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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동화나라 인형의 집을 꿈꾸다 2

멀리 가는 향기 2011. 1. 23. 12:20

‘셈치고’놀이

중학교 입학할 무렵 그토록 단란했던 집안의 온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외도를 4년 만에 알게 되셨다.  그 여자에게 덜미를 잡혀 직장 잃은 아버지는  다방을 차려주고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 5남매의 학자금 몫으로 마련해둔 오금동 땅과 김포 밭은  그렇게 그 여자 수중으로 넘어갔다.. 아버지 대신 5남매의 생계를 떠맡으신 어머니는 문간방을 세놓아 월세를 받고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하셨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와중에 남동생들이 엇나가지 않고 장학금 받으며 공부를 마친 일이다.

 나는 청소년기를 그림자처럼 보냈다. 목구멍까지 설움이 차올라서 입을 열수가 없었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말 수 없는 아이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웃음이 떠나고 온기가 사라진 쓸쓸한 집보다는 그래도 학교가 나았다. 학교 도서실에서 친구들이 입시공부를 할 때 나는 소설책을 읽었다. 그나마 책이 있어서 덜 외롭고 덜 쓸쓸했다.

 나는 주디가 되어 키다리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썼다. 아버지가 있는 셈치고, 생일 선물을 받은 셈치고, 내 방이 있는 셈치고 ... 그렇게 가난과 외로움을 견뎌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사준 소공녀를 읽고 세라에게 ‘있는 셈치고 놀이’를 배운 덕분이었다.

 

 

   <사진5. 여고 2학년 문학의 밤 >

 

 고등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은 덕에 글쓰기 대회 상을 싹쓸이 했다.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한 터라 학교 신문과 교지 만드는 일에 열성이었다. 나는 졸업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인문계 졸업장으로 취직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졸업을 하고도 모교의 시화전 행사를 도맡다시피 거들었다. 시화를 만들려고 화방에 들락거리다가 홍익 대학에 다니는 동갑나기 남학생을 알게 되었다.

 나는 미술이나 공예에 관심이 많았기에 훗날 남편이 된 미대생과 사귀면서 섬유 조형이나 염색 수업을 듣기도 했다.

친척의 소개로 취직이 되었다. 손뜨게 스웨터를 수출하는 섬유회사였다. 뜨개질과 자수에 소질이 있었으므로 적성에 맞았다. 주로 손뜨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녔는데 옷차림이 독특해서 일본인 수편물 디자이너 눈에 띄었다.

일본 수편물학원에 유학을 시켜준다는 제안을 받고 무역회사 디자인실로 옮기게 되었다.

 

 

 

<06, 스물다섯 살 송도 유원지, 비키니 수영복을 만들어 입힌 인형도 데리고 갔다>

 

 그러나 몸이 부서져라 일만하는 어머니에게 유학 얘기는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내 월급이 어머니께 큰 보탬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구나 남자 친구가 입대 한지 한 달 만에 나는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드러눕게  되었다. 그런저런 핑계로 일본 유학의 꿈을 스스로 접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편물 디자이너가 되었겠지만 동화작가의 길을 걷는 것보다는 덜 행복했을 것 같다.

 남자친구가 제대하고 가구회사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자마자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다.

워낙 약골인데다 살림을 익힐 새도 없이 출산을 했기에 힘에 부쳤다. 갑상선 이상으로 모유수유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가 싶어 육아에 정성을 쏟았다. 육아일기를 쓰고 장난감과 옷을 만들어 입히면서 살림 재미에 빠졌다.

.

 

<사진07. 승환이 아름이의 육아 기록>

 

 

 

 

 

<사진8>

 

<사진9 자투리 천으로 만든 동물 인형>

 

 백일 무렵부터 아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물 인형을 만들어 주었더니 데리고 놀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어휘력이 늘고 표현력도 좋았다.

 

 

손바느질로 아이 옷과 장난감을 만들어 주자니 시간도 걸리고 손톱 밑이 아팠다.

TBC-TV 부부대행진 퀴즈프로 3등 상품이 재봉틀이기에 재봉틀 탈 욕심으로 출연을 했다. (50쌍이 예선전을 치르고 5쌍이 녹화 방송을 했다) 시어머니께서 9개월 된 승환이를 업고 방청석에 계셨는데 엄마에게 오겠다고 때를 써 방송이 중단되기도 했다. 3등이 목표였는데  1등을 하고 말았다. 프로듀서에게 3등 상품과 바꿔 달라고 했다. 아기 옷과 장난감 만들려면 재봉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이 양반이 1,2,3등 상품을 몰아주고 양장, 구두, 반상기 등 협찬상품 까지 챙겨 주었다.

 

 

<사진11. 책을 읽어주고 인형 놀이를 하면서 그 뒷이야기를 상상하도록 했다>

 

 아이에게 전래동화책을 읽어주면 ‘그래서?’ ‘왜?’ 하고 뒷이야기를 궁금해 했다. 전래동화 속의 등장인물들을 부직포로 만들어서 컵이나 음료수병에 세우고 뒷이야기 이어가기 놀이를 했다.

재봉틀이 생긴 뒤로 아이한테 필요한 물건은 전부 만들었다.

이불을 차내는 아이를 위해 토끼모양 침낭을 만들고 , 피에로 잠옷 주머니, 동물 쿠션,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조끼 등을

만들다보니 아이디어도 늘고 솜씨도 좋아졌다.

 

 

<사진12 장갑오리>

 

예전에는 주유소에서 장갑을 주었다. 면장갑에 엄마 오리 아가 오리 얼굴을 만들어 붙이고 ‘미운 오리새끼’ 놀이를 했다.

둘째 아름이는 조산아였다. 수유양도 적고 입맛도 까다로웠다. 이유식을 할 월령이 되었는데 티스푼으로 떠 주는 음식은 외면했다. 나무판자에 거북이 등껍질 문양을 수놓아 씌우고 바퀴를 달아 거북이 자동차를 만들었다.

아름이를 거북이 자동차에 태워 기분 좋게 끌어준 다음 이유식을 떠먹이면 받아먹었다. 이유식 의자를 만들어 준 셈이다.

 

<사진13. 81년 새생활 전시회 /거북이 자동차로 우수상>

 

 

 

 아이들 장난감 때문에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다. 목재소에서 설계 도면대로 나무를 잘라다가 장난감 마차를 만들었다.

마차 안에 장난감을 수납하고 뚜껑을 닫으면 인형극 무대가 되었다. 지붕이 달린 쪽은 아름이 소꿉놀이 집이 되고.

 

 

<사진 15 아름이가 제일 좋아한 빨간모자 인형>

 

 승환이는 사내아이라 동물 인형을 만들어주었지만 아름이는 ‘빨간모자’ 같은 그림동화 속 주인공 인형을 만들어 주었다.

인형과 똑같은 옷을 입고 엄마 놀이를 즐겼다. 아름이는 세상에 하나 뿐인 엄마표 옷을 원없이 입었다.

 

 

 

<사진16 할머니 한복으로 만든 드레스>

4학년 때까지도 공주 드레스를 입었는데 친구들에게 시샘도 많이 받았단다.

 

 

 

<사진 17 커풀룩을 입다>

 

아이들 데리고 다닐 때는 패밀리룩을 만들어 입었다.

승환이를 신륵사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체크셔츠 패밀리룩 때문에 쉽게 찾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18 '엄마랑 아가랑'잡지 원색기획 >>

 

 손재주와 눈썰미 덕에 수공예공모전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상도 탔다. 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텔레비전에 빈번하게 출연을 하게 되었다.

                                            kbs 퀴즈프로   3등 상품인 미싱을 타기 위해 출전. 

 

                                            이경규 사회  <엄마의 솜씨 자랑> 아가방 패션쇼

              kbs-tv 830프로 마로니에 백일장 수상자 출연

 

     kbs <맛자랑 멋자랑> 가수 한영애 리포터

                                             아이들과 인형 만들기와 간식  시연

 

        <TBC.TV <부부오락관>

 

 

           kbs 1 시사 교양프로 <가정저널>

                                   sbs  내 인생의 스승

   mbc   차인태 아나운서 아침방송  <아이와 함께 쓰는 교환 일기>

 

             mbc 여름방학 캠프  리포터

 

 

                   kbs 엄마가 쓴 동화

 

              

 

 kbs- tv  <엄마의 방> 육아 기록 소개

 

주부대상 아침프로에 고정 패널로 나갈 정도였다. 동시인 김숙분 씨가 갓 등단했을 때 나를 알아보고 한 말이 있다.

TV를 켤 때마다 내가 출연을 하기에 우리 남편이 방송국 피디인 줄 알았다고.

 

 

<사진19. 리틀엔젤스회관 >

 

 1989년 KBS방송국 주최 ‘으뜸주부를 찾습니다’ 대회가 있었다. 효성과 육아가 남다르다는 주위 분들의 추천으로 예선을 치르고 본선에 참가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처럼 일주일간 합숙을 하면서 예의범절과 교양, 됨됨이. 솜씨 등을 검증 받았다. 36명의 각 지역 후보들이 생방송 인터뷰와 심사로 으뜸주부를 가리는 대회였다.

 대상을 탄 으뜸주부는 시가 친가 양쪽 부모님을 한 집에서 모시는 유치원 원장님이셨는데 합숙을 하는 동안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삼십 중반 까지도 내가 작가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 한 것도 아니고 남들 입시 공부할 때 책을 읽은 것 밖에 내세울 경력이 없다.

 내 동화가 교과서에 실리고 외국어로 번역 출판될 줄 알았겠는가.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고 인형놀이로 상상력을 키워 준 것이 스스로를 도운 셈이다.

 

 아이들 엄마로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일간지에 투고 했는데 그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을 해왔다.

 글 솜씨 있는 주부들의 글을 묶어 책이 나왔고 자연스레 문학회도 만들어졌다.

 문학회 동인들을 따라 백일장에 나갔다가 당선이 되고 정채봉 선생님께 동화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렇게 동화세상에 발을 들여 놓게 되고 정채봉 선생님 1호 제자가 되었다. 1987년의 일이다.

멋모르고 시작한 창작수업은 엄청난 체증이 되었다.

동화를 쓰려면 재능이 신명과 만나는 치열한 몸 떨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에서 도망치고자 했다.

공부 시작한지 석 달 만에 도중하차할 핑계거리가 생겼다. 시어머니께서 폐암으로 입원을 하신 것이다.

 항암치료로 식욕을 잃으신 어머니 입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고, 4학년과 2학년짜리 남매를 돌보며 집과 병원을 오가느라 동화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자기를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하지 않는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던 정채봉 선생님 말씀이 동아줄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훈련은 탁월한 사람과의 교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속뜻을 뒤늦게 깨닫고 동화에 대한 열병을 앓았다.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로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다.

 2년 연거푸 낙선되고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남편이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었다.

새벽 산책길에 말라비틀어진 목화송이를 꺾어왔다.

목화송이를 보는 순간 그 동안 동화를 쓴다고 들인 공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목화송이로 무명베를 짜기까지 여인들이 들인 공력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 2월 내내 농업박물관에 가서 베틀 구조를 익히고 친정어머니께 길쌈 과정을 여쭈면서 <베틀노래 흐르는 방>을 썼다.

 당선 통보를 받기 전 날 한 마리 단정 학이 소나무에 내려앉는 꿈을 꾸었다.

 

 

 <사진20 삼성문학상 윤석중 선생님께서 시상 >

 

 1991년 마흔 살에 계몽아동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등단을 했다. 10살에 품은 꿈을 삼십년 만에 이룬 것이다.

 93년 장편동화 ‘달님은 알지요’로 삼성문학상을 거머쥐었을 때 나는 문단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신문 방송 잡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더 나은 작품을 선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강태공이 날마다 월척을 하는 건 아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어야 잔챙이도 낚고 월척도 낚는 것이다.”

아버지 말씀에 힘입어서 습작해온 원고들을 손보아 출간을 시작했다.

올해로 등단 20년이 되는데 내 이름을 걸고 나온 책이 67권이 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면 우주 전체가 그 꿈을 이루도록 돕는다. 하지만 먼저 위험을 감수하고 첫 발을 내딛어야 한다.”

그렇다. 친정아버님이 도서관으로 이끌어 주신 것도 남편이 포기 하지 말라고 여행을 보내 준 것도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도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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