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문 턱 안 넘었어도 쇼팡도 알고 링컨도 안다."
박 순임 (91세) 1932년 생. 열 아홉에 아홉살 연상 김봉곤과 결혼.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서 나고 임실면으로 시집와 1녀 4남을 두었다. 서울에서 지정면 판대리 이주
- 엄마 처녀때 얘기 해줘. 고향이 어디지? ( 치매 4등급 어머니는 '몰라'를 입에 달고 사셔도 총 맞은 큰애기 이야기는 줄줄 꿰신다.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힌 어머니 러브스토리)
덕치 거그.... 뭐라그러냐 ? 모르것는디. 응. 회문리. 아버지는 북촌에 어머니는 남촌 살다 한 동네서 결혼했어. 우리 형제가 다섯이야. 막둥이 아들 하나 순애 순이 순자 정님이 딸 넷.
우리 아버지가 뭣이든지 다 잘하지. 집도 짓고 벌도 키우고 우리 먹으라고 과실나무도 골고루 심고, 책도 잘 읽었어. 아버지 책 읽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아. 노랫 소리같이. 그렁게 사람들이 책 읽어 달라고 사랑방에 죽 모여 앉았어.
(방학이면 외가에서 지냈는데, 일찌감치 저녁상 물린 이웃들이 외갓집 사랑으로 모여들었다. 할아버지는 회문리 전기수였다. 구성지게 책 읽는 소리에 울고 웃던 사람들은 밤이 이슥해서 돌아갔다.)
아버지는 장날마다 책을 사다 읽었어. 할머니가 입덪해서 갱엿 먹고싶다니까 아버지가 장날 사온다고 찰떡 같이 약속했대.엿을 사려니까 돈이 아깝더래. 엿은 먹으면 똥이 되고 책은 읽으면 머리에 들어가니까. 어머니가 종일 아버지 기다리다가 엿 내놓으라고 했대. 아버지 말이 내가 엿장시를 때려죽일래도 없더라 그랬대. 어머니가 서운 해서 그 소리를 두고두고 하셨지.
6.25때 갈담 구누실로 피난 갔는데 깊은 골짜기에 마을이 조그만하게 있어. 아버지는 부역 가고 순애 언니는 시집 가고 내가 어머니 대신 살림 했어. 어머니는 여섯살 먹은 아들 죽은 담부터 우천이를 땅에 놓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자나 깨나 품에서 안 떼어놨어. 오줌도 치마에다 받고 옛날에 기저귀가 있가디. 미영베라고 길쌈한 거로 기저귀를 만들었어. 있는 집은 길게 만들지만 없는 집은 짤막 짤막 만들어서 오줌 싸면 금방 푹 젖어. 어머니 치마도 늘 오줌에 젖었어. 빨아서 말려 쓰고 또 쓰고. 막둥이 안고 굴속에 숨어 있었어. 내가 밥하고 밥 나르고 동생들 챙기고 짐이 많았지. 밥 해서 밥바구니에 담아 굴에 가는데 총알이 핑 밥뚜껑이 날아가. 멧동 아래로 디굴디굴 굴러가잖아. 그거 주으러 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냥 가그라 그냥 가 소리를 막 질러. 그래도 기어이 주어다 덮고 굴로 갔어. 한번은 군인이 나를 붙잡았어. 내가 가만 있간디 나쁜 맘 먹은 놈인디. 두 손으로 멱살을 콱 훔트러 쥐고 너는 누이도 없냐 하고 막 족쳣더니 도망갔어.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통큰 큰애기' 라고 불렀어.
그 담부터 뒷산 아니고 앞산에 굴을 만들었어. 높은 산 아니고 야트막한데다. 머리 땋아서 저고리 속으로 집어 넣고 머리에 미영베수건 썼어. 각시처럼 보이려고. 군인 무서워서. 정님이가 일곱살인가 먹었는데 마루에서 놀다가 사람이 오면 두 팔 벌리고 방문 가로막고는 "없어요. 암도 없어요." 하고 나를 지켰어.
밤에 집으로 가고 낮에 굴에 숨어. 추우나까 바싹 붙어서 웅크리고 자. 고모가 목 마르다니까 고모 딸이 눈 퍼오려고 밖에 나갔어. 군인이 단발머리보고 빨치산인줄 알고 총을 쏜 거야. 문앞에 앉은 고모가 맞은 총알이 내 왼쪽 허벅지를 파고 갔어. 고모 돌아가셨다고 난리났는데 나도 총 맞았다는 말을 못해. 어머니가 쓰러질까봐. 피 안나오게 검정 무명치마 똘똘 말아서 집어 넣고 꼭 누르고 있었어. 밤에 굴을 나오니까 피 묻은 치마가 얼어서 서걱서걱 해. 집에 와서 말했더니 어머니가 우리는 이제 다 살았다고 벌벌 떨어. 어머니는 우천이 밖에 모르니까 내가 대신 모든 걸 다 했으니까 다 굶어죽는다고. 참깨를 입안에 넣고 꼭꼭 씹어서 상처에 붙였어. 동네서 소를 잡으면 아버지가 간다고 얻어오려고. 소고기 얇게 썰어서 붙이면 찰칵 달라붙어서 하얗게 뭣을 빨아내. 나중에 떼면 고기가 하얗게 되있어. 막 쓰리고 아파도 참고. 아이고. 그때는 약이 어딨어. 이거 봐. 흉이 크잖아.
그런데 군인들이 마을 처녀들을 잡아다 조사하는 거야. 너그 아버지가 군인은 아닌데 조사하는 높은 사람이었어. 처녀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암말도 못하는데. 군인이 아무한테나 총 쏴도 되냐고. 고모 맞은 총알에 나도 맞았다고. 고모 살려내라고 막 야단했지. 다른 처녀들은 집에 보내는데 나만 더 조사 한다고 이것 저것 물어 . 그때 부터 내가 맘에 든 거야. 스물 일곱 노총각이었거든. 집에 데려다 주고. 약 구했다고 오고. 군인들 빨래 가져 오고 비누도 주고 자꾸 왔어. 어머니가 빨래하면 내가 떨어진데 꼬매서 보냈더니 집에 재봉틀 있는 줄 알았대. 나 보담도 어머니가 더 좋아했어. 내 맘에 들었응게 살았지. 어머니가 사람 좋다고 결혼시키자 했는데 아버지도 좋다고 했어.
-동시집 베껴 쓰며 글자를 익혀 군에 간 손자에게 편지를 썼다.
야학 열어 천자문 가르쳤던 외할아버지는 딸자식은 학교에 안 보냈다.
계집애 가르쳐서 시집 보내면 잘사네 못사네 편지질 해서 못 쓴다고.
까막눈 어머니의 서울살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버스 타고 다닐 때 간판 보고 가나다라 깨우치고,
신문 '고바우 ' 만화 떠듬떠듬 읽다가
신문 연재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를 빠짐없이 읽으셨단다.
그거 읽을 욕심에 얼른 청소 일 해놓고 .
국민학교 문 턱 안 넘었어도 쇼팡도 알고 링컨도 안다.
어머니의 학교는 책이다.
- 책 읽는 재미에 밤새워 소설책 한 권을 떼셨다.
덕치댁
당신이 나고 자란 땅이 세상의 전부인줄 안다.
늘 먹던 음식만 먹고
늘 입던 옷만 입고
서울물 먹었어도 여전히 촌사람이다.
잘난 남편 하늘 같이 믿고 살다
시앗에게 빼앗겨 피눈물로 살았다.
의지가지없이 자식 다섯 먹여 살리느라
멍에 걸머진 황소처럼 살아냈다.
세상에 믿을 것은 오직 자신의 몸둥이 뿐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양 손 오그려 쥐고 그렇게 한 세월 살아냈다.
아직도 가슴에 시새움 남아
나 죽으면 지팡이 꼭 묻어주라이.
그년 만나면 후두러 패주게.
세상살이 어려움 다 잊어도
그 상처 떨쳐내지 못하는 가여운 덕치댁.
현몽 (現夢)
온 몸이 쑤시고 아파 그만 살고 싶다는 어머니
귀찮아 소리 입에 달고 사신다.
너그 아버지는 뭐 하느라 안데려가나 모르것다.
어머니 넉두리에 귀가 아팠을 아버지가 현몽하셨다.
어디 갔다가 집에 와 본게 너그 아버지가 도배를 싹 히놨더라.
을매나 이쁜 도배지를 발랐던지 방이 너르고 환하더라.
어매 좋은거 웃다가 꿈을 펀득 깼다.
며칠 뒤에 아버지가 사위를 비서로 달고 또 찾아 오셨다.
꿈에 생전 가보도 않은 산으로 어디로 막 가는데
맨 앞에 너그 아버지 뒤에 서 서방 내가 꼬래비로 갔다.
너그 아버지가 돌아보고 당신은 좀 있다 천천히 와 하더라.
아버지 그 마음 알겠다.
어머니 성화에 그만 데려가시려다
어머니 빈자리 서운할 자식 생각에 천천히 오라 이르셨다는 것을 .
지긋지긋 징글징글한 일제 시대와
눈깜박할 순간 목숨이 오가는 전쟁 중에도 살아남아
포탄에 무너진 세상에서 지문 닳도록 일 했지만
핸드폰 하나로 모든게 해결되는 인터넷 세상이 이리송 낯설다.
먼 나라에 있는 아들과 영상 통화도 신기하다.
방금 했던 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묻고 또 묻는 어머니
여덟살 아이가 된 어머니가 바다 보고 함박 웃음을 웃었다.
어머니는 자동차를 타자마자
강릉 바다도 잊고 자꾸 어딜 가냐고 묻는다.
밤줍기는 세상 즐거운 놀이
온 산에 밤꽃 향내 퍼지면 설레는 마음
하루하루 손 꼽아 기다리다가
아람이 벌고 밤톨이 툭 떨어져 구르면
산비탈 오르내리며 구석 구석 샅샅이
허리 구부렸다 폈다 재미난 보물 찻기
80세 서울 운평구 상림마을
90세 . 원주 지정면 판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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