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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262호 헨리8세와 왕비들

멀리 가는 향기 2012. 3. 18. 07:05

     

 

     <헨리8세와 6명의왕비>인형을 수집했다.

 

 

 

 

 

 헨리 8세는 카톨릭 교황과 갈등을 일으키며 반목하다가 영국 국교인 성공회를 탄생시킨 왕이다.

6명의 왕비를 두면서 수많은 염문과 스캔들의 장본인이 된 그는  

정치적인  균형감각은 있었던가  영국인에게 평판은 좋다.

 

형이 혼레도 치르지 못한 상태에서 죽자 왕으로 등극한 그는 형수 캐서린 왕비와 정략 결혼을 한다. 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는데 훗날 종교적인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는 피의 '메리여왕'이다.

 

왕은 캐서린 왕비의 시녀를 정부로 두었다. 그녀의  동생 앤 마저 유혹하고  왕비와 이혼을 감행한다.이 문제로  카톨릭과 결별한 그는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어  앤 불린과 결혼을 한다. 아들을 바라던 왕은 앤이 딸을 낳은 뒤로 유산과 사산을 거듭하자  마녀로 몰아 런던탑에 가두고 사형을 시킨다.(영화 1000일의 앤)영리한 앤의 딸은 몸을 낮추고 숨 죽여 목숨을 구하다가 훗날 처녀왕 엘리자베스 1세가 되었다.

 

세번 째 왕비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어 훗날 헨리왕과 윈저성에 묻힌 왕비가 된다.

 

네번째  왕비크레브스 공녀 앤은 초상화만 보고 정략 결혼 했으나 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이혼 당한다. 이때 중매를 잘못 섰다는 이유로 당대의 권력가 크롬웰이 처형되고.

 

 19세의 어린 왕비 케서린 하워즈가 다섯번 째였는데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한다. 여섯번 째 왕비 캐서린 파는 사려깊은 사람이라,  늙고 병든 왕을 간병하고 궁에서 쫒겨나 불우하게 살던 메리 공주와 엘리자베스 공주를 불러들여 거두었다.

 

 

헨리8세가  살던 햄턴코트는 런던의 남서쪽 템즈강가에  있다.

15-17세기 튜더 왕조 건축양식의 헴턴코트는 헨리 8세가 울시 추기경에게 지어 줬다가 추기경이 죄를 짓자 빼앗은 궁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에  밤이 되면 왕비들의 혼령이 떠돈다는 기괴한 소문이 떠돌법 하다.  왕권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참으로 무섭고 추잡하다.

 

 

 

 왕의 아파트로 오르는 계단 난간의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천정화는 정신을 빼앗길 정도다.

 

 

 

인물들이 살아움직이는 듯 한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베리오의 작품이라고.

 

 

왕의 침실(프랑스 루이왕의 침실에 비하면 검박하다)

 

 

 

 왕의 변좌

 

 

 

 

 

왕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노트정원은 16세기 정원모습을 1924년에 재현 한 것이라 한다.

헴턴코트는 아름다운 영국식 정원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첼시 플라워 쇼가 열린다는데시기가 맞지 않아  실망이 컸다.

 

 

"나는 이제 사라집니다. 왕이시여 명심하소서.
당신은 원하지 않을지 모르나 내 딸 엘리자베스는 반드시 당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겁니다

 이 왕국이 내 딸에게 감사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 앤 볼린이 처형되기 전 헨리 8세에게 한 말.

 

 

 

 

 

'엘리자베스 1세'  인형 수집을 기회로 역사 공부 좀 하실까요?

 

 

 

 
 

뉴욕타임스는 지난 천년간 가장 뛰어 났던 지도자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선정했다.

16세기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에 눌린 작은 섬나라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이 유럽 제1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은 사람이다.

영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훌륭한 여왕이었지만 사적으로는 가장 불운한 여인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불행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머니 앤 볼린이사형 당한뒤 3살 난 엘리자베스는 졸지에 서출이 되어 버린다.

이 때부터 엘리자베스 는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배다른 언니 메리 공주와 배다른 동생 에드워드 왕자 사이에서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헨리 8세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에드워드 6세는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죽고 만다.

같은 서출로 공표되었던 언니 메리가 왕권을 차지하면서 엘리자베스는 런던탑에 유폐된다.

 

 
 

메리 여왕은 영국을 다시 구교국가로 만들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시작한다.

블러디 메리(bloody mary)고 부릴 정도였다.

그러나 결혼에 실패한 메리여왕이  앓다가 죽고 만다.

 마침내 온갖 비운과 불운을  짊어지고 살아 온 엘리자베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엘리자베스1세 VS 메리 스튜어트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메리수튜어트 스코틀랜드여왕

      

지혜롭고 신중한 현실주의자 엘리자베스1세,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뒤집고, 실력 하나로 한 나라를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4개국어를 구사하는 등 폭넓은 지식과 정치,외교술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었으며,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오늘날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 중 첫 손에 꼽히는 'Good Queen'.

정열적이고 경솔한 낭만주의자 메리스튜어트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좇는데 충실했고, 타인의 이목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세상이 그녀에게서 'Queen'이란 이름을 거두어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사랑 때문에 저지른 범죄로 20여년을 감금생활을 하다 결국 단두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메리스튜어트를  평생 동안 병적으로 집착하며 질투했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엘리자베스1세의 위대한 업적과 비교하면 하잘 것 없이 느껴지는 인물이지만,

메리는 엘리자베스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바로 정통 왕족으로서의 혈통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이었다.



메리 스튜어트를 묘사한 당대의 글귀들과 증언은 한결같이 '깎아놓은 조각상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풍성한 적갈색 머리칼에 180cm에 가까운 늘씬한 키, 굴곡있는 몸매와 청순한 얼굴.

거기다 프랑스에서 익힌 세련된 매너, 무용과 자수에 능한 여성스러운 성격 등으로 메리는

유럽 왕실 최고의 인기 여성이었다.

첫 남편이었던 프랑수아 2세가 사망하자, 전 유럽의 왕자와 귀족들이 앞다투어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나섰다고.

기록을 보면 메리는 단순히 예쁜 여자에 그치지 않고, 남자를 빠져들게 만드는 기묘한 능력을 지녔던 듯

 그녀의 일생 동안, 폐위를 당하고 감금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남성들이 메리를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예가 줄줄이 이어진다.

'철의 여인'이었던 엘리자베스가 사촌 동생의 아름다움과 순수 혈통을 질투했다는 것.

그리고  실력파,노력파였던 엘리자베스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메리스튜어트의 '선천적 행운'은  여인들의숙명인지도 몰라. TT

시대를 앞서나간 지혜롭고 당당한 여성도 전통적인 관습이 만들어낸 '미덕' 앞에서는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니.
타고난 외모의 아름다움, 그리고 진골과 성골을 나누는 태생의 분류는

 예나 지금이나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낳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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