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제일 안타까운 점은 코펜하겐과 리가를 충분히 둘러 보지 못한 점이었다.
여행 일정을 잡을 때 2,30대 불러거들의 여행기를 참고 한 것이 실수였다.
그들의 블러그에서 수집한 정보를 2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묶어 갔는데 우리 여행 컨셉과 맞지 않았다.
젊은 배낭객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가 아깝다 생각하고
맛집과 영화 촬영장소 등 감각적인 곳들 위주로 둘러 보고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
핀란드
첫번째 여행지인 핀란드에 대한 기대감은 의혹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핀란드식 교육혁명을 부르짖고 교육계인사들은 유행처럼 핀란드로 연수를 다녀왔다.
핀란드교육의 비밀, 방법,혁명 운운하는 이론서도 쏟아져 나왔다.
핀란드식 가정교육의 핵심은 ,
첫째, 모든 사람은 잠재력을 타고난다.
둘째, 아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할 기술이 있을 뿐이다.
셋째,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넷째, 아이가 실천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
국제학업성취도 1위, 세계 학습 효율성 1위 등 핀란드의 교육 경쟁력은 이처럼 아이의 타고난 학습 프로그램을 잘 살려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한 결과다
이것이 내가 책으로 읽은 상식이다. 그런데 내가 본 아이들의 행태는 뭐지? 그 의구심을 풀지 못하겠다.
거리에서 만나는 젊은 애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튀는 색으로 염색하고 요상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길거리엔 왜 그렇게 뚱뚱한 애들이 많은지. 허벅지가 내 허리통만 했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얼굴에 피어싱을 안 한 아이는 일부러 찾아 봐야 할 정도
길거리엔 담배연기 뿜어대며 보행하는 애들과 꽁초가 널려있고
새벽에 공항 가는 길에 공원에서 뒹굴던 커플들의 꼬락서니도 볼만했다.
3일동안 머문 핀란드의 문화 예술에 관한 기억보다 거리에서 본 젊은 애들의 혐오스러운 행동거지만 각인되었다.
핀란드는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고 무상 급식이고 대학도 평준화 되었다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학생에겐 주택자금도 대출되고 경제적 지원도 받을수있다.
일찍 자립한 젊은애들이 부모 눈치 안 보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지 꼴리는대로
제 멋대로 꾸미고 페스트푸드 먹고 게으름 피우니 살만 찔 수밖에.
가장 큰 문제는 그들에게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이나 경쟁 없이도 살 수있는 혜택이 주어졌기에 의욕이 없는건지도......
<무민월드>에 토베 얀손은 없었다. 작가 소개나 책에 대한 안내 없이 케릭터인형을 이용한 상업적인 놀이 시설이었다.
핀란드는 출산 장려 정책이 잘 되었는지 거리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가 많았다. 놀이동산에서도 보통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북유럽에서 아기들이 가장 많이 본 나라 였다. 그 점은 무척 부러웠다.
노르웨이
노르웨이 피요르드 가는 페리 안에서본 정경은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한겨울 벽난로 앞에 머리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연상 될 정도로 정겨운 풍경이 테이블마다 포착 되었다.
대부분 여성들은 뜨게질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가 짜는 무늬를 들여다 보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식당 정경은 가족 구성원 각자 스마트폰 들여다 보고 입 꾹.......)
거리에서도 가족들이 함께 있는 단란한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노르웨이의 길은 곡선이다.
넓직하게 온전한 땅이 없어 마치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나뭇잎을 보는 듯 했다.
내륙으로 스며든 바다는 무수한 섬을 만들고 도로는 자연스레 곡선을 이루며 이어졌다.
버스나 자동차들은 페리를 타고 이동을 했기에 자동차를 타고 쌩쌩 달릴 고속도로는 없는 셈이다.
구부러진 길처럼 일상생활도 급할 것 없이 산구비를 돌듯 여유롭게 보였다.
게다가 자연 경관은 어찌나 깨끗하고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도시 베르겐도 인상에 남고
무엇보다 뭉크 미술관에서 본 그의 방대한 연구와 리얼리티 작업들은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나 자신부터 교육해야 해요. 그런데 당신은 그 일을 도와줄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떠날거예요."
남성에게 종속된 시대를 살았던 여성이 던진 이 선언은 19세기 유럽사회가 가진 편견을 부숴버린 망치였을 것이다.
가부장제의 허구를 폭로하고, 종교와 사회의 부패와 그릇된 인습을 철저히 해부해 근대 페미니즘 운동의 물꼬를 튼 입센.
입센 박물관에서 본 그의 모자들은 페미닌스타일이었다. 모자 애호가인 내가 한동안 눈독을 들이던.........
-스톡홀름 핀란드교회의 '아이언 보이' -베르겐 길목의 거지 소년
거리에는 아름다운 조각 작품과 꽃들로 넘쳐나서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질 지경이었다.
거지 소년에 대한 측은지심과 인정도 남달랐다.
천혜의 자연은 사람들의 심성까지 여유롭고 평화롭게 만든다.
덴마크
안델센이 태어난 나라 덴마크에서 도서관과 어린이 서점을 둘러 본 것은 잘한 일이었다.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의 키낮은 서가와 갖가지 인형과 놀잇감들은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리라.
오덴세 안데르센 박물관은 작가 박물관으로 최고다.
소장하고 있는 유품도 다양하고 시대별 분류도 잘 되어 있었다.
그가 인형 옷을 만들고 인형놀이를 즐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동병상련을 느껴 설레고 좋았다.
코펜하겐 거리의 사람들은 이번에 다녀온 여섯나라 중에 가장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멋쟁이들이었다.
여자들은 하나 같이 화장을 하고 곱게 치장을 하고 다녔다.
거리에서 본 젊은이들의 단정한 차림새와 반듯한 행동거지는 귀공자 같았다.
자제력 없이 동물적 본능으로 행동하던 핀란드 아이들과 극명하게 대비 되었다.
공원근처에서 마리오네뜨 할아버지 가게를 찾은 것도 즐거운 기억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함께 가는 사람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잘도 찾아 낸다고 내게 '길눈'이 있다고 하셨다.
아마도 내게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탓인 것 같다
그 옛날 덴마크 왕국의 영화를 과시하듯 로젠버그성에서 본 보물들은 예술적 감각이 대단했다.
하필, 카메라 밧데리가 방전되어서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스웨덴
스톡홀름 구시가지나 왕궁에서 본 문화 예술에 대한 감흥은 특별히 기억나는게 없다.
큰 기대를 품고 갔던 <린드그렌 월드>도 놀이 공원에 지나지 않았고, 인근에 있다는 린드그렌 박물관을 몰랐다는 것이 속상할 뿐,
밤뵈르비 사람들 조차 셀마 라르겔 뢰프의 '닐스의 모험"을 모르니 당연히 <홀 게르손 월드>도 모를 밖에.
린드그렌의 고향 마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집을 찾겠다고 해메고 다닌 사실로 위안 받아야지.
.라트비아
유럽 근대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아르누보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하일 에이젠슈타인'은 리가 사람이다.
아르누보는 188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사조다.
회화, 건축, 실내장식, 그래픽 등에서 천편일률적이던 양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유럽 건축의 기본이던 이탈리아 양식에서 벗어나 고대 신화, 자연 등 다양한 요소를 건축물에 과감히 도입했다.
이르누보 거리의 건축물들을 감상하다가 발견한 상점,
엔틱가게 인가 싶어 달려갔다. 가게 안을 들여다 보다가 무조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세탁소였다!
엔틱 다리미,빨래 짜는 기구, 천에 주름잡는 기구들을 장식장 안에 진열 해 놓았다.
내가 너무 흥분해서 좋아라 하자 주인여자가 일하다 말고 와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다.
세탁소를 박물관처럼 꾸며 놓다니 그녀의 안목에 감탄했다.
쇼윈도에는 엔틱 의상들을 걸어 놓았는데 앙증맞기 짝이 없었다.
리가는 로멘틱한 도시다.
리가.......하고 입술에 가만히 올려 보면 얼굴에 발그레 꽃물이 들 것 같다.
리가 사람들은 손끝이 야물다.
거리에서 미장원이 눈에 뜨이지 않았는데 여인들의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땋아 올리거나 헤어밴드를 이용해서 말아 올렸다.
우리 아름이 여러서는 머리땋기 기술이 좋았는데..........
유명 관광지에는 광장마다 크라프트 마켓이 있고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었다.
양귀비접시 ......무겁지 않으면 덥석 안고 왔을텐데.
베드로 성당 <브레멘의 음악대>동상 근처에서 뜨게질하던 노점상 할머니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그녀가 파는 호박 장신구들은 짜임이 섬세하고 세련되었다.
선물용은 좀 더 둘러 보고 사려던 것이 그만 아까운 물건만 놓친 꼴이었다.
그날 가랑비도 내리고 일행들이 있는데 시간 지체하는 것도 미안코 해서 내 것만 샀다.
숙소에 와서 자세히 뜯어보니 솜씨가 일품이라
다음 날 탈린으로 떠나기 전,우리 애들 것도 사려고 달려 갔는데 그 양반 리어커만 없었다.
근처 마켓 빙빙 돌다 두 번이나 갔건만 허탕이었다.
배유안에게 펠트로 만든 앙증맞은 쥐 덧신을 손녀 선물로 사라고 권했다.
넥타이로 만든 네크라인 장식도 재미있어서 만들어 볼 참이다.
탈린에 가면 더 예쁜 게 있겠지 기대했겄만 탈린 상점의 물건은 솜씨가 메주였다.
평일인데도 리가거리는 축제분위기였다. 거리 곳곳에서 송페스티벌이 열려 외국에서 온 원정팀도 있었다.
숙소 앞 베드로 성당에서도 콘서트가 열리는데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중년들이 참가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마침 점심을 먹는 야외 테이블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엿본 이 나라 시골 사람들의 삶도 여유롭게 느껴졌는데 ,
버스 정류장에 화분을 내어놓고 마을 초입이나 광장을 화단과 조각상으로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시골 마을 한적한 들판에는 성모상이나 십자가를 세워 두어 그것을 보는 마음이, 그들의 침탈의 역사가 떠올라 애잔했는데,
리가의 시골풍경은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짧은 여름을 마음껏 즐기려는 그들의 멋진 일상이 잠깐 스쳐가는 나그네 눈에도 잡혔다.
집집마다 형편에 따라 유리나 비닐로 만든 온실이 있었고.
거리를 지나는 여인들 손에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심지어 이른 아침 출근하는 여인의 손에도 꽃다발이.........
내 핸드폰의 컬러링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백만송이 장미>는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마리나를 그리며 강대국 사이에서 신음하는 라트비아의 운명에 대한 노래다.
구소련 시절에 작곡 되었다는 '마리나가 주었네'라는 노래를 거리의 악사를 통해 들을 수 있기를 고대 했는데......
가슴 속에 백만송이 꽃과 노래를 간직한 리가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
에스토니아
-기계 편직 니트 드레스에 울사롤 수를 놓았는데 무척 세련되었다.
발트해의 보석이라 알려진 탈린에 대한 기대가 커서 다른 나라 일정을 줄이고 3일을 잡았다.
탈린 구시가지에 닿는 순간 우리는 리가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리가 보다 건물이 예쁘지 않아"
"리가 보다 음식이 맛없어."
"리가 보다 비싸!"
심지어 탈린 오는 고속버스비도 싸서 다시 가서 놀다 오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카드리오그 궁전과 라헤미아 국립공원 일정이 있어 탈린너머 에스토니아를 볼 수있었다.
여러 나라의 도시를 걸으면서 거리의 멘홀 뚜껑 디자인을 비교하는 일도 흥미로웠다.
덴마크/코펜하겐
라트비아/리가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골목길에서 발견한 보도블록. 일부러 찾아 보았는데 열 댓개의 그림이 다 다르다.
남들이 하찮게 보는 멘홀 뚜껑에도 디자인이 들어간 것을 보면 유럽 사람들은 심미안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북유럽은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이해 안되는 제도가 많았는데 그중에도 기차역 역무원들의 근무시간이다.
4시 -6시 칼 퇴근이고 휴일 교대근무도 안하기에 국제선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표를 구매하는 방법을 몰라 헤메기 쉽상이다.
편의점 직원이 국제선 티켓을 팔 줄은 상상도 못했다.
탈린에서 8시까지 운영하는 대형 마트를 발견했다. 종업원이 어찌나 툴툴거리는지 (문 닫을시간에 왔다고)
결국 계산하다 말고 쫒겨나왔다.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이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실 어디가 좋고 나쁘고는 없다. 여행을 하는 당사자가 얼마나 즐기느냐에 달렸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스타방게르에서 이주영 선생이 아침 식사를 차렸다. 반찬으로 가져온 구운 김으로 김발도 없이 충무김밥을 만들었다.
속재료없이 소금간만 한 맨밥을 김으로 만 것이지만 된장 국물과 먹으니 빵 먹는 것에 비할까.
헤숙씨가 자기 남편을 '생긴 건 곰 같아도 여우'라더니 틀린 말 아니었다.
맏며느리 시집살이로 맘 고생한 아내를 눈치 껏 다독이고 가사일 거들어 주는 모습이 일상화 되었다.
여자들 꽃 단장 하라고 아침 설거지 해주고 기차 타고 이동 할 때는 발 마사지도 해주었다.
그야말로 이주영 선생의 재발견이다.
아무리 세심하게 일정을 짜고 준비를 해갔어도 현지에서 어긋나고 헤매기 마련이다.
그때그때 일정 수정하고 느슨하게 대처하면 된다.
사건 사고가 많을 수록 이야기거리는 늘어나고 훗날 웃으며 반추할 추억이 된다.
문제는 여행을 즐길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느냐에 달렸다.
페키지와 달리 자유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지도를 들고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기에 몹시 피곤하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니 이럴때 성격차이와 의견대립은 신경전이 될 수 있다.
오죽하면 배낭여행 다녀오고 나서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하잖은가.
나는 여행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동행이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심취한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잠자리에 대한 불만도 없는 편이라 웬만한 일은 일행들이 하는대로 따르고 신경 안 쓴다.
그대신 아름다운 건축물과 상점의 온갖 신기한 물건, 낯선 사람들에 집중한다.
카메라만 있으면 온 종일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돌아다닐 수도 있다.
여행지의 낯선 골목길 탐험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골목길들 쏘다니다 보면 개성 넘치는 예쁜 가게, 엔틱 상점 ,갤러리들을 들락거리는 재미가 있다.
길을 잃을까봐 조바심도 내지 않는다. 모든 길은 만나게 되어있으니까.
내가 있었던 위치의 특별한 건물만 눈여겨 봐두면 돌아오는 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의 언덕배기를 천천히 오르면 마치 다랭이 논 같이 주택가가 이어진다.
똑같은 집은 없었다.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이 제각각이듯 . 창가에 놓은 화분도 다르고 창문 안 쪽에 전시한 소품도 다 다르다.
정원에 피인 꽃들도 나무의 모양새도 다르다. 집들이 패션쇼를 하는 것 같다.
동네마다 묘지들이있었다. 그 규모는 성당안의 작은 공원묘지에서 한 동네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크기의 묘역도 있었다.
그런 묘지를 너 댓개 지나쳤으니 징하게도 걸었다.
종아리가 아우성칠 무렵 어느 집 딋마당에서 아기 엄마와 몇마디 나누며 다리쉼을 하기도 했다.
그 집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마을의 풍경도 눈에 삼삼하다.
저지대 평민집부터 고지대 상류층 주택가 골목까지 접수하고 내려온 셈인데 바닷물이 깊숙히 들어온 연안에는 요트 정박장이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살려면 요트도 자가용이 될 수 밖에 없겠다.
여행 내내 오전 8시경부터 오후 10시까지 종일 걷고 잠은 너댓 시간 잔 것 같다 . 버스로 이동하는시간에 잠깐 눈 붙인게 고작이었다.
그러고도 견뎌냈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다음날 벨리댄스 클레스에 갔을 때, 내 몸을 본 회원들이 비너스복근이 도드러졌다고 했다.
내가 봐도 군살 하나 없는 마라토너의 몸매가 된 것이다.
열심히 눈호강하면서 걷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데 ( 편하게 차 타고 다니면서 맛집 찾아다니는 여행으로는 백날 천날 다이어트 노래 불러봐야 소용 없다는...) 이크 , 더 나갔다간 돌팔매 맞을라
'종합병원'소리 듣던 나는 어느새 여행체질로 단련이 되어있었다.
여행중에 더우면 머리카락 들어 올리라고 머리 핀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 여인네가 스카프로 만든 두건에 머리핀을 꼽아 멋을 부렸다.
내친 김에 편의점에 있는 꽃다발 슬쩍 안겨주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꽃을 안고 좋아라 웃는 모습이 예쁘다.
엔틱 레이쓰 브로치는 혜숙씨에게 선물했다. 모자에 달았다가 옷에 달았다가 멋 부리느라 신났다.
일정에 맞춰 입으려고 펼쳐 놓는 내 옷을 들여다보고 혜숙씨가 한마디씩 한다.
"저도 이 꽃 한 개만 만들어 주세요. 요기다 달게."
이 선생은 각시더러 얼른 살 빼서 내 옷 뺏어 입으라고 ^^
낯선 이방인 커플에게 만들어 준 풀꽃반지.작은 풀꽃반지 하나가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 피곤 한 중에도 잠시 잠깐 여유롭게 멋 부리는것이다.
남에게 베푼 작은 호의가 내게도 즐거움이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여행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애로와 노력없이 가고싶은 곳 훌쩍 간 사람은 없다. 경제적 여건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므로 자기 능력에 맞추면 된다.
그러나 여행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고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저러고 살까?" 하고 부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
낯선 사람과 대화는 물론 숙식도 겁내는 사람, 혼자 화장실도 찾아가지 못하는 이.
타종교는 이단이며 성물들은 우상이기 때문에 경배할 수 없다는 등 자기중심의 사람,
매일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결벽증이 있거나 배변이 곤란할 정도로 예민한 이.
김치 없으면 밥이 안 넘어 갈 정도로 편식을 한다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다.
여행은 자신만의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다
예산에 맞춰 많은 곳을 다녀야 하기에 절약하게 되고 여행가방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야 하므로 절약과 정돈의 묘수를 찾게 된다.
집을 나서면 개고생이라는 말처럼 치밀한 계획을 짰더라도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라 바른 판단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 풍습, 기후 등을 겪으면서 넓은 세계관을 갖게되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신적인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는 것 또한 여행을 통해 얻을수있는 소득이다.
여행은 새로운 문명과의 만남이다. .
그러기에 세상은 인생에 필요한 능력과 기술, 그리고 품격을 키울 수 있는 수련장이다.
사족,
여행의 기술 중에 사진도 한 몫한다. 여행 당시의 상황과 정경, 날씨, 인물들의 컨디션, 기분 까지도 기록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진을 남기려면 빛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 구도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궁리하고
주변의 지형 지물을 이용해서 사진이 예쁘게 나올 수있는 포인트를 잡아 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분이 업되어서 생각나는대로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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