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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회 옥희 할머니의 파란만장 시집 살이

멀리 가는 향기 2023. 11. 18. 19:12

 

박옥희.(88세) 1935년생   

17세에 중매로 스무살 지** 씨와 결혼

문막 대둔리에서 지정면 장지동으로 시집 와  2녀 2남을  두었다.

 

- 옥희 할머니는  열 일곱살 새색시 때부터  시어머니에게  매타작을 당했다. 

시어머니가 술에 취한 날이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방망이나  농기구 등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둘렀다.  

거기에 남편의 폭력까지 보태져   '보리 뭉탱이 같은 년 ' 으로 불린 옥희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파란 만장 했다.

 

"중매 결혼 하셨으면 신랑 얼굴도 못 보고 시집 오셨겠네요?"

"결혼식날 사람들이 "색시는 착해보이는데 신랑은 새파랗게 얼어서 그런가  쌀쌀맞게 생겼네" 하길래 슬쩍 훔쳐 봤더니 작아도 야무져 보이더라고 "

 

"시집살이를 지독하게 했다고 소문 났던데요? "

 "열 일곱 살에 시집 왔으니 뭘 알어. 시키는 대로 물레질 하고  냇가에가 빨래 하고 소죽 끓이고 손가락이 갈라 터지도록 일만 했지.  손가락이 갈라터져 밥사발에  피가 묻은 줄도 몰랐지.

"이 년이 ** 피를 밥사발에 묻혀!" 

머리끄댕이 잡고 물레 옆에 둔 방망이 그걸로 막 두둘겨 패. 그 땐  달거리도 안했는데  억울한 소리를 들었어."

 " 외사촌 혼인 때  시어매는 신랑 옷 꼬매고 나는 색시 저고리 꼬맸어, 화로에서 불똥이 튀어서 색시 저고리에 구멍이 났다고  화로에서  인두를 꺼내 대갈통을 때렸어. 이것봐, 여기 아직도 숭이 있다니까. 저고리는 잘 꼬매니까 티도 안 났는데."`

"밤새도록 술 먹고 비틀비틀 들어오자마자 시원한 물가져 오래. 매가 무서워 얼른  떠다드렸는데. 이년이 사기대접에 물을 떠왔어? 냅다 집어 던졌어. 그 길로 젖먹이 업고  쏘다지기로 도망갔지. 냇물이 불어서  옷이 다젖었잖아. 애기 옷 벗겨서 말리고 있는데 시아버지 시동생이 찾으러 왔어. 꼴 베던 사람이 봤다고  알려주더래.  집에  잡혀 왔더니 시어머니가 부뚜막에서 물레 돌리고 있어. 그렇게 하면 집나간 며느리 돌아온다고."

 "애기 젖 물리고 누우면  잠이 솔솔 오잖아.  시어매가 들어오다 보고  '이 년이 일은 안하고 자빠져 자네'  매타작을 헀어."

"내가 기증떡을 잘해. 동네 잔치하믄 내가 다 했어. 잔치 쌀 서말 불려서 디딜방아 해야하는데 방아쟁이한테 빻아서 반죽을 했더니, 나갔다 와서 보고  발써 빻았냐? 그거하느라 **털 부서졌겄다 해서 한마디 했지. 절구질 안했는데 왜 부서져요 하고!"

 

"그럴 때 남편이 두둔하거나 달래주지 않았어요?"

"달래주긴. 씨* . 시어매가 야단 하면   덩달아 더 야단인걸.  남한테는 잘하는데  승질부리고  도와주지도 않어."

"나 시집올 때 시동상이 국민학생인데  내편을 많이 들어 줬어. 부엌에 와서 밥하는 거 이래 들여다 보고 아줌마 불 한볼테기 넣어서 누룽지 만들지 하면 만들어주곤 했어. 잔치 집에서 얻어다 주고."

" 죽을라고  약 먹었을 때  날 살리려고 병원에 데려 온 시동상 바짓가랑이 잡고, 이 집 귀신 되기 싫어 죽을라 했는데   서방님 때문에 이 집 귀신을 해요 하고 울었어,  우리 시동상은 지금까지도 엄마한테 하는 것 같이 잘 해줘. 세상에 그런 사람도 없어."

 

"보따리 싼 적은 없었어요?"

"세 번 도망갔어. 친정으로 못가고 서울 언니네로. 언니가 요새 세상에 쪽진 사람이 어딧냐고 미장원가서 파마를 해줬어.

 신랑하고 작은 시아버지가 찾아와서 붙들려 왔더니,  저년이 대가리 볶고 왔어. 당장 머리 감아서 풀으라고 야단 하다가 가위들고 자른다고 난리여. 조카 딸이 화장품 사주고 옷사줬서 가지고 왔는데  이년이 쌀 퍼다거 옷 사 입었어 하고 에먼소릴해. 신랑이 화투치느라 쌀 퍼낸건데 "

"죽을라고 쥐잡는 싸이나를 먹었어. 그게 녹두알 만해.혓바닥에 닿으니까 싸해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는데  병원에 실려 갔어. 저년이 나를 꺽으려고 죽는 시늉했다고 또 야단 났었어."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아들 결혼식 때가 좋았지.  판대역  철길 걸어서 원주가서 참깨 팔아 결혼식 장 봐서  머리에 이고 왔어. 시어매 좋아하는 술 사고 귤도 사서.  잔치에 쓸 물건 풀어놨더니  이년이 배짱이 다 컸어. 참깨 내다가 다 사왔어! 그때는 나도 같이 밥상을 엎었어. 며느리 얻게 되었는데 씨 *  시집살이 시키냐고 막 소리 질렀지. 아들한테 이를 줄 알았더니 안 이르더라고. 그다음부터 참견하지 않고 동네 사람한테 그년이 배짱이 컷다고 하더래.."

(판대리 사람들은  농산물 이고 지고 철길따라  간현역으로 걸어가서  원주가는 기차 탄 다음에 원주역에 내려 중앙시장 까지 걸어가  농산물 판 돈으로  장 봐서 머리에 이고  되짚어 집까지 걸어다녔다고)


 "소원이 뭐예요?

"이삼일 앓다 가는 거."

 

"며느리한테 시집살이 시키세요?"

"아들이 군인갈라고 공설운동장에 모였는데 아들 애인하고 갔는데 다 빡빡 대가리라 누가 내 아들인지 모르겠어. 우리 성근이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어. 나를 보고 손을 잡더니 이거 쟤 갈 때 차비 줘. 그러잖아.  

논산에서 흙 묻은 옷 보내서  방천에 가서 실컷 울었어. 그때 달빛에 보면 돌맹이가 하얗게 빛났어.  내 새끼 애인도 울겠지 싶어 딱하더라고. 애인 군대 보낸 게 불쌍해서 그때부터 잘해줬어. 며느리 오면 역에 마중가서 애 업어오고. 맛있는 거 먹으라고 친정 보내주고."

 

경로당에서  옥희 할머니를  만나기로 한 날, 

옥희 할머니댁 담장의 백일홍 꺾어다 꽃 다발 만들고. 얼굴에 꽃단장을 해드렸다. 

구경하던 할머니들이 새색시 단장한다며  우스갯 소리를 하셨다.

한복 갈아 입혀 드리고 거울 앞에 서게 했더니  딴 사람 같다며 좋아하셨다.

 

할머니 집 담벼락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드렸다.

 


"시집 오는 날 화장해 보고 첨이야. 애들 결혼식 때도 안했어.  누가 쳐다보는 거 같아서 ."

"광덕 엄마야. 나와 봐라. 나 화장한 거 이쁘지?"

 

"전에 영정 사진 찍어 놨는데 못 쓰겠어. 작가님이 찍어 주는 걸로 해야지."

 

"지정수 어디갔어? 이렇게 이쁜 걸 봐야지."

하늘로 간 서방님도 부르고. "영감 살았을 때 보다 더 좋아 " .

막내 딸에게 사진도 보내주라 하고  동네방네 자랑도 하셨다  

경로당에 계시던  할머니들에게, 

"서방 없이 결혼식 했는데  술이 있어야지.  잔치 음식 먹으러 가자."

 

 

 반장 할매가 봉고차 몰고 문막 추어탕 집으로 한턱 쏘러 가는 차 안에서

 " 박옥희 화장하니까 문막이 다 환하다야."하고 박장대소 하고.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아 ........."  노래를 메들리로 불렀다 

(옥희 할머니는 흥이 많아 관광버스에서 도맡아 노래하고 춤 춘단다. 경로잔치때 가수들 팁을 고쟁이 주머니서 막 꺼내 줘할머니들이 고쟁이를 벗겨 감춰 둔 적도 있었다고.)

 

"젊어서 부터 노래를 잘하셨어요?"

"딸 시집 보내는데 그렇게 좋더라고  즤 집 찾아가는데 내가 왜 울어. 종일 노래 불렀더니, 엄마는 시집살이 그렇게 하면서 노래는 어디서 배웠어? 하더라고. 귀동냥으로 배웠지."

 

 

 

"오늘 기분 조오타. 박옥희가 화장도 하고 배니도 바르고.

살다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오고 재미랄."

 

밥 대신 소주잔을 비우는 옥희 할머니를 보고 오목할머니가 한마디했다. 

" 술만 먹지 말고 밥 먹어. 저 사람이 지독하게 시집살이 했어도 할 도리는 다했어."

 

"시어매는 중풍이 재발 되서  일년 반 잃다가 일흔 네살 이월 스무날에  돌아가셨어. 일하다 집 문 열고 들어가면 예미여? 하고 물어. 날 의지했어. 아침도 못 먹고 원터 모 심으러 갔다가 집에 와서  밥 챙겨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 새참나온 거로 점심 먹으며 일해도 남편은 '내가 엄마 볼테니 밥 먹고 가라 '소리도 못햐."

시아버지 아파서 보리 갈러 갔다가 밥 먹이러 왔어. '굶어 뒤지게 두지  밥을 왜 주냐고' 재를 밥에다 부어 버렸어. 울면서 밥알을 물에 행구어서  꺼멍을 주어 내는데 그거를 울타리 너머로 던져 버렸어,"

 

듣다 못한 재남 할머니가 한 마디 보탰다.

"아이구, 저승에 가 면 죄를 어떻게 받으려고 그짓을 하냐고. 시부모 서방 다 그러니 어떻게 살어."

옥희 할머니는 혼자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미워 하다가 배운다는 옛처럼 술 주정하는 시어머니 흉보다 술 배우고 욕도 배웠다.

" 젊어서 맘 고생한 것 다 잊고 즐겁게 사세요."

"이제는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아.  올해는 면민 체육대회 때  노래도 못 불렀네. 다리가 아파  못 갔더니  사람들이 인사를 하더라고."

이 양반이 시름을 노래로 푸는 재주가 있어  참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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