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어머님이 4시에 일어나 밥짓고 했는데 어두울때 혼자 산길을 걷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눈이 오거나 비가 와서 길이 없어지면 산을 타고라도 어떻게든 가야 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학교에 안 가면 안돼요. 아버님이 아주 엄하셨어요. 그래서 12년 동안 개근했어요.

| 고종훈 74세 (1952년생) 정선 용탄리에서 태어났다. 지인의 소개로 24살에 22살 아내 만나 딸 셋을 두었다. 춘천 발전소 퇴직후 원주로 이주했다. |
정선 용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고 밑으로 남동생 셋에 여동생 한 명이 있어 형제가 칠남매입니다. 아버님은 83세에 가시고 어머님은 백수하셨고요.
6.25 전쟁 중에 태어났는데 워낙 산골이라 피난을 안 갖다고 하셨어요. 옛날에 정선은 울고 갔다가 울고 나온다고하는 오지였어요. 인민군이 남침하는 경로에서 벗어나 피해는 적었다고 하십니다.. 아버님이 경찰이라 저희 가족은 특별히 숨어있었다고 들었어요.
국민학교를 만 다섯 살에 들어갔어요. 집에서 가까웠으니까 걸어다녔지요. 그 때는 입학 통지서도 없고 그냥 손잡고 가서 다니겠다하면 입학 하던 시절이었어요. 대부분 시골아이들은 학교 늦게 가니까 동창이 나보다 5살 많고 그래요. 중학교 입학할 때가 되니까 아버지가 너는 너무 어려서 못 걸어다니니까 6학년을 한 번 더 다니라고 하셨어요. 중학교가 집에서 멀어 두 시간 거리를 걸어서 통학을 해야했어요. 6학년 공부를 한 번 더 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이십리 길을 걸어다녔어요. 겨울에는 어머님이 4시에 일어나 밥짓고 했는데 어두울때 혼자 산길을 걷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눈이 여기까지 오거나 비가 와서 길이 없어지면 산을 타고라도 어떻게든 가야 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학교에 안 가면 안돼요. 아버님이 아주 엄하셨어요. 그래서 12년 동안 개근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강에 나가 물고기 잡고 노는데 공부하라고 나가 놀지 못하게 하셨어요. 들키면 혼나니까 아버지 무서워서 나가 놀지도 못했는데 그 덕분에 공부는 잘했어요. 지금도 꿈꾸면 아버지한테 혼나는 꿈을 꿔요.
중학교 다닐 때 일찍 결혼해서 평창으로 출가한 누님이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로 와라하셨어요. 누님댁에서 중 고등학교 다니며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봄 방학 때 집에 다니러 갔는데 아버님이 너 대학은 못 보내준다 하시는거예요. 너를 대학에 보내면 네 밑의 동생 넷을 고등학교 까지 못 보내니까 네가 받아들여라 그러셨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는데 백부께서 내 밑에 와서 일 할래 하시는거예요. 백부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어요. 내키지 않았지만 금방 졸업하고 마땅한 자리도 없으니까 학교 가서 2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1-2학년은 애들을 다뤄야 하고 5-6학년은 중학교 입시가 있으니까 4학년이 제일 쉽다고 4학년을 맡기셨어요. 젊은 선생이 와서 같이 운동을 하니까 아이들이 체육시간을 제일 좋아했어요. 그때 제가 19살이고 시골 아이들은 늦게 학교 들어오니까 여자아이들이 다 자라 덩치도 크고 그랬어요 육학년 아이들하고 4-5살 밖에 차이가 안 났거든요. 음악은 올겐을 배워가면서 가르치고. 아이들이 잘 따라서 학교 생활이 재미있었어요. 전교생이 110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 였어요. 그러다 이게 내 길이 아니다 싶었어요 교육대학 나온 사람은 2급 정교사로 금방 승진하고 저는 일반 채용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승진도 안 되고 차이가 많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한전시험을 봤지요
신입사원일 때 중학교 교장 월급과 맞 먹었어요. 한전에서 몇 년 근무하다 김대중 때 분사가 되어서 남동 발전 중부 발전 서부발전 남부발전 같은 자회사가 많이 생겼어요. 수력발전하고 원자력 발전을 한데 묶어서 수력 원자력도 생겼어요. 일반 발전용 댐은 한수원에서 관리를 하고 안동댐 소양댐 대청댐 다목적댐은 수자원에서 관리하도록 갈라놓은 거예요. 저는 수력계통으로 들어가서 수력발전소 배치를 받아 춘천댐이 있는 춘천 발전소에서 일했어요.

발전소에서 3년 5년 사이에 오버올이라고 전체 부속을 분해 해서 정비하는 공사가 있어요 석달에서 다섯달 걸려요. 그런 발전기가 두 대 되거든요. 수력은 2만에서 5만 많으면 8만 킬로 와트 인데 원자력은 1개당 보통 200만 300만 킬로와트 그렇게. 비교가 안되게 규모가 어머어마 크죠. 원자력이 평상시에는 위험하지 않아요.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만 몇 천명인데. 특수직이라 거기서만 근무해요. 딴데 인사 발령도 안나고. 안보시설이라 경비가 삼엄하지요. 인부들을 쓸 경우에 회사에서 국가 기관에 의뢰해서 미리 신원조회도 해요. 원자력 부근에 있는 사람들은 암 걸린다 하지만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암 걸렸다는 소리 못 들었어요. 체르노빌은 아직도 사람이 못 들어가잖아요. 세계적인 추세가 탈 원전으로 가고있어요. 직장에서 발전을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제안서를 내서 사장상도 몇 번 받고 했으니 평탄하게 직장 생활을 한거죠. 35년 근무하고 2010년 정년 퇴직했어요

75년에 지인 소개로 일찍 결혼 했어요. 제가 24살이고 집 사람이 22살이었고요. 제가 집사람한테 나는 선도 한 번 못 봤다고 억울하다고 얘기 해요. 결혼생활은 직장 근처 춘천에서 했고요. 딸만 셋 낳았어요. 장인 어른이 자상해서 그런지 집 사람이 영향을 받은거 같아요. 나 만나서 살면서 한번도 상스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들 기를 때 욕을 한번도 안하니까 아이들도 똑 같이 순화된 언어를 쓰더라고요 . 어디 시골길 가다 밤나무 있으면 떨어진 것 줍잖아요. 내가 주우려하면 절 대 못 줍게 해요.. 내거 아니면 주으면 안됀대요. 운전할 때는 잔소리가 너무 심해요. 과속해도 추월해도 안되고 신호 위반은 더구나 그렇죠. 그런 성격이라 제가 좀 피곤해요.
아사다 지로 <칼에 지다> 읽어 보셨어요?
감동받은 책으로 첫 손을 꼽는 책인데 막부시대에 먹고 살기 위해 말단 무사로 고용된 남자 이야기예요. 밑바닥 인생인 주인공이 처자식을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한신이 유방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것 처럼 처연해요. 그 정도로 모든 모욕을 참아내면서 가족을 위하는 사람이에요. 너무 감동을 받아 가지고 우리 아이들 결혼 할 때 사위들에게 선물했어요. 모진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운명에 맞선 치열한 삶을 배우라는 압력이지요. 집사람도 책을 좋아하는데 이해인 수녀님 시집은 저희 집에 거의 다 있어요. 수녀님 펜카페에 가입해서 이메일도 주고 받았는데 부산 작업실까지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어요.
내 아이들이나 손주들 생일 어린이날 이런 때 꼭 책을 사줬어요. 한 번도 안 빼고 지금도 책을 선물해요 고등학교 2학년 손녀가 아, 이제 책 그만 하더라고요.
둘째 딸애가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외국에 나가서 3학년까지 다니면 국제학교 입학 자격을 취득한다고 했어요. 어린 아이 혼자 유학을 보낼 수 없어서 집사람하고 함께 말레이시아 남부에 있는 조호루바루로 갔어요. 싱가포르와 국경이 있는 신흥도시에요. 술탄궁전 같은 역사적인 건물과 수공예품 가게들이 있는 전통적인 분위기로 조용한 도시지요. 마트에 가면 한국 사람을 반겨주고 그래요. 외국인 빌리지 있고 도로도 넓고 교통량도 많지 않아 오른쪽 운전에 익숙해졌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애 데리고 나왔어요.
퇴직하고 집 사람 고향으로 왔어요. 기업도시 조성되면서 롯데캐슬1차 입주하던 때라 주변에 근린시설도 식당도 없어 불편했지만 조용하고 쾌적해서 좋았어요.
관리소에서 경로당 회원 가입하라는 공고문을 엘리베이터에 공지했어요. 경로당가면 늙은이 취급 받는다고 가입을 안하거든요. 관리소장이 전화해서 인원이 안 찼다고 가입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등록만 하면 되는줄 알고 집 사람 까지 가입했죠. 설립총회 참석해달라고 전화가 와서 갔는데 천 이백 몇 십가구인데 최소 인원인 19명 모였더라고요 . 소장이 임시사회 보면서 회장을 뽑아야한다는데 서로 모르니까 아무도 추천을 못했어요. 소장이 젊은 사람이 하는게 좋겠다니까 할머니들이 날 지목한 거예요. 설립만 해주고 빠질 생각으로 인삿말을 했어요. 집사람이 세상에 할 게 없어 노인회장을 하냐고 당신이 노인회장할 만치 늙었냐고 싫어했어요. 사방 알아봐가지고 정관 만들고 그때 민응규회장님 찾아가서 등록 절차 설명듣고 사인 받았어요. 롯데 2차 분양되고 호반 . 이지더원 차례로 입주되면서 경로당 설립때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거에요. 정관 복사해 주고 회계장부 처리하는 거 알려주고 경로당 개소를 도왔어요. 경로당에서 제가 일주일에 한 번 명심보감을 풀이해드리고, 그때 작가님 초청해서 강연도 들었잖아요.
기업도시 주민들은 맞벌이하느라 장 볼 시간도 없고 일이 생기면 얘들 맡길 때가 없어 애로사항이 많잖아요. 경로당에 애를 맡기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 돌보듯 봐주고, 자연부락에서 키운 농산물을 직거래 하면 좋겠다 해서 이장들이 주문 받아 판매한적도 있었어요. 경로당을 직거래 장터로 만들어 보려니까 공공 부지 사용하는 것부터 허가도 안나고 어려웠어요.

경로당 다니면서 회계장부 작성하는거 가르켜 주고 영수증 지출결의서 처리하는 거 해주다 민회장님이 노인 일자리를 소개 해주셨어요. 요즘은 노인 일자리 공공행정 업무 보조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세무서에서 민원안내하고 대필해주고 하는 업무를 했어요. 올해는 물빛누리 <가치있숍>에서 일하는데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무인판매하는 매대를 관리해요. 생산자와 구매자가 만나지 않고도 직거래 할 수있도록 중개자 역할을 해서 보람도 있고 재미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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