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통신 112회 <성탄절 유감>
하필 성탄절에 남편 장례를 치렀다.( 남편 생일은 석가탄신일. 장례일은 성탄절. 아마도 '날 잊지 말아요' 하는지도 ....)
어느새 4년 세월이 흘렀다.
아름이는 여름 방학 중에 아빠가 암투병 중인 것 알게 되고
엄마가 카페에 올리는 사진으로 아빠 건강상태를 짐작만 하다가
겨울 방학 때 비행기 안에서 아빠의 임종을 맞았다.
스무살 동갑나기로 만나 스물일곱에 백년가약을 맺은 우리는 고작 쉰 다섯에 사별을 했다.
결혼 29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온지 두 달 만에 남편이 암선고를 받았다.
처음엔 분심이 생겼다.
하느님은 없다고. 하느님이 있다면 이럴수는 없는 거라고.
그 다음엔 무조건 빌었다.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의사는 뇌종양 판정을 내리고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보호자인 내게 각서를 쓰라했다.
환부는 머리 정 중앙에 위치하고 조직 검사를 하다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절개를 할 수밖에 없다 했다.
수술과정에서 신경을 잘 못 건드리면 식물인간이 되는 것도 감내해야한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조직검사를 무사히 마친 남편을 중환자실에서 만났을 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라도 이겨내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냉커피를 마시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그를 보면서 세상엔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손톱을 깍고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서
나는 그의 어머니가 되어주기로 작정했다.
그는 정말로 갓난아기가 되어 품안에 안겼다.
주일이면 병원 기도실에 가서 그도 나도 간절히 매달렸다.
수없이 빌고 또 빌었다.
평소에 병원출입 모르던 남편이 항암을 시작하면서 겁먹고 무너지고 주저앉고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홀로 기도 하고 매달리면서
기도 받고 위안 받으며 하루 하루 살아냈다.
나는 충분히 이겨낼 낼 수있다 그를 독려하면서
미국에 있는 딸아이를 위해
하루하루 전쟁과 같은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카페에 올렸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
나는 그 사람을 보내고도 밥도 먹고 잠도 잘 자고 웃기도 잘하면서 살고있다.
투병 중에 장례중에
우리 부부를 염려하고 안타까이 바라보던 지인들의 기도를 잊을 수없다.
부산,광주. 제천 창원 서귀포 등지에서 병문안을 와준 선후배 지인들 사랑은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가면서 갚아야할 빚이다.
- 승환이 해병대 후임들이 우편으로 보내온 헌혈증 250매
- 자판기용 동전까지 챙겨준 백 아무개
남편을 보내고 얹은 게 있다면.
'집착을 버리고 희망을 품은 일'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다가려고 애쓴다.
그것이 그 사람이 가장 바라고 원하는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