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순임 (91세) 1932년 생
열 아홉에 아홉살 연상 김봉곤과 결혼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서 임실면으로 시집와 1녀 4남을 두었다
1962년 서울 상경.
2015년 원주 지정면 이주
야학을 열어 천자문을 가르쳤던 외할아버지는 딸자식들은 학교에 안 보내셨다.
"계집애들 가르쳐서 시집 보내 놓으면 잘사네 못사네 편지질 해서 못 쓴다"고.
까막눈 어머니의 서울살이가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버스 타고 다닐 때 간판 보고 가나다라 깨우치고,
신문 '고바우 ' 만화를 떠듬떠듬 읽다가
신문 연재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를 빠짐없이 읽으셨단다. 그거 읽을 욕심에 얼른 청소 일 해놓고 .
"국민학교 문 턱도 안 넘었어도 쇼팡도 알고 링컨도 안다."
어머니의 학교는 책이다.
책을 베껴 쓰며 글자를 연습해 군에 간 손자에게 첫 편지를 썼다.
책 읽는 재미에 밤새워 소설책 한권을 떼셨다.
덕치댁
당신이 나고 자란 땅이 세상의 전부인줄 안다.
늘 먹던 음식만 먹고
늘 입던 옷만 입고
서울물 먹었어도 여전히 촌사람이다.
잘난 남편 하늘 같이 믿고 살다
시앗에게 빼앗겨 피눈물로 살았다.
의지가지없이 자식 다섯 먹여 살리느라
멍에를 걸머 진 황소처럼 살아냈다.
세상에 믿을 것은 오직 자신의 몸둥이 뿐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모아 쥔 손 오그려 쥐고 그렇게 한 세월 살아냈다.
아직도 가슴에 시새움 남아
“나 죽으면 지팡이 꼭 묻어주라이.
그년 만나면 후두러 패주게“
세상살이 어려움 다 지나갔어도
그 상처 떨쳐내지 못하는 가여운 덕치댁.
-
현몽 (現夢)
온 몸이 쑤시고 아파 그만 살고 싶다는 어머니
귀찮아 소리를 입에 달고 사신다.
"너그 아버지는 뭐 하느라 날 안데려가나 모르것다."
어머니 넉두리에 귀가 아팠을 아버지가 현몽을 하셨다.
"어디 갔다가 집에 와 본게 너그 아버지가 도배를 싹 히놨더라.
을매나 이쁜 도배지를 발랐던지 방이 너르고 환하더라.
어매 좋은거 하고 웃다가 꿈을 펀득 깼다."
그 며칠 뒤에 아버지가 사위를 비서로 달고 또 찾아 오셨다.
"꿈에 생전 가보도 않은 산으로 어디로 막 가는데
맨 앞에 너그 아버지 뒤에 서 서방 가고 내가 꼬래비로 갔다.
너그 아버지가 돌아보고 당신은 좀 있다 천천히 와 하더라."
나는 아버지 그 마음을 알겠다.
어머니 성화에 그만 데려가시려다
어머니 빈자리 서운할 자식들 생각에 천천히 오라 이르셨다는 것을 .
지긋지긋 징글징글한 일제 시대와
눈깜박할 순간에 목숨이 오가는 전쟁 중에도 살아남아
포탄에 무너진 세상에서 지문이 닳도록 일 했지만
핸드폰 하나로 모든게 해결되는 인터넷 세상이 이리송 낯설다.
먼 나라에 있는 아들과 영상 통화하는게 신기하다.
방금 했던 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묻고 또 묻는 어머니
여덟살 아이가 된 어머니가 바다를 보고 함박 웃음을 웃었다.
어머니는 자동차를 타자마자
강릉 바다를 본 기억도 잊고 자꾸 어딜 가냐고 묻는다.
밤줍기는 세상 즐거운 놀이
온 산에 밤꽃 향내 퍼지면 설레는 마음
하루하루 손 꼽아 기다리다가
아람이 벌고 밤톨이 툭 떨어져 구르면
산비탈 오르내리며 구석 구석 샅샅이
허리 구부렸다 폈다 재미난 보물 찻기
80세 서울 운평구 상림마을
90세 . 원주 지정면 판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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