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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여행의 추억

847회 7일차 빨강머리 앤의 집

멀리 가는 향기 2017. 10. 5. 21:23

 

 

 

아침에 주방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서당개는 3년만에 풍월을 읊었다는데 이선생은 일주일 만에 밥상을 차려놓았다.

 

 

 

아침 먹고 잠깐 걸었다.

이웃집 마당의 마가목 나무에 반해서.

 

마가목이 캐나다에서  잘 자라는 것을 보니 추위에 강한 가 보다. 

봄에 피는 흰꽃도 좋지만 가을부터 겨울까지 빨간 열매를 달고 있어 정원의 꽃이다

 

 

일요일이라 아트센터 앞에서 벼룩시장을 한대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핸드메이드 공예품을 팔았다.

손재주들이 그저 그래서 하나도 못 건지고 돌아섰다.

 

 

앤의 그린 게이블 이 있는 캐번디시로 출발했다.

 

 

캐번디시 가는 길은 야생화 군락지가 많았다.   갈길이 바쁘다 한들 꽃을 보고 어찌 외면할 소냐.  

 

 

 

프로포즈도 하고 꽃놀이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일 중에  야생화 흐드러진 초원을 거니는 일도 있다.

 

 

 

 

여행 내내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해변가에 바닷가재 식당들이 보여서 점심에 바닷가재를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데 발음이 문제였다.

'피프티'와 '피프틴'을  알아듣지 못해서 우리는 거한 점심을 먹는 줄 알았다.

"이럴 때 쓰는 거지 뭘." 호기를 부렸는데  음식이 나온 걸 보니 영 아니 올씨다였다.

식어 빠진 가재에 감자칩이 한가득.

"엥? 이게 50불 짜리야?"

다들 황당해 하면서 식어 빠진 바닷가재로 요기를 했다.

계산서를 보고  폭소가 터졌다.   15불짜리 음식을 시킨 것이다. 오늘의 황당시리즈 시작.

 

드디어 캐빈디시 도착.

빨간머리앤의 배경지는 PEI섬의 6번 국도에 있는 캐번디쉬 마을.
작품 속에서 "애번리"로 묘사되었고  작가가 살았던 외할머니의 동네로, 몽고메리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우체국에서 일했다.

 

 

 

 

 

 

캐빈디시 홈

몽고메리가  1876년부터 1911년 까지 살던 집. 작은 서점과 기념품 샵으로 운영 .

실제 몽고메리가 사용하던 물건 몇 점이 전시 되었다.

 

그린 게이블스로 가는 오솔길에서 만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집터에 관련된 히스토리들이 발길을 잡는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어린 시절 사진

 

그녀는 두 살 때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직장 때문에  외가에서 자랐다. 

 할아버지가 상원의원이라 고아  앤 셜리처럼 남의 눈칫밥 먹고 큰 건 아니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정서적 결핍이 상상을 즐기는 문학 소녀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외가에서 6남매의 왕언니로  자란 현실은 아이들을 돌보는 앤 셜리로 투영 되었을 것.

 

루시모드 몽고메리

세상에 못 나올 뻔 했던 명작 - <빨강머리 앤, 1908>

 

서른 살의 몽고메리가 주일 학교 신문에 실을  소재를 찾느라 수첩을 뒤적였다.

 어릴 적부터 이야깃거리를 적어 놓은 수첩에서 눈에 띄는 문장을 발견했다.


‘어느 노부부가 고아원에 남자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신청서를 낸다.

그런데 중간에 착오가 생겨 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보낸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상상력이 발동했다.

몇 해 전 《골든 캐롤Golden Carol》이라는 소설을 썼지만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가 번번히 거절당한 끝에 원고를 불태워버렸다.
시간이 지난 다음 주인공의 밋밋한 성격이 《골든 캐롤》의 문제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앤은 전작의 주인공과 다른 상상력과 호기심이 풍부하고 배짱이 두둑한 소녀로 탄생했다.

1905년 봄, 몽고메리는 다락방 창가에 앉아 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원고가 완성되었지만 다섯 번째 출판사에서 거절편지를 받고 나서 원고를 모자 상자에 넣어  치워버렸다.


《골든 캐롤》에 이어 《빨강머리 앤》까지 외면당했으니 실망감이 오죽했을까.

 탈고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창고에 처박아둔 모자상자를 꺼냈다.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동안 작품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몽고메리는 원고를 포장해 보스턴의 L. C. 페이지 앤드 컴퍼니로 보냈고 얼마 후 일기장에 감격의 순간을 기록했다.

‘드디어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원고를 책으로 내겠다고 한다!’

 

 마침내 34세에 출간하게 되고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지만 불리한 출판 계약으로 인세를 공정하게 받지 못했다. 


“행복한 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들이 하나하나 한줄로 꿰어지듯,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우물과 우체국 터를 지나  국도를 건너면  울창한 숲길이 나오고 그 너머에 초록지붕집이  있다.

안내판이 없어서 횡단보도 없는 찻길을 건널 것이냐 말 것이냐 옥신각신.

다행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유령의 숲'을 지나  초록지붕을 찾아낼 수있었다.

 

 

Green Gables는 몽고메리 외할아버지의 사촌인 맥닐씨 부부가 살던 집빨강머리 앤을 쓸 때 어릴 적에 자주 놀러 갔던 맥닐 씨 집을 모델로 삼았다.

 

 

 

앤의 집 액자에 담긴 머리카락 공예품.

빅토리안 시대(1837-1901)에 유럽의 낭만주의 풍조 영향으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망자의 머리카락으로 공예품을 만들었다. 

머리카락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세공을 했다.

이 시대 여성들은 취미삼아 이런 소품을 만들어 낼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응접실 벽에 걸린 액자를 보면 그당시 센티멘탈 공예품들이 많다.

 

 

탐나는 주물 난로.

 

 

이층 앤의 방

옷장 문에 걸린 갈색 원피스는  매튜 아저씨가 앤에게 첫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것이다

 

 

앤의 방 창문 너머로 '눈의 여왕'이 내려다 보일 듯

 

이층 마틸다 아줌마의 작업실

 

 

 

 

배유안이 캐나다 앤과 코리아 앤 이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기꺼이 관광객들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어떤 이는 내가 안내원인줄 알고 가이드북을 가지고 와서 '연인의 길'이 어디냐고 물었다.

 

 

메튜 아저씨 마구간에 마릴다 분장을 한 직원이 관광객들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매튜 아저씨가 앤을 마중 나갈 때 타고간  마차

 

메튜 아저씨의 마굿간 풍경.

 

 

 

 

 

'연인의 길 '

 

 

앤과 다이애나가 우정의 맹세를 했을 듯한 개울가

 

 

 

 

유령의 숲을 향해 놓인 빨간 의자

 

 

결혼 이후 후속작을 집필했던 몽고메리는 2차 대전 중 토론토 인근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캐빈디시의 묘지로 옮겨졌다.

부부 합장 묘.

 

열살 때 읽은 빨강머리 앤이  50여년 세월 저편의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비집고 나와 어린시절 놀이터를 찾아온 듯 다정했다.  이것이 동서양의, 세월의 간극을 뛰어 넘은 명작의 감동이다.

 

 

샬럿타운으로 오는 길에 드라마 < 도깨비 >여운이 남아  매밀꽃 밭에서 사진 놀이 

 

 

 

 

 

샬럿타운 해변가 바닷가재 전문 식당에서 바라 본 항구

어딜 보나 깨끗 깨끗 우리는 언제 쯤 선진국민이 되려나.

 

 

점심 때 15불 짜리 음식을 50블로 오인했던 웃긴 헤프닝을 만회 하려고

저녁식사는 제대로 맛있는 바닷가재를 먹었다.

이렇게 두고두고 생각나고 그리울 캐빈디시의 추억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