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드러내고 발끝에 힘을 줘 구두가 드러나는 그의 초상화 들은 슈즈에 대한 그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루이 14세는 역사 속에 살아있는 군주 일뿐 아니라, 디자이너, 작가, 건축가 등 예술 문화에 걸쳐서도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패션과 아름다움을 위해 나라를 움직였던 왕,
자신의 나라를 전 세계에서 패션을 선두 하는 나라로 변모시킨 최초의 패셔니스타
유행의 흐름을 구분하는 게 사용되는 ‘시즌’이란 개념이 바로 루이 14세에 의해 시작
1670년대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귀부인들, 솜씨 좋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새로운 패션을 도모하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즌을 대표하는 대표 스타일 ‘룩’이 등장을 했으며, 디자이너들은 적당한 가격의 비슷한 옷들을 출시해 매장에서 판매함으로써 귀족뿐 아니라 평민들 또한 유행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유행이란 개념이 생겨나자 다양한 패션 관련 산업들이 붐이 일어나기 시작,
유행을 전파시키고자 패션인형이 탄생 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행을 접할 수 있도록 유명인을 모델로한 패션판화가 제작
되고 패션 모델과 패션 잡지, 광고의 시작이 되었다.
<루이 프렌치>
하이힐을 즐겨 신었던 루이 14세는 구두 굽에도 매우 신경을 써 곡선미가 우아한 루이 힐을 만들어내었고
루이 14세에게 아름다운 슈즈를 선물, 왕의 마음 속 든 전설 속의 제화공 레스타주는 귀족으로 신분까지 상승
루이 14세가 신발에 집착했던 이유는
자신의 각선미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더욱 예뻐 보일 수 있는 신발이 필요했다.
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승마나 사냥을 할 때만 부츠를 신도록 제안했고
본인 직접 발레리노가 되어 춤을 추며 다양하고 럭셔리한 구두들을 선보였다
루이 14세는 센 강을 품위 있게 만들기 위해 백조 수백 마리를 수입,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가는 길목을 풀어놓을 정도로 멋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왕이었다.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이 세기의 가장 화려한 궁 베르사유를 탄생시켰으며,
헤어드레서와 스타일리스트란 직업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이야기 꽃을 피워내는 카페 문화를 창시하였으며,
전 세계에서 아직도 통용되는 프렌치 시크를 만들어 내었다.
“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라는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 가장 선명히 남는 족적을 남겼다.
루이 14세는 일생 동안 공식 부인이던 마리 테레즈를 비롯해 각기 다른 매력의 세 여인들을 사랑했다.
왕비의 시녀, 가정교사 등 다양한 일생을 살던 이 3명의 여인들은 왕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베르사이유 궁전의 또 다른 안주인으로 대접받았다.
[(왼쪽부터) 라 발리에르, 몽테스팡, 맹트농]
순수한 매력을 지닌 그녀는 호화로운 생활대신 늘 한결 같은 자리에서 왕을 보필했다.
왕의 마음이 몽테스팡에게로 넘어간 뒤에는 수도원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몽테스팡은 뛰어난 미모와 팜므파탈의 매력을 가진 여인.
루이 14세와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궁정 사교계를 주도했던 그녀는, 후에 나쁜 죄를 저질러 왕의 신임을 잃게 된다.
이 후 그녀의 아이를 돌보던 지적이고 현명한 여인, 맹트농에게 왕의 총애가 넘어가며 긴 사랑의 미로는 끝을 맺게 된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역시 그가 가진 강력한 왕권만큼이나 화려한 여성 편력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과 여성의 상관관계를 재고 하는 대표적인 사례임과 동시에 권력의 덧없음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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