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팔자대로 살어. 저도 제 팔자. 나도 제 팔자."
나는 지금 죽어도 아무 근심걱정 없어요.
윤종란 (79세) 1946년생
지정면 장지동에서 나고 자라 22살에 한 동네 총각과 연애 결혼 .
슬하에 2녀 1남을 두었다.
7월 15일 초복날, 수국 꽃다발 묶어 들고 윤종란 여사를 만났다.
성격이 수더분하고 화통한 종란 여사 별명은 '먹자씨" .
눈에 보이는 건 죄다 먹어서 경로당 어르신들이 그리 부른다고.
배만 부르면 만사형통인 양반.
경로당 어르신들은 오전에 화투놀이 하고 점심 먹고 나서 낮잠 주무시는 중.
종란여사 꽃단장 시켜 아드님 혼자 삼년 째 건축 중인 유럽식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실버카 의지해서 걷는 양반이 꼿꼿이 서서 사진 찍히느라 "배우 노릇도 힘들다"며 파안 대소.
다시 경로당으로 돌아와 인터뷰를 했다.
새색시처럼 이쁜데 어디 신랑감 없냐? 어르신들이 사진 보자고 모여드는데,
본인은 수박 썰어 오고 피자,옥수수를 내 놓아 먹자판을 벌였다.
- 한 동네 사람하고 결혼 하셨다던데 어려운 일은 없으셨어요?
"아유, 친정에서 반대했지. 남편이 5남매 맏이라 일 많다고 고생한다고 싫어하셨어."
- 동네 사람이니 속도 알고 맘 상할 일은 없었겠어요."
"난 시집살이는 안했어. 식구 많고 농사 많아 고달펐지. 맏 며느리니 일이 오죽 많아.
애 셋 낳토록 우리 아저씨가 일을 안 했어. 하자면 억지로 시늉만 내고.
서울에서 공부하다 대학 떨어지고 내려 와서 4H 활동한다 뭐 한다 돌아다니기만 했는데 농사일은 뭐 알아.
맨날 잠만 자지. 일 하기 싫으면 아구 배 아파 하면서 쌍화탕이나 한 병 먹고 드러누워.
내가 동네 품앗이 가면 빈둥빈둥 놀다가 내가 올 때쯤 일 하는 척 하는 거지.
한 번은 동네 사람들하고 축구하다가 발목 보조뼈가 부러 졌대. 일 하기 싫은데 잘됐다 들어 앉아서
땅콩씨 한 되하고 봄에 일꾼들 준다고 소주 댓병으로 사다 놓은거 다 먹어치웠어.
어르신들 일하러 가믄 우리 아저씨는 밤나무 밑에서 잔대. 동네 사람들이 건달이라고 흉을 봤어.
건달이라니까 오죽하면 동네 아줌마가 "형진 아빠는 때리진 않어?" 하고 걱정했겠어. "
그야말로 베짱이와 개미의 궁합.
윤종란 어르신은 "누구나 팔자대로 살어. 저도 제 팔자. 나도 제 팔자."
먼저 간 남편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팔자소관으로 돌렸다.
-몇 남매 낳으셨어요?
'딸 둘 아들 하나. 둘째 딸이 나와서 아들 낳느라고 하나 더 낳았지. 그때만 해도 다 둘만 낳았어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나라에서 공짜로 배꼽 수술도 해주고 그랬어."
- 지금 생각하면 언제 행복하셨어요?
"애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서울로 보따리 이고 왔다갔다 할 때. 시어머니가 서울서 애들 셋 공부시켰거든.
그때는 청량리역에 내리면 전철 타고 버스 갈아타고 엄청 복잡했어.
계단 오르내리는 거 귀찮아서 청량리서 창신동 산꼭대기 전셋방까지 보따리 이고 걸어 다녔어.
젊어서 기운 좋겠다. 그까짓 거 일도 아니지."
-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 힘드셨어요?"
" 애들 아플 때지. 지영이 아파서 신설동 병원에 입원했을 때.
혼자 애달아 하는데 우리 아저씨는 애가 뒤집어 지는지 엎어지는지도 몰라.
우리 은진이 중학교 때 졸업식한다고 해서 올라갔는데 엄마 학교 오지마래. 지 필요하면 오랬다 오지 말랬다.
그 년이 변덕이 죽끓듯 지랄 맞았어. "
"사춘기 때라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은진이 딸이 꼭 저 닮았어. 큰 딸 현진이는 안 그랬어요. 딸은 엄마 좋아하잖아.
결혼하더니 엄마 사정 알아줘서 지금은 둘째 딸이 더 좋아. "
-살면서 슬기롭게 잘 넘겼다 하는 일은 없으세요?"
"그냥 저냥 잘 살아왔지."
- 후회스러운 일은 없었어요."
"서울로 시집 갔으면 고생 안하고 잘 살았겠지. 푸줏간 집에서 날 며느리 삼고 싶어했는데 백정 놈하곤 절대 안된다 했어.
지금 세상에 그런 걸 따지나? 시집 갔으면 고생은 안 했지. 담배 농사를 23년 했나 ? 아주 힘들었어."
-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결혼 안하고 장사해서 왕창 돈 벌었을라나. 기술이 하나 있었으면 애들 떼어 놓지 않고 끼고 살면서 가르쳤을 텐데.
우리 은진이가 엄마하고 떨어져 사는 게 싫어서 시골 애 서울 갔다 놓으면 공부 잘 하느냐고 불만이 많았어."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으셔요?
"건강 잘 챙기고 부부끼리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잘 살았으면.
술 좋아하는 아들 때문에 며느리 한테 우리 아들 부탁한다고 했어요.
나는 지금 죽어도 아무 근심걱정 없어요,."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는 일상이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큰 욕심없이 평범하게 산 당신 삶을 그만 하면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니 행복 아니고 무엇이리.
윤여사는 태어난 곳에서 생을 마치는 복된 삶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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