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일상 다반사

294호사라지는 우리 말

멀리 가는 향기 2012. 6. 7. 10:19

 

 

"앵두가 인제 살 탔등만"

 

어머니가 내 책상 위에 앵두를 올려 놓으며 하신 말씀이다.

뜬금없는 말씀 중에 간혹 정겨운 우리 말이 살아있다.

그런 우리 말도 이제 어머니 세대에서 끝나지 싶다.

x   x    x     x

2007년도에 <달님은 알지요>개정판을 내면서

송화 할머니의 황해도 방언을 살려쓰기로 했다.

황해도 방언을 감수해줄 어르신을 찿느라 이북5도청 홈페이지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남겼다.

얼마 뒤 카페 관리를 맡고 계신다는 어르신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그분이  해병대1기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 하시기에 우리 아들도 해병출신 이라했더니

이 양반이 두 팔 걷어부치고 도움을 주셨다.

황해도 해주 출신의 시인 할아버지( 갑자기 그 분 성함이 떠오르지 않는다)를 소개하셨는데

마침 그분은 사라져가는 황해도 방언을 수집해서 정리 하시는 중이었다.

내가 쓴 원고를  그분이 황해도 방언으로 고쳐 주셨다.

x    x    x

작품 속에 방언과 맛깔나는 우리 말을 살려쓰는 일은 작가로써 게을리 말아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종종 독자들이 묻는다 순 우리 말을 일부러 사전에서 찿아 쓰느냐고.

사전에서 찾아쓰는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쓰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면 덕치 외가에서 뛰어 놀았다.

외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구수한 옛이야기속의 입말들이 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쟁여졌다가

나도 모르는 순간에 하나 둘 떠오르는 것이다.

 

 x     x     x

 

지난 밤  전기 밥솥에 밥을 앉히고 보온상태로 둔 모양이었다.

아침에 보니 밥이 설었다. 물을 좀 더 붓고 취사를 눌렀다.

취사 버튼을 누르는데 자꾸 에러 메세지가 떴다.

"왜 이러지 자꾸 에러가 나네?"

어머니가 쓱 넘겨 보시더니

"이걸(밥통 위의 잠금 레바) 돌리도 않고 에러 난다고 혀."

"엄마, 에러가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만한 말도 못 알아먹고  팔십을 먹냐?"

X    x    x

 

오래 전에 어머니가 우는 아기 인형을 주워 오셨다.

배꼽을 누르면  얼굴을  씰룩이고 눈까지 껌벅이며 우는  인형이었다.

피부도 말랑말랑한 것이 리얼 베이비 맞다.

"딸이 인형 메니아 봉께 내 눈에 인형만 보이데."

우리 어머니도 이제는 영어를 섞어 쓰신다.

 

우리 륭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쓰는 영어가 '아시크림, 바이올링' 콩글리쉬라

제가 듣기에도 이상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무슨 대학 나왔어?"

"나는 먹고대학 나왔제."

"먹고대학? 그런 대학도 있어?"

우리 륭이 한참을 갸웃갸웃 하더라는.............

 

팔십 노모도 영어를 쓰는 마당이니 깨끗한 순 우리말은 이제 눈씼고 찾아봐야 할 세상이 되었다.

'일상 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0회 이벤트  (0) 2012.07.03
298호 호작질1  (0) 2012.06.29
289호 가을선생  (0) 2012.06.01
292호 어슬렁어슬렁  (0) 2012.05.27
286호 새식구  (0) 2012.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