒷산에는 정원수가 많았다. 털실로 망토를 짜서 입히고 자주 산에 올랐다.
동물 케릭터 인형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벽에 걸어놓은 인형을 잡아당기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말을 빨리 했다.
그 시절에는 남양유업에서 우량아대회를 했다.
승환이를 받은 의사 선생님은 막내 동생을 받은 인연으로 우리 가족 주치의가 되셨다.
더구나 어머니하고 동갑이셔서 친정 어머니처럼 임의롭게 지냈다. 그분이 추천을 해서 승환이가 우량아 대회에 출전했다.
침대에 잠옷주머니를 걸어주었다.
삐에로 모양으로 만들어주었더니 삐에로 아저씨 배가 훌쭉하다고 잠옷을 벗어 집어넣었다. 스스로 잠옷을 정리하게 된 셈이다.
레고놀이를 좋아하는 녀석에게 장난감 병정을 수놓은 주머니를 달아줬더니 이 옷을 즐겨입었다.
그림책의 케릭터를 수놓아 주었더니 옷을 만들고 있으면 곁에서 지켜 보고 가봉 할 때도 하라는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이웃들이 예쁜 옷 누가 사줬냐고 물으면 "엄마가 망글었어요!"하고 큰소리로 자랑하더라고했다.
사내아이들은 눈깜박할 새에 잃어버릴때가 많다. 외출할 때면 미아방지용으로 커불룩을 만들어 입었다.
신륵사에서 승환이를 잃어버렸을 때 커풀룩 때문에 상인들이 알아보고 찾은 일도 있다.
바깥외출이 많아지면서 윗도리와 바지를 원피스로 만들어 입혔다. 작은 가방을 만들어 소지품을 넣어주면 잘 메고 다녔다.
흙장난이 심해서 빨래가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 에이프런을 여러개 만들어두고 갈아입혔다.
아름이는 먹는 양도 적고 식성도 까탈스러웠다. 이유식 자동차를 만들어 태우고 놀다가 기분 좋을 때 한 스푼씩 떠 먹였다.
<거북이 자동차>를 저축생활 추진위원회 공모전에 출품해서 거금 50만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아름이는 그림을 잘그렸다. 온 집안에 그림을 그려서 한쪽 벽면에 그림벽을 만들어 주었다.
아빠를 닮아 그림소질이 있는것 같다.
이 인형은 승환이와 같이 나이를 먹는다.
손바느질로 하나 하나 만든 정성을 생각하면 남주기 아깝지만 아이들이 자란 다음에 친지들에게 다 나눠주고 몇개만 남겨두었다.
승환이는 남자 아이인데도 인형을 소중히 다뤘다. 안고 업어주고 이야기도 해주고 ....
텔레비전 퀴즈프로 3등 상품이 미싱이었다 3등을 목표로 출연했는데 1등을 했다. 피디한테 3등상품을 달라고했더니 피디재량으로 1.2.3등 상품을 몰아주었다. 덕분에 침대서부터 가전제품까지 한 살림 장만했다.
전래동화의 등장인물들을 부직포로 만들었다.
우윳병이나 음료수 깡통에 끼워 식탁 위에서 움직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중에는 두 녀석이데리고 놀며 이야기를 지어냈다.
장갑처럼 손에 끼워 놀고
손가락마다 끼우고 놀고
손수건으로 쥐를 접어 데리고 놀고
주유소에서 주는 장갑으로 오리인형을 만들어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도 하고
아름이는 <빨간모자>인형을 아주 좋아해서 저 혼자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좁은 공간을 좋아한다. 세탁기 박스나 텔레비전 박스 속에 들어가 재미있게 논다. 내가 어렸을 때도 마룻장을 들어내고 밑에 들어가 놀곤 했으니까 .
장남감 수납상자 겸 이야기 극장 무대를 마차 수레 모양으로 만들었다. 옆에 아름이를 위한 소꼽살림 집도 만들었다.
삼촌 결혼식에 다녀온 승환이가 엄마랑 결혼식 하고싶다고 해서 아름이랑 결혼식 놀이를 했다.
남편은 악기 다루는 걸 즐겨해서 아이들 데리고 기타도 치고 하모니카도 불면서 잘 놀아주었다.
나는 시골 태생이라 산과들에서 뛰어 놀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 외가가 없으니 농촌의 풍물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박물관 기획전시회 때마다 데리고 다니며 보여줄수밖에.
책을 읽어주는 것도 보통 힘든 일 아니다. 진이 빠진다.
내가 몸이 아플 땐 남편에게 읽어주도록 했다.
아빠 목소리로 들으니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우리 아들 표정이 아주 아주 행복하다.
<아가방>에서 엄마가 만든 아가옷 공모전을 하고 당선작품 패션쇼를 했다.
아름이를 위한 생일파티 무대도 따로 만들어주었다. 게그맨 이경규씨가 신인 때 사회를 맡았다
패션쇼 인연으로 아가방 홍보실 직원들과 친해져서 사보에 가끔 실리곤 했다.
<엄마가 쓴 편지>도 당선이 되어서 텔레비젼 출연도 하고.. 황은경 부장하고는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우멘센스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남편이 공고부 직원에게 자랑을 한 탓이었다.
< 엄마랑 아가랑 > 잡지에 기획화보로 실렸다.
김미령 편집부장이 기획 아이디어가 없냐고 물어서 만들어준 어린이방 커튼 가리개
kbs 맛자랑 멋자랑 프로를 집에 와서 찍었다.<옛 시인의 노래>를 부른 가수 한영애가 리포터로 왔었다.
여름방학 캠프 취재 리포터도 하고 이때부터 주부대상 프로에 빈번하게 출연을 했다.
동시인 김숙분씨가 예전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텔레비전만 틀면 내가 나와서 우리 남편이 피디인줄 알았다고 해서 웃은 일이 있다.
kbs 엄마의방 프로그램 출연.
kbs 방송에서 <으뜸주부를 찻습니다>라는 행사를 했었다.
아이들 학교 교장선생님 추천으로 출전을 했다. 집에서 취재 촬영을 하고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합숙하면서 요리, 솜씨자랑 ,육아 ,품성 ,언행을 심사위원들이 관찰했다.
> 마지막 날 무대 위에 세워 인터뷰한 다음 순위를 결정하는 거였다.
미세스 코리아까지 뽑느냐며 비난을 하는 쪽도 있어서 단발성으로 끝난 대회였다.
6번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 날 정채봉 선생님께서 생방송을 보셨는지 살림은 내려놓고 동화나 잘 쓰라며 야단을 하셨다.
나는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했고, 특히 엄마 노릇에 열심이었다. 왜냐하면 어린시절의 추억을 풍요롭게 해주고 사랑을 충분이 받도록 해줘서 성인이 되었을 때 남을 배려하고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 노릇을 충실히 했기에 동화를 쓰고 싶은 욕구도 생겼고 마흔살 늦은 나이에 동화작가가 될 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