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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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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회 속아서 결혼한 함은재 할머니

멀리 가는 향기 2023. 12. 9. 21:30

  개돌이 데리고 산책하다 들른  외딴 집.

정신없이 어질러진 여느 시골집과 다르게 살림이 단촐하고 깔끔해서 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집 주변만 돌아봐도 주인이 바지런하고 정리 정돈 잘하는데다  알뜰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인 걸  알 수있겠다. 

제자리에 정리해 놓은  농기구, 쓰고 남은 지주대도 얌전히 묶어 놓았다.   

비료 봉지도 뽑은 풀을 담아  알뜰하게 재사용 했다. 호박덩이 올릴 둔덕에 얌전히 덮은  부직포,  넝쿨 올릴 지주대 곁에 줄세워 놓은 패트병에 담긴 액비. 나무마다 벌레 쫒는  천연 살충제를 매달았다. 그늘막 안에는 버섯 종균을 꽂은  참나무도  있다

 

 
풀 잡은 깔끔한
 밭고랑을 보자 마디 굵고 굽은 손가락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모종판에 들깨씨 묻느라 집중한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내가  지켜 보는 것도 모른다. 

 

"아이 깜짝이야. 어서 오슈."

 

함은재 (92) 1932년생
21살에 음**씨와 중매 결혼
문막 포진에서  지정면 안창리로 시집 와 1남 4녀를 키웠다.

 

"외롭지 않으세요?"

"외로운 건  몰라. 아들 하나는 수원 살고  딸  넷은 서울 살어.

손주가 열 이나 되서  식구들 모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방으로 들어가서 커피 마실려? 그 놈이 주인 따라 마실도 오구  팔자 폈네."

반갑게 맞아주는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개돌이 끌고 돌아서는 발길이  가붓했다 

 

추석 지나 할머니 댁을 찾았다. 

문이 잠겨서 어디가 편찮으신가 걱정 되었다. 

며칠 뒤 다시 방문했을 때  TV 켜 놓고 주무시던 할머니에게서 아들집에서 열흘 간 지내다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환기가 안된 방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나와 마당에 앉았다. 작년부터 귀가 안들렸다는 할머니와  이야기  하려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 이 집에서 오래 사셨어요?"

 "이리 좀 와 봐. 우리 아들 머리가  좋아. 이것 좀 봐."

할머니가 장독대 곁의 가마솥 뚜껑을 열어 보였다.

"시집 올 때부텀 써서 밑구녁이 뚫어졌어. 그걸 아들이 뻥 뚫어 놨잖아. 쓰레기 태우라고." 

"아들이니까 해주지. 딸은 이런 거 못해줘요. 그래서 아들도 있고 딸도 있어야 해요."

"스물 하나에 시집 와서 스물 둘에 맏딸을 낳았어. 아들 하나에 딸 넷."

"아이구 자식 농사 잘 지으셨네.  딸이 많으니 노후가 편안 하시겠어요.".

"이 장독은 어머니가 일꾼 사서 실어 왔어. 친정에서 장독대 만들 돌맹이도 실어왔어.

저기 낭구 밑에 또랑 있지? 거서 져다 먹었어. 친정 어머니가 양동에서 물 파는 사람 데려다가 우물 파줬어.

친정 어머니 돌아가실 때 장사를 잘 지내 줬어."

"친정이 가까웠어요?"

 "우리 친정이 문막 포진이야. 시집 올 때 저 고개를 넘어서 왔어. 가마는 못 타고 걸어서 왔어.

내가 둘째 딸인데  시집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 땅도 이 밭 저 밭 동네 조금 지나서 밭  다 사줬어.

친정 아버지가 담장을 뺑 돌려서 해줬어. 우리 할아버지 92살에 돌아가신담에 무너졌어."

"부잣집 딸이 시집 왔다고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했겠어요."

"아유, 동네 사람들보기 남 부끄러웠어. 속아서  시집 와서."

"속아서 시집왔다고요?"

" 할아버지하고 나하고 차이가 있어.  스무살이나 많았어. 변호사가 중매 했는데, 

그 양반 처갓집이 친정 동네에 있었거든. 변호사 말만 믿고 신랑 얼굴도 못 보고.

결혼식날 신랑 보고 깜짝 놀랐어. 쏙아서 결혼 했어."

"나이 어린 새색씨라고 많이 위해주셨죠?"

"아유 술많이 먹었어.그런데  참 점잖았어."

"그러면 다행이다. 맘 고생 안 시켰네요."

" 내가 오니까 시어머니가 없었어. . 아들만 둘이 있어서 형님이 홀시아버지를 모셨어."

"밭에 갈 때 할아버지는 저만치 가고 할머니는 뒤 따라 갔어요?  손도 못 잡고?"

"아유 남 부끄럽게.  그짓 못 했어 하하하 ."

" 할머니가 웃는 얼굴인 걸 보면  살면서 속끓일 일은  없었겠어요.  소원이 있으세요?

"소원 없어. 내가 살고 싶은대로 하니까.  바랄 것도 없고 무얼  했으면 하는 생각도 없어.

  어디 가고 싶다 하면  손자가 많이 구경시켜 주고 그래."

" 아프신데도 없죠?"

"다리만 수술 두 번 했어.  우리 할아버지가 수술 더 해야지 저승에 가도 마음을 놓는다고. 해주고 갔어.

우리 아들이 만날 전화 해. 혹시 아픈가 하고 .'

아들이  밭가는 관리기 사왔다고 자랑하는 할머니께  아들 국 끓여주라며 황태를 두고  일어섰다. 

 

 

첫 서리 소식 있던 날 , 달리아를  꺾어 들고 할머니댁을 찾았다.

할머니가 잠깨기를 기다리며   평상에 앉아 노박 덩굴, 뚱딴지 꽃, 감국으로  꽃관 만들고, 달리아 꽃 다발을 만들어 놓았다.

 

 

할머니께 꽃 단장하고 사진을 찍자니까  팥 꼬투리 따야 한다며 마다하신다,

일거리를 보고  손을 놓지 못하는 성격이라 

동네 마실도 안다니고  혼자 사부작 사부작 일만 하며 평생을 사신 분이다.

 

 

 

동생이 우리 엄니를 모셔오는 바람에,  두 분이 통성명하며 평상에 앉았다.

 

 

달리아 꽃다발 안겨 드리며  "선물이에요" 했더니

"이쁜 꽃을 나 준다고? 아침부터 횡재했네."

소리내 웃으며  좋아하셨다.

 

땅에는 곡식을 심어야 하는 줄  아는 분이라 할머니 댁 마당에는 꽃이 없다. 

무너진 울타리 대신 심은 무궁화 나무 한 그루 뿐.

 

 

사진도 찍어 본 일 없어 어색해하시기에  새색시같이 예쁘다.했더니    

"오늘 호강하네,  마음이 좋아 "

큰 소리로 웃으시는데  내 마음도 좋다.

 

자식들 출가 시키고 빈 집 지키며 여생을 사는 분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목숨다하는 날까지  두더지처럼  땅만 일구실 분 

이웃도 없어 남이 어찌 사는지 관심도 부러움도 없이 속편히 사시는 분  

할머니 얼굴에 그늘이 없어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