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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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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503회 남존여비와 양성평등

멀리 가는 향기 2014. 2. 1. 07:50

 

설명절 음식 장만을 위해 일꾼들이 속속 등장했다.

아들 내외, 조카 며느리, 막내 남동생에 출가외인까지(명절 당일에 와서 음식만 축내는 얄미운 시누이가 되지 않겠노라며 올해 처음으로 등장. 백년 손님에게 구정은 친정에서 쇠게 교통정리해달라 했단다)

 작년 추석 쇠고 어깨와 손가락 마디가 쑤셔서 한달 간  치료받은 전과가 있는 나는 닐리리 맘보.

 

 

아들더러 만두피를 빚으라 했다. 막내 남동생과 합세해서 빚었는데 파는 것 보다 더 얇게 밀었다는 총평.

며느리는 만두파에 합류하고  출가외인과 조카 며느리는 부침이파.

만두를 다 빚은 아들이 전을 부치기 시작했는데 프라이팬 위에서 호박전으로 공깃돌 놀이 하는 신공을 선보였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는 것 같아."

출가외인이 놀라고

"승환이 저런 모습 처음이야.  민정이 좀 더 일찍 만나지.....$%#@"

가정적인 남자로 변신한 상남자 때문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전야제 끝내고 아들내외와 출가외인은 퇴장하고 조카며느리는 집에서 자겠다고 남았다.

갈비찜하고 잡채만드는 것 시다바리하던 조카며느리가 내게 물었다.

"고모님, 배신감 느끼지 않으세요?"

'배신감은 무슨, 얼마나 보기 좋으냐."

우리 남편은 주방에 들어오면 뭐 떨어지는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그런  아버지 닮지 않아 다행이다.

저녁밥 설거지는 조카 며느리 시아버님이  하고  조카며느리가 마른행주질을 거들었다.

 

 

설날 아침 차례상 설거지는 조카 륭이가 맡았다.

제 아내에게 "고생했지 .수고했어.'하고 다독이는 자상함을 보였다.

남존여비 우리 엄니가 보셨으면 그깟 전 부치고 설거지 하는 것도 일이냐?  한마디 하셨을 거다.^^

남존여비'와 '양성평등'의 시각 차는 아직도 크다.

 

 

조카 내외가 호주서 살 때는 둘째 남동생 아들 민우가  설거지를 거들었다.

설거지 하는 사촌 형수에게 "피카츄 젤리 드실래요? 껌 드실래요?"  메너 남  민우.

 

아들내외는  점심 때 등장

(오후에 오는 백년손님과 합류 시키려고 처가 먼저 들렀다 오라고 교통정리 해주었다)

 , 조카 내외는  바톤터치하고 처가로 퇴장.

 

 엄니 모시고 서둘러 메모리얼 파크로 . 추석 때는 길이 주차장이라 3시간 고생하다 되돌아왔는데

이번엔 1시간 만에 도착 .돌아오는 길도 막힘없이 .

 

오후에 출가외인 등장하면서  며느리와 이른 저녁상을 차리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스토리를 전해들은  백년손님 자발적으로 음식 나르고 열심히 봉사하는데

우리 아들은 상남자 포스로 스마트 폰에 초집중(두 살 연상의 매제를 부려 먹고 있다)

막내 남동생은 상남자와 백년손님의 변했어요 스토리가  <향기통신>감이란다.

 

저녁상 물린 설거지도 여럿이 분업으로 후닥닥 해치우고

 

셋째남동생 아들 민철이가 등장한 뒤에 윳놀이 판을 벌였다.

막내 남동생이 정해준 팀 명 <변했어요> 두 팀과 < 참 잘했어요> 두 팀 으로  게임시작.

1등 상남팀  2등 백년손님 팀 . 두 판 다  변했어요 팀 완승!

 

막간을 이용해 출가외인은 식구들  타로점을 봐주었다.

 

 

 

모두 퇴장하고 경로당 원로만 남아서 영화감상.

 2014년의 12분의1을  이렇게 흘려 보냈다.

 

 

나는  딸과 며느리 나이였을 때  주부 우울증을 앓았다.

둘째 기저귀 채울 무렵, 노환으로  대소변 못 가리시는 시 작은 할머니를 부산에서 모셔왔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동생, 우리 네 식구 . 도합 일곱 식구 빨래에 할머니와 젖먹이 기저귀까지..

 한 겨울이라 기저귀를 마루에 빨래줄 치고 말렸는데

아들아이가 기저귀 사이에서 숨박꼭질 놀이하다 빨랫줄을 끊어먹기 일수였다.

나는 철모르는 어린 것 엉덩이에  화풀이 하고  울었다.

방안에 누워계시던 할머니는 마루에서 뛰어 노는 어린 것에게 "뭐가 이렇게 복작과니(시끄럽니)?"하고  소리 치셨다.

엄마한테 혼나고 증조 할머니한테 지청구 듣던 아들아이가 하루는,

"엄마, 우리 식구만 살면 안돼?"하고 물었다.

"우리 식구?"

"응, 엄마 아빠, 애기 하고 나  "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였다.

 

그 무렵 친정 아버지가 우리 방 들창문으로 보약 한 재를 들이 밀고 휭하니 돌아가셨다.

지금도 아버지 그 마음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다.

아버지가 사부인 몰래 전해주신  보약을 다려 먹을 용기가 없었다.  한약을 다릴 기운도 없었다.

보약은 그대로 묵혀 버렸다.

현기증으로 쓰러져 안방에서 링거 주사를  맞고 있던 내게 퇴근해서 돌아 온 남편이 물었다.

"그거 언제 끝나. 나 배고 파."

남존여비 잔제 남편들은 그렇게 눈치 코치가 없었다.

 

나는 명절에 친정에 가도 쉴 자리가 없었다.

올케가 4명이나 되는데 차례상 물리기 바쁘게 올케 3명은  친정으로 내 빼고

큰 올케 혼자 발을 동동 굴렀기 때문이다.

작은 집, 고모, 이모 ,외삼촌 식구들이 번차례로 인사오시면 보통 삼 사십여명.

점심과 저녁상을 서너번 차려낸다.

어머니가 놀다 가시라고 붙들어서 주무시고 가실 경우 , 큰 올케 친정 보내고 내가 주방을 맡았다.

그러다 보니 큰 올케의 명절 스트레스는 커졌고 미꾸라지 올케들과 사이가 나빠졌다.

이꼴저꼴 보기 싫은 나는 아예 친정 주방까지 접수 해버렸다.

 

우리 때는  신정, 구정, 추석, 백일상, 돌상,  식구들 생일상, 제사상,부모님 환갑 잔치상까지

집에서 손님을 치렀다. 그래도 찍소리 못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알고 견뎌냈다.

그 덕에 음식은 요리책 들춰가며 요지가지 배우게 된 셈이다.

그나마 시어머니 돌아가신 다음부터 신정은 큰 아주버님댁에서 쇠었고 구정만 친정 살림을 맡으면 되었다.

인제는 나도 힘에 부쳐서 꾀가 난다.

명절 음식 간소하게 차리고 맛이고 정성이고 따지지 않고 남자들 손까지 빌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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