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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회 동유럽 여행기4 슬로바키아-폴란드

멀리 가는 향기 2013. 6. 15. 17:03

 

다섯째날  헝가리-슬로바키아- 폴란드국경 -소금광산-바벨성 마차투어-

 

버스를 타고 헝가리에서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었다.

 

서쪽으로 체코,북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헝가리 남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경이다.

독립이전에 헝가리 지배를 받은 탓에 국민의 10%가 헝가리인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민족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합스부르크 제국의 세력 확장을 방어하기 위해 원만한 합의를 통해 나라를 합쳤다.

공산주의 사상하에 한 나라로 뭉쳐있다가 정치인들의 협상 끝에 1993년 1월 1일  벨벳혁명으로 일겉는 무혈분리가 되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호텔

식당의 대형 테피스트리. 스물 세 살 때 면사로  매듭  테피스트리를 짰었다.  옛 추억이 울컥.

 

 

다시 버스를 타고 슬로바키아 산악지역을 넘어 폴란드 폴란드 비알리츠카 소금광산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에 기록된 세계12대 관광지.

이런 나무계단을 380개를 걸어내려가 65미터지점부터 135미터지점까지 관광을 한다

 

 

 

             

 

헝가리 킹카공주는 폴란드왕 볼레스와프와 결혼하기위해 폴란드로 오던 중에 트란실바니아의 소금물습지에서 약혼반지를 빠트렸다.

폴란드에 도착한 공주는  트란실바니아 주민들에게 반지를 찾아 땅을 파보라고 했다.

주민들이 땅을 파내려가자 암염층이 나왔고 소금광산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암염광산 개발로 킹카공주는 비엘리치카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13세기부터 본격 채굴한 암영광산은 폴란드 왕국 재정을 좌우할 만큼 중요해졌다.

700년동안 약 2600만 킬로그램의 암염을 채굴했다.

 

광광산 내부에 180여개 갱이 있고 채굴이 끝난 갱이 2000여개가있다

17세기부터 채굴량이 줄어 광산으로 쇠퇴했으나 년간 8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있다

 

                                                           광부들의 인삿말은 '하느님께 영광을'

 

지하 100미터 지점에 있는 '축복받은 킹카교회'

9층으로 나뉜 갱도의 깊이는 300미터 갱도의 총길이 300키로미터나 된다. 때때로 이 거대한 채굴공간은 운동장이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시집 오면서 소금광산을 지참금으로 가져왔다고 칭송 받은 킹카공주를 위한 예배당.

 성모상을 비롯한 부조들과 심지어 상데리아까지 모두 소금의 결정체로 만들었다.

 

 

무려 700년에 걸쳐 광부들에 의해 성서의 사건들이 조각되었다.

 

 

예식장,콘서트홀로 쓰이는 공간도 있다. 인간의 의지와 신앙심으로 만든 공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1964년부터 지하 211미터 지점에 요양소가 설치되어 천식이나 알러지 환자가 치료 목적으로 요양하고 있다.

갱 안의 공기속에 세균류가 적고 소금을 비롯한 미네랄 성분이 풍부히 포함 되어있어 치료효과가 있다고 알려진다.

 

 

폴란드 서쪽은 독일 동쪽은  구 소련,  양국 사이에 끼여있는  폴란드는 전국토가 유린당했다.

그 상흔이 얼마나 컷을까?

폴란드 국민의 95%는 카톨릭 신자이다.

집 마당이나 마을 어귀 공터는 물론 도로변 숲 속에까지 성모상이 서있고  꽃무더기로 꾸민 기도처가 있다.

 

심지어 벽 장식에도 성모상을 모셔 두었다.

 

유럽 연합국가  대부분 카톨릭 국가지만  폴란드처럼 여염집  깊숙히 성모님이 모셔진 모습은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만큼 간절하게 염원하는 바가 크고 .치유할 아픔이 많다는 증거다.

 

 비 내리는 차창밖 풍경에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김현식 노래를 읊조리는데

 핫팩을 붙여 논 허리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아우성이다.

 

                      바느질 삼매경으로 허리 통증을 견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