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가 깜빡깜박 하시기에 치매 검사를 하고 왔는데 정밀검사는 마다고 하셨다.
노인정에 가셔서 화투를 치시라 해도 담배 냄새나서 싫다시니
집에서 동시집 배끼는 일 밖에 없겠다 싶었다.
동시집 배끼자고 하면 슬그머니 도토리 주우러 내 빼신다.
오늘은 작정하고 어머니를 구슬렸다.
어머니 글자공부 첫번째 책은 김춘남의 동시집 <앗,앗,앗>
"이 동시집은 엄마가 맘 먹으면 하루에 다 쓸수있을 걸 . 짧고 재미있으니까."
슬쩍 곁눈질 하던 엄니가 책이 얇아 만만해 보이셨는지 책상 앞으로 다가 앉으셨다.
우리 집에 책이 오면 엄니가 먼저 뜯어 보시기에 이제 좋은 글은 구별 하실 줄 안다.
작가 이름은 몰라도 광주댁 이 쓴 거, 임실댁 책 , 김기사 책, ,가을선생 책, 임정진 책 줄줄 꿰신다.
엄니 곁에서 글씨 예쁘다고 부추기면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농사꾼이셨던 외할아버지는 손재간도 좋으셨지만 인물도 좋고 목소리가 구성지셨다.
밤이면 사랑방에 동네 사람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구성지게 들려주셨다.
장날 마다 책을 사오는 할아버지를 외할머니는 못마땅해 하셨다.
한번은 임신중이던 할머니가 장에가는 할아버지께 갱엿을 사다달라 부탁 하셨단다.
온종일 갱엿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해질녁 동구에 나가 할아버지 마중을 했는데,
"내가 엿장수를 때려 죽일래도 없더라."하셨다고.
할아버지는 그 때 일을 회상하시면서
"엿은 똥이 되어 없어 지지만 책은 여러 사람이 두고두고 읽으니 책을 샀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도 딸들을 학교에 안 보내셨다. 일본글 배워봤자 아무 쓸데 없다고.
6.25 때 어머니는 누에 키우는 방에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막내 이모가 글을 배우게 했단다.
전쟁 후에는 할아버지를 졸라 막내 이모는 국민학교에 다니게 해주었다고 .
까막눈이던 어머니는 서울 올라와서 간판보고 글자를 익히고 신문 연재 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를 읽으며 글을 깨우치셨다.
아무래도 내일까지 동시집 한 권을 다 쓰실 것 같다.
내일은 엄니 좋아하는 돼지 갈비집에 모시고 가서 책걸이를 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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