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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추억

435회 동유럽여행기6 체코

멀리 가는 향기 2013. 6. 15. 19:22

일곱째날  프라하성 -궁전-까를교 -천문시계탑-틴성모교회- 체코 플젠-체스키크롬노프

 

흐프라하성 라트차니광장 대통령관저

 

 

 

 

성비투스대성당

 

 대부분 카토릴릭 성당  내부 분위기는 엄숙하고 장엄한데 개신교 성당분위기는 밝고 환하다.

이 곳은 교회라기보다 결혼식과 각종 연주회 장소로 쓰인다고.

 

 

 

성에서 구시가지로 이동 중에 트렘 2정거장, 지하철 1정거장 을이용했다.

프라하 지하철은 구 소련에서 모스크바 지하철과 같게 만들어줬단다.

 

 

<프라하시민회관 > 오베츠니둠이라불리는 이 건물에 겔러리 콘서트홀 레스토랑 등이 모여있다.  아르누보 형식의 건축물.

 

카를교는 구시가광장과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다리로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릿지 타워로 구성되었다.

이 다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다리로 손꼽힌다고.

 

 

카를교에서 웨딩 리허설 촬영 나온 한국인 커풀을 보았다.

<프라하의 연인>이 방영된 후에 프라하로 신혼여행오는 커플이 엄청나게 늘었단다.

 

 

 

'보헤미안빕' 짜지 않고 식감이 부드러워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천문시계탑 전망대>

 

옛시청사에 붙어있는 천문시계탑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상단에 있는  두개의 창문 위에 황금 수탉이 있고 , 매시간 정시가 되면 창문이 열리고 "사도들의 행진.이라 이름붙은 12사도 조각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행진이 끝나면 닭이 회를 치고 시간을 알린다.

그 아래 원형 틀은 해와달 별의 위치를 알려주는 천문판이다.

 

중세의 천동설에 따라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태양과 당의 궤도를 모방해 놓았다.

조각상들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 자만, 분노, 색욕, 탐욕, 탐식, 시기, 나태)을 상징하는 데, 거울을 보고 있는 조각상은 허영이고, 돈주머니를 들고 있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의 모습이 탐욕이다(그 당시부터 유대인들이 어떠하였는지를 반영해 주는 증표) 죽은을 의미하는 해골,매시 정각이 되면 이 해골 인형이 줄을 잡아당기고 12제자의 행진이 시작되고 베드로의 황금닭이 운다.

 

하단의 원형틀은 달력이다. 원판의 중심에 그려진 것은 구시가의문장, 원안의 그림은 12궁도,바깥 원안의 그림은 보헤미안 농민들의 12달 생활상.

원형판 밖의 조각상은 책과 펜을 든 연대기 기록자, 칼과 방퍠를 든 천사. 망원경을 든 개척자와 책을 펼쳐든 천문학자 조각상

 

1410년 시계제작자 카단의 미쿨라쉬얀 온드레유브에 의해 만들어졌다. 1490년경 달력이 추가되었으며, 시계 전면부가 고딕 양식의 조각들로 장식되었다.

1552년 시계 장인 얀 타보르스키가 수리를 했으며, 그가 하누슈를 시계제작인으로 언급한 문서를 남김으로써 한동안 하누슈가 천문시계탑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단다.

하누슈에 대해서는 전설이 전해지는 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이 다른 곳에서도 그가 이런 걸작을 만들까봐 우려해 하누슈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다. 복수를 결심한 하누슈는 조수에게 도움을 청해, 시계탑에 다시 올라갔고, 어느 누구도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계를 부쉈다고 한다. 그가 시계에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시계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죽거나 미쳐버리곤 했단다.

 

 

 

 

 카를대학교수 얀 후스는 부폐한 카톨릭교회와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다가 독일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후에 카톨릭의 타락을 보다 못한 루터가 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95개 조항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부르짖었다.

 결국 교황청이 루터를 종교재판을 통해서 죽이려하자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를 보호하고 정통성을 주장하여 생긴것이  개신교이다.

카톨릭 교회가 부퍠하고 신격화된 교황이 부정축재를 하면서 야누스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지만 그는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한다.

루터가 던진 파문은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종교개혁이라는 소용돌이로 유럽전역에 퍼져갔다.

독일에서 신구교간의 갈등으로 시작된 내전에 주변국이 종교를 빙자하여 개입하게 되고 정치경제적 이해 관계가 얽혀들어 국제전으로 번지게 되었다.

30년동안 종교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관련자들 27명이 처형을 당하고 카를교에 10년동안 목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던  체코에  무신론자, 종교 환멸론자들이 많고,

 프라하는 유럽 최초 종교 자유도시가 되었다고.

 

 

 우리 일행이 놓친 곳.

 

프라하 구시가지 황금소로 (연금술사들이 모여살던 골목)에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 있다.

독일계 유태인이던 그가 <변신><소송><성><선고> 등을 쓰면서 일생을 보낸 곳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그는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글을 쓰고 싶어했는데, 그의 누이가 마련해준 집이 바로 이곳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점심때부터 새벽까지 이곳에서 글 쓰기에 열중했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 바라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열망했고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라는 책이 출간 되었을 정도로 가슴에 담아두고 못다한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그리 아름답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묘사 되었다.

프라하를 대표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무명이었기에  유대인 묘지에  쓸쓸히 묻혀있다.

글쓰는 일에 일생을 바쳤지만 살아있는 동안 인정을 받지 못한 작가.

그는 죽기 전에 친구 막스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불태워 달라고 부탁을 한다.

브로트는 카프카 사후 그의 원고를 모아 출간을 했다. 결국 그는 생을 마친 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보헤미아의진주  체스키 크롬노프(체코에 있는 말발굽처럼 휘어진 강에 있는 풀밭)

 

 

1992년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주목받기 사작한  체스키 크롬노프는 볼타강이 S자로 흐르고있는데 안동의 하회마을을 떠올린다.

 

<라푼젤>을 떠올리는 탑이 있는 성곽길을 따라가면

 

망토다리가 나온다.

성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다리로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

망토다리와 성벽에 연결된 요새같은  건물.

 

볼타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체스키크롬노프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들을 지나고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성으로 향한다.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

 

 

미니어처 장난감 집을 늘어놓은 것 같다.

성에서 나와 구불구불 골목길을 탐색.

 

'뜨루들로' 빵가게

반죽을 긴 원통에 감아 구워 설탕을 뿌린 체코 전통 빵. 한개 2.5유로 . 들고다니며 찢어 먹는 맛이 고소하다.

이 빵가게를 끼고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 에서 엔틱 가게를 발견했었다.

내려오는 길에 후다닥 뛰어들어가 얼굴과 바디는 가죽이고 팔다리는 나무로 만들고 소리까지 나는 엔틱 인형을 하나 입양했다.

흥정 끝에 80유로 낙찰.

 

 

시청사앞 광장에서 하프 연주하는 아가씨.

 카페에 앉아 잠시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이 자유시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