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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119호 향기통신 세상에 애통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멀리 가는 향기 2011. 1. 23. 21:13

 

 

“엄마, 박완서 선생님 돌아가셨대.”

아들 아이 말에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봤다.

 

향년 80세. 지난해 담낭암 수술을 받고 자택에서 따님의 간병을 받다가 영면하셨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달님은 알지요’ 심사를 해주신 인연이 있다.

그 당시 선생님을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그럴 것 없다하셔서 꽃바구니로 인사를 대신 했었다.

그 후로 간혹 심사하는 자리에서 인사를 드렸다. 품이 넓으실 터이니 기억 못하실 터였다.

함께 심사를 하셨던 권정생 ,이오덕 선생님도 타계하셨다.

권정생 선생님 장례 때는  어머니 만류에도 무릎쓰고 장지에 갔다가 친정아버님 임종을 못 보았다.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으셨던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이 세상을 떠나셨다.

든든한 울타리를 잃은 것 같아 허전하다.

 

세상에 나고 죽는 것이 이치더라도 어떤 죽음인들 애통하지 않을까.........

이 나이되니까 육친을 보내는 애절과 존경하던 스승과 선배를 애도 할 일을 겪었다.

더욱이 동갑내기 남편을 먼저 보낸 뒤로는 덤으로 산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니 담담히 받아들자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고 이 순간을 열심히 살려고 애셨다.

그리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2006년 가을 어머니 위자료소송 재판 일이었다.

....................................................................

법정 대기실 앞에서 아버지의 첩이 어머니 측 증인에게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그 여자 얼굴을 대하는 순간 가슴이 뛰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40년간 우리 어머니 피눈물 흘리게 한 그 여자가,

아버지를 응급실에 버리고 간 여자가 적반하장 큰소리쳤다.

나는 가슴이 터지려는 걸 주먹을 쥐고 참아냈고 증언대에 앉아서

그 여자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조목조목 증언했다.

 변호사 사무실에 들려 귀가하는 길에 갑자기 위경련이 일어났다.

속을 끓인 탓에 급체를 한 것이다.

눈물이 쏙 빠지게 아픈 것을 이를 물고 참고 한의원으로 달렸다.

정신없이 달리다 그만 한의원 앞 골목에서 나오던 트럭과 부딪쳤다.

한 발만 앞섰더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트럭에서 내린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놀라서 소처럼 순한 눈만 껌벅거리는데 죄송하다 하고 병원으로 뛰었다.

침을 맞고 겨우 진정이 되어 침대에 누웠는데 내가 황천객이 되었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느닷없이 갑작스레 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제일 먼저 불쌍한 우리 어머니가 걸리고

중풍으로 누워계신 아버지가 걸리고

우리 아들 장가 못 보낸 것도 걸리고

조카에게 엄마 노릇 못해주는 것도 걸리고.

딸에게 친정 어미 노릇 못해주는 것도 걸리고

담배 못 끊은 남편이 병들면 꼼짝없이 딸애가 고생할 것이 걸리고

이래저래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함부로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깨워서 일어났더니 흰죽을 끓여 오셨다.

쟁반에 소화제까지 담아 오셨다.

다리 아픈 어머니가 쟁반을 들고 절뚝절뚝 계단을 내려와 내 방으로 오신 것이다.

나는 아직 죽으면 안 되는 거였다.

건강하게 살아서 우리 엄마 꽃방석에 앉혀 드릴 의무가 남아 있었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오래 살려고 노력한다.

어머니께 자식 앞세우는 고통을 드려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아직 여한이 남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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