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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짇고리

249호 재페닝 캐비닛

멀리 가는 향기 2012. 2. 12. 23:28

                     

                                     재패닝 캐비닛

 

 

                 

검은 칠을 한 가구를 유럽에서 재패닝(Japanning)이라고 불렀다.

도자기를 차이나라고 부르는 것처럼. 검은 락커칠은 일본이 원조라고 생각했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우리나라의 옻칠도 재패닝으로 표기된다.

캐비닛(Cabinet)은 중요 물품을 보관하는 큰 사이즈의 가구를 말한다.

17세기 이후에 캐비닛 가구업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뷰로,테이블, 드로어 등의

복합 기능을 가진 가구로 발전 시켰다.

그 당시 가장 솜씨 좋은 가구장인을 일컫는  Cabinet Maker 라는 명칭도 생겨났다. 이때

 토마스 치펜데일, 토마스 쉐라톤  같은 유럽 가구 역사상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명성을 얻게 된다.

 

베니스 출신 마르코 폴로가 동양에 다녀오면서  동양의 붉은색과 검은색 가구가  유럽에 소개 된다.

동양에서 온 신비한 색감의 가구에 매료된 유럽의 왕족과 부호들이 앞다퉈 재패닝을 사들이면서.

  베니스 상인들은  동양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게 되었다.

베니스에서 나온 가구만이 진품으로 인정 받게 되자 수요가 달렸다.

 베니스 상인들은 가구의 겉껍데기만 가져다 붙여 팔다가 종이와 바니쉬를 여러겹 덧칠한 모조품을 만들었다.

유럽의 가구장인들 사이에 서양식 가구에 동양의 색감을 입혀 동서양 퓨전가구를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모방으로 시작한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양식)는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졌다.

가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수요를 공급할 수 없었던  캐비닛 메이커들은

얇은 나무에 종이조각과 고무 등을 덧대 붉은 칠과 검정칠을  여러 번 덧칠한 

파피에 마쉐 (Papier Mache)기법을 만들어 낸다.

유럽의 장인들은 한 단계 더 발전 시켜 하얀색, 녹색.핑크색 등 다양한 색상과 형태에

파피에 마쉐 기법을 혼합한 독창적인 가구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여기서 파피에 마쉐 기법의 수집품을 보여드리면 이해가 쉽겠죠잉.

 

-Victorian  Old Blotter(1869) 압지철(서류에  잉크나 먹물로 글씨를 쓴 뒤 번지지 않토록 압지로 누르는데 그 압지를 모아두는 파일)

요 작품을 만든 사람이 당시 유명한 장인이어서 영국 빅토리아 엔 길버트 박물관에 가면 그 사람 작품의 진수를 볼수 있대요.

제가 그 박물관에 갔을 때는 대대적인 수리기간이라......)

 

 

 가구에 무늬와 색상을 입히는 기술이 17세기에 유행했는데  18-9세기를 지나면서

화병, 거울, 촛대, 그릇 등에 다양하게 응용된다.

재패닝 가구를 장식하던 파피아 마쉐 기법은  데쿠파주(Decoupage)라는 새로운 기술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재패닝 기술의 응용은 19세기 산업혁명기에 이르러 절정을 맞게 된다.

 번쩍번쩍 광이 나는 검정색 금속 코팅기술을 발전 시켰는데 자전거의 금속을 보호하게되자 각광을 받는다.

자전거에 사용한 금속 코팅 기술은 자동차, 선박, 비행기, 철도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현재 사용하는 페인트 ,바니쉬, 라커의 발전은 동양에서 들여온 옻칠기법을 알지 못한 유럽의 장인들이

모방품을 만들면서 수백년 동안 발전시켜 온 결과물이다.

                 동양풍 중국풍으로 대변되는 중세의 시누아리즈가 21세기에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이 귀한 재패닝 캐비닛을 어떻게 우리 집으로 모셔오게 되었는가 궁금하실테다.

     기자촌 집 입구에 고물상이 있었다. 규모가 엄청나서 벼라별 물건들이 다 있었는데

    값이 나가는 엔틱들은 이어달아 만든 방안에 모셔 두었다.

    인형을 수집하러  드나들면서 단골이 되자 주인 아저씨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경상도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공부했단다.

   할아버지 슬하에서 공부만 하다간 할아버지처럼  갓쓰고 도포 입고 평생을 보낼 것 같더란다.

  그래서 서울로 야반 도주를 하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노라 했다.

   기자촌이 은평뉴타운으로 개발 되면서  고물상의 물건들을 영화사 소품으로 넘기게 되었다고 했다.

  노후를 경치 좋은 강가에서 카페나 하면서 당신 살아온 이야기롤 소설로 쓰고 싶다 했다.

 

영화사에 넘기기 전에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업어가라 했다.

그가 값진 물건을 맡겨두었다는  곳으로 갔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선 양옥집 이층 베란다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재패닝 캐비닛을 발견했다.

처음엔 나도 옥석을 가리지 못했다.

칙칙한 검정 옻칠도  파피아 마쉐 기법의 일본풍 그림도 마뜩찮았다.

하지만 유럽풍 가구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화이트 가구로 리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가 10만원에 업어가라며 트럭 운반비 3만원은 따로 내라고 했다.

그 당시는 횡재한 줄도 몰랐다.

저 덩치를 어느 세월에 화이트 칠을 하나 그 걱정 뿐이었다.

 

깨끗이 닦아서 광을 내고 보니 볼 수록 마음에 들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금박칠이 흐릿해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옻칠 공방을 알아내고 수리 견적을 의뢰 했다.

 

K공방 아저씨는 마침 자기에게 똑같은 색의 일본 금분이 있노라고 했다.

어려서 옻칠공방에 도제로 들어갔는데 기술은 안 가르쳐주고 월급 없이 허드렛 일만 시키기에

견디다 못해 도망나왔다고 했다.

그의 스승은 일본에서 옻칠을 배워온 기능장이라 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헐벗고 고생하면서 일만 한 것이 억울해서 스승이 아끼던 금분을 훔쳐 나왔다고 했다.

그때 함께 들어갔던 도제는 스승의 기술을 물려받아 수제자가 되었다며

배고픔을 참지 못한 자신을 어리석다 했다.

그 양반이 자신이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부려서 맘먹고 수리를 해 볼테니 한달 간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수리 비용은 백만원을 지불 하기로 하고 캐비닛을 실어 내갔다.

그날 그 양반에게 <달님은 알지요>를 사인해주며 훗날 박물관에 들어앉을 가구니 정성을 다해 달라 부탁 했었다.

 

얼마 뒤에 그 양반 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지은 다른 책도 있나요? 어디가면 살 수있지요?"

"서점에 가면 있는데 왜요?"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가 가방 끈이 짧아 생전 처음으로 책을 읽었는데요.

너무 좋아서 제 아들 놈에게 몇번이나 자랑해서 지금 읽고 있습니다.

저는 영분이 엄마하고 송화 아부지가 재혼을 할까하고 조마조마 했는데 끝끝내 재혼을 안시키시대요......"

그 양반이 책 내용을 줄줄 읊어대며 흥분을 했다.

그리고 내 맘에 쏙 들게 수리를 해왔다.

 

 

 

나는 새단장을 하고 온 케비닛 장식장에  헝겊벽지를 바르고 마룻장을 깔아 돌하우스를 짜넣었다.

1층에 거실과 화장실을 ,이층에 재봉실과 주방을 , 삼층에 베드룸과 아이 방을 꾸몄다.

돌하우스 소품들은 1800년대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만든 소품으로 채웠다.

수집이 어려운 것은 내 손으로 만들었다.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가재도구들을 바라보면 흐뭇하다.

 

아마도 이 가구와 돌하우스는 '동화나라 인형의집'에서 세기를 뛰어넘으며 뭇사람들의 눈요깃거리가 될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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