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여행의 추억

848회 8일차 사운드 오브 뮤직 / 마리아 폰 트랍

멀리 가는 향기 2017. 10. 8. 12:59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던 날  푸른숲 김혜경 사장님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 끝에 ,

샬럿 타운에 당신이 묵었던 비엔비에 도자기와 인형 컬렉션이 있어서 내가 보면 홀딱 반할 것이라 했다.  

샬럿 타운을 떠나던 날  이 집을 찾아 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가시면 직원들이 친절하게 집구경시켜 줄거예요. 선생님은 어딜가나 눈보시를 시켜주잖아요."

직원이 친절하게 집구경을 시켜주었다.

 

엘름우드 헤리티지 인은 1889년에 지어진 저택이다.

빅토리안 풍의 실내 장식과 가구,  도자기 식기 들이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다.

 

 

일정표  짤 때 미리 알았더라면 이틀 밤이 행복했을 텐데...........

 

공항에 일찌감치 나온 길이라 여유있게 렌터카를 반납했다.

 

 

 

 

몬트리올 행 국내선  탑승시간 여유가 있어서 이 선생한테 짐을 맡기고 여자들만 공항 밖으로 나왔다.

 

 

 

공항 주변 야생화 들판.

 배유안과 혜숙씨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유안과 혜숙씨는 운전스타일처럼 성격도 다르지만 북유럽 여행 이후 죽이 잘 맞는 동갑친구가 되었다.

 

 

 

 보라색 꽃을 피운 지피식물 씨앗을 채취하고 공항으로...........

 

 

 

공항직원이 토론토행으로 보딩.  하마터면 몬트리올 구경도 못할 뻔. 이날의 황당 사건 시작.

샬럿타운 공항 규모 만큼  몬트리올 행 국내선 비행기는 흔들림이 심했다.  

프로펠러 소음이 거슬리고 팔뚝이 시릴 정도로 바람이 들어왔다.

 

1245분 샬럿타운 출발-오후 2시경 몬트리올 도착

공항에서 차량 렌트, 미국 동부 버몬트주를 향해 남쪽으로 1시간 30분 운행 국경 검문소에 닿았다.

 

 

 

여기서 또 의사소통이 안돼 황당 사건이 벌어졌다. 

이 선생은 여행 전에 ESTA(미국 전자 여행 비자) 받아 놓았고  유안과 나는 귀찮아서 현지에서 해결 하기로 했다.

검문소 직원이 "컴푸터로 ESTA 받았냐?" 고 묻는 걸 컴퓨터를 소지 했느냐고 묻는 줄 알고 "예스"

동문서답을 계속 하다가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말에 미국에 발도 못들여 놓고  추방 당하는건가 쫄았다.

결국 이 선생까지 문서 작성하고 6달러 곱하기 4인 분 내고 통과.

 

스토위를 향해 1시간 쯤 달려가다  피자가게 발견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수제 피자가 맛이 괜찮아서 기분 좋게 출발 했는데 구글 맵이 아웃.  30분 가면 폰트랍 호텔에 닿는 거리였는데 말이다. 

 

 

 

호텔 찾아 삼만리 헤매는 동안 ,  호텔에 얽힌 이바구 시작 합니다.

 


트랍 마리아 호텔( Stowe Lodge)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주인공 가족이 운영한다.

사운드오브뮤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65년 3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화 “The Sound of Music"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 줄거리는  해군 함장 출신 중년 신사 게오르크 폰 트랍은 부인과 사별하고 7남매와 대저택에서 산다. 그 집에 20대 예비 수녀 마리아가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녀는 아이들과 곧 친해지고 음악을 가르쳐 가족합창단을 조직한다. 폰 트랍은 귀부인과 약혼한 상태였으나 가정교사 마리아의 매력에 빠지자 귀부인은 스스로 물러나고 마리아가 그 집 안주인이 된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독일에 합병되고  폰 트랍을 현역으로 불러낼 움직임을 보이자 폰 트랍 일가는 오스트리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합창단으로 참가하여 1등에 뽑히지만 시상대에 나타나지 않고 도주, 마리아가 있던 수녀원에 숨어들어 간다. 그러나 나치 경찰이 거기까지 따라오자 수녀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폰 트랍 일가는 이웃나라 스위스로 탈출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실존 인물 : 마리아의 남편 게오르크 폰 트랍- 아버지)>

 

 

마리아가 1949년에 독일어로 출판한 회고록 <트랍 가족합창단 이야기>는 실제 사실과 다르다.

폰 트랍 가족 합창단이 음악제에서 1등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 시상대에 나타나지 않고 도주한 것은 꾸민 이야기였다.

 그들 가족은 산을 타고 스위스로 도주한 게 아니라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직전이었기에 미국으로 가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에서 함장이 무뚝뚝하고 엄격한 아버지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는 음악을 좋아하고 매우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함장이 집안에서도 호루라기를 불어 자녀를 군대식으로 호출하고 해산시킨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게오르크 폰 트랍은 초급장교 시절 중국 청나라의 외세배척 운동이었던 의화단 반란(1900년) 진압작전에 참가, 훈장을 받았고  귀국하여  잠수함 함장까지 진급한다.  32세 때 잠수함용 어뢰를 발명하고 제조하는 영국 기업가의 손녀와 1912년에 결혼한다. 미인으로 소문난 부인은 10년간 7남매를 낳고 1922년 병사한다. 그녀는 친정에서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남겼다.

 

<오스트리아 짤쯔브르그 대저택>

폰 트랍 일가가 살았던 대저택은 어찌나 크고 좋은지 히틀러의 비밀경찰 두목 하인리히 히믈러가 그 저택을 접수하여 비밀경찰 사무실로 썼고, 히틀러도 그곳에 몇 번 들렸다고 한다.

 

 아내가 죽자 폰 트랍은 잘츠부르크 대저택에서 4년간  가정교사와 가정부 등을 고용하여 자녀를 키운다.  병약한 셋째 딸 마리아(11세)의 간병인 겸 가정교사로 예비 수녀 마리아가 수녀원장의 명령을 받고 폰 트랍 대저택에 나타난다. 마리아가 21세 때였다. 그녀는 10개월만 입주 가정교사로 일한 후 수녀원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폰 트랍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그 저택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그 집 안주인이 된다.

 폰 트랍은 오스트리아 귀족출신과 재혼하려다가 가정교사 마리아를 아내로 선택했다.  25년이나 어린 신부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배우 줄리 앤드루즈는 이 여인 마리아 폰 트랍(어머니)의 역을 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경제공황 여파로 은행예금을 대부분 잃게 되고.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강제로 합병되자 폰 트랍 일가는 미국으로 이주한다.

 

 

 폰 트랍 일가는 미국 동북부 버몬트에 농장을 사서 그곳에 음악 캠프를 만들었다.

이주 전 오스트리아에서 가족합창단으로 활동했던 마리아와 자녀는 미국에서도 순회공연을 하며 살았다.

 

1949년 마리아회고록을 독일어로 써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책을 토대로 1956, 58년 독일에서 영화 두 편이 만들어졌고, 이 영화를 본 미국 뮤지컬 기획자가 1959년 뮤지컬 "The Sound of Music"을 만들어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 히트를 친다.


<독일에서 만든 영화는  보리수라는 제목으로 상영>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65년에 상영된 <사운드 오브 뮤직>

 

 1965년에는 같은 타이틀의 영화가 만들어져 대박을 치고 주연배우는 스타 반열에 오른다.

진짜 마리아는 이 영화에 행인으로 깜짝 출연도 했다고 한다.

 

영화 제작권을 산 영화사 ‘패러마운트’는 주연 오드리 헵번과 율브린너로 내정했는데 헵번이 뮤지컬이라고  사양하자, 제작권을 ‘20세기 폭스’사에 팔아넘겼다. 나중에  햅번이 크게 후회한 것처럼  패러마운트도 땅을 쳤을 것이다.

 

마리아는 몇 명의 아이들과 버몬트 주 스토우에 트랩 패밀리 로지를 열고 , 방문자를 맞아들이면서

연활동을 했다. 격동의 인생을 보낸 마리아는 1987년3월 28일에 투병생활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보다 40년이나 먼저 67세에 사망한 게오르크와 함께 트랩 패밀리 로지 잠들어 있다.

첫 부인 소생 자녀 7명 모두 고인이 되었다.

 

<살스부르크의 예전의 집에  방문한 마리아 폰 트랍 (셋째딸)>

 

맨 마지막으로 심장이 약했던 셋째 딸 마리아가 2014년 99세로  고인이 되었다

 현재 마리아가 낳은 세 자녀(1남2녀)만 생존해 있는데, 막내아들 요하네스(75세)와 그의 아들 쌤이 버몬트 주의 스토우에서 Trapp Family Lodge를 경영하고 있다.

이곳은 약 10제곱킬로미터 들판과 야산에 호텔과 스키장 등 위락시설을 만들어 놓은 싸운드 오브 뮤직 테마다.

 

 

2015년 ,50주년 행사장에 모인 출연 배우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50주년 행사장에 선 배우들의 달라진 모습도 화제

 

줄리 앤드튜스, 마리아 폰 트랩 역

 

 

'사운드 오브 뮤직' 이후에서 계속해서 몇 편의 영화에 등장하였고, 성우로도 활동.

 

크리스토퍼 플루머, 게오르그 요하네스 폰 트랩 대령 역

 

크리스토퍼 플루머는 '사운드 오브 뮤직'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화배우로 활동.  2011년에는 영화 '비기너스' 통해서 오스카 상을 받은 최고령자로 등극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첩첩 산중에서 gps 사용이 안됐다.  

우리는 공항에서 유심 칩을 사지 않았고  한국어 내비게이션이 있는 줄 몰랐다.

구글맵이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기 때문. 

가게 주인이 그려준 약도를 보고 달려가다가 이상하다는 이 선생 말에  가게에 들러 물어보길 잘했지.

 

 

 

이 선생이 동양인으로 보이는 가게 손님에게 다시 길을 물었다.

우리가 반대 방향으로 40분가량 왔다는 거였다.

 

그녀가 구글맵을 검색해보고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는 그녀의 차 꽁무니만 보고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40여분 만에 호텔에 닿았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그녀를 끌어 안고 인사를 하느라 난리가 났다. 감격시대가 따로 없다.

그 밤중에 길을 잃고 해맸으니 호텔방 두고 차 속에서 새우잠 잘 뻔 하지 않았는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동양인들이 헤매는게 안타까워서 안내한 거라고. 

자기 본명이 성희이고 서울 고아원에 있다가 8살 때 입양 되었다고 했다.

입양아라니! 세상에 피가 통했나 보다.

 

세라씨가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아들만 넷이었다.

사진 속 남편의 인상과 그녀의 밝은 얼굴, 결혼 반지로 짐작하건데 유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그녀는 집으로 가려면 왓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아무나 할 수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얼른 달고 있던 브로치를 떼어 그녀 옷에 달아 주고 공동경비에서 기름값을 주었다.

부산에 오거든 꼭 연락 하라며 유안이 명함을 주었다.

 

 

이상한 일이다.

날마다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가도  좋은 쪽으로 풀리곤 하니. 내게 길복이 많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