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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추억

567호 탈린- 라헤미아 국립공원

멀리 가는 향기 2014. 7. 26. 00:32

 

 

7월 19일(토) 라헤미아 국립공원

 

 

인포에서 소개하는 국립공원 가이드 투어를 하기로 했다.

9시간 49유로, 6시간 60유로 프로 그램이 있는데  당연히 49유로 프로그램을 택했다.

우리 4명에 독일 젊은커플, 노르웨이 중년부부가 한 팀이었다.

 

얕으막한 폭포수 물 색깔이 브라운이었는데  가이드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해 ............

 

 

독일 커플은 남보는데 눈꼴시러운 짓도 없이 조용하고 점잖은 애들이었다.

너무 무덤덤한 것 같아서 분홍색 들꽃으로 풀꽃반지를 만들어 남자에게 주고 "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라"고 했다.

그들에게 추억을 선물한  내 마음이 즐겁다.

 

 

강물을 끌어들여 물방앗간을 만들고 그 동력을 이용해서 군사시설에 활용했던 듯

전쟁이 끝난뒤 무용지물로 흉물스럽게 남았다.

 

해안가에 남은 소련군 막사도 둘렀는데 을씨년스럽게  콘크리트 막사가 삭아가고 있었다.

 

에스토니아 그네.

세명이 한 팀이 되어 더 높이 구르는 팀이 이기는 토너먼트 게임이다.

내가 무서워하자 장난기 발동한 혜숙씨가 어찌나 세게 구르는지 나는 소리를 지르다 못해 엄포를 놓았다.

우리 그네는 밧줄을 손에 쥐어지는데 이 나라 그네는 나무기둥이 손아귀에 반만 잡혀서  정말 무서웠다.

나중에 유안도 타보고 내가 소리 지른 이유를 알았단다.

 

중세 독일 영주의 저택 '메너 하우스'에 닿았다.

팔름세, 사가디, 비훌라  3대 메너하우스 중에 우리가 간 곳은 '사가디 메너 하우스 '인 듯.

바로크 풍의 저택에는 가구와 그림 ,장식소품들이 그대로 보존되어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다락방에  좌우 대칭으로 설치된  숯가마였다. 

내부를 들여다 보니 우리 식의 돌로 쌓은 숯가마와 구조가 다르지 않았다.

집안의 난방도 하고 사우나도 했던 모양이다.

 

후원으로 펼쳐진  정원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안주인이 된 듯 착각을 .........

 

메너하우스 부속 건물로 호텔이 있다기에 일정표 짤 때 여기서 하룻밤 럭셔리하게 잘 계획을 했었다.

그런데 홈페이지를 발견할 수 없어 배유안이 탈린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출발일이 다가오자 체념을 했었다.

만약 예약을 했더라면  택시요금을 엄청나게 지불 했거나 대중교통도 없는 이 오지를 찾느라  개고생을 할 판이었다.

여기를 와 보고서 유안과 나는 얼마나 웃었는지..........

 

침엽수들이 울울창창한 숲에는 야생 블루베리 가 쫙 깔렸다.

몸에 좋다니까 얼마나 따먹었는지 혀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우리 나라였다면 너도나도 캐 가서 아마 .............

 

해안가 어촌 민속박물관에 닿았다.

집안은 어촌 마을 생활상이 보존되었다.

어제 오늘 궁전, 영주저택, 민가를 둘러 보는 것으로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생활을 가늠하게 되었다.

 오리 사냥견 코카스파니엘이 낮잠자는 거실 한켠 벽면은 연장으로 장식 되었다.

 

구식이라고 갈아치운 그릇들이 보물이되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곳은 내실이었다.

재봉틀 덮게, 침대보, 커튼, 아이옷 , 인형 들에 수놓인 자수를 보면서 내 마음이 어떠했을지.........

이름 모를 여인이 한땀 한땀  수놓았을 그 시간의 흔적을 머나먼 이국 땅의 여자가 그윽히 바라볼 줄 그 당시에 상상이나 했을까?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준 가이드가 고마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를 여인네들이 대를 이어 만졌을 슈가볼. 

작은 소품 하나로 고금을 이어주는 이 느낌이 좋아  나는 남들이 고물로 여기는 엔틱을 수집한다.

 

해변가 오두막 식탁에 차려진 점심은 10유로

방금 구어낸 훈제 연어와 갓 삶아낸 감자. 옥수수가 들어간 크림소스는 어찌나 맛있던지

야생 블로베리 넣은 머핀과 쵸코 스펀지 케잌을 먹고도 감자를 더 먹었다.

우리는 여행중에 감자와 당근을 빵과 함께 주식 삼아 먹었는데 여기 감자는 유독 더 맛있었다.

 

유럽의 과일이나 농산물들은 크기가 작다. 종자 개량 없이 유기농 재배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좁은 땅에서 수확을 많이 내려고 종자개량하고 유전자 조작까지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르다.

그들은 일찌기 산업혁명을 통해  다량생산에 의한 폐혜를 겪었기 때문에  자연파괴에 의한 재앙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몸에 털이 많은 유럽인들은  모낭 밑에 곰팡이가 서식한다고 한다.

긴 겨울을 지내고 여름이 오면 옷을 훌렁훌렁 벗고 일광욕을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멜라닌 색소가 많은 우리는 햇볕을 차단하느라 애를 쓰고.......

그들과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훌렁 벗었다고 흉 볼 일도 아니다.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산책로를 걷다가  송판이 깔린 늪지를  3.5 키로 미터 걸었다.

산책로의 침엽수는 20미터를 족히 넘지만 늪지대의 나무들은 3미터 안쪽이었다. 

늪지대 나무가 2,5미터 자라기 까지 50년이 걸린다고 한다.

 

전망대를 지나자 다크홀이 여러개 있었는데 물고기가 서식할 수 없도록 맑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시커먼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싹 했다.

 

우리는 늪지를 걷는 동안 추석무렵 햇살처럼 따가운 햇볕에 피부가 그을렀지만 1년치 비타민 D를 흡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 일정표를 잘 짰다.

마지막날 침엽수 산책로를 걸으며 힐링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투어를 끝낸 가이드는  구시가지에 손님을 내려주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할 식당을 찾아 구시가지 골목을 어슬렁 거렸다.

 

크라프트 공방이 있는 골목에서  뜨게질 소품과 털실 가게, 엔틱 가게도 찾았지만 이미 문을 닫았다.

 

어제 들렀던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며 행인들을 구경했다.

배유안이,"이 선생님은 무슨 복으로 여자 셋 데리고 여행을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이 선생이."딸 셋 데리고 여행  온 아버지 꼴이 됐다"고 해서 포복 절도.

 

그 말인즉슨,

아침에 가이드투어 시간에 맞춰 나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배유안에게  "어디 가느냐고" 말을 건 남자가 있었다.

라헤미아 간다고 하자  자기가 가이드하겠다고 해서 순간  배유안이 싸게 편하게 가지 않을까  머리를 굴린 모양이다.

저기 친구들도 같이 가도 되느냐는 말에 그 남자는 꽁무니.......

 

투어 끝내고 저녁 먹을 카페를 찾아 배유안과 내가 앞서고  이 선생 커풀이 뒤쳐졌다.

갑자기 카페에서 튀어 나온 젊은 남자가 내 팔장을 끼고 떠들어댔고 그의 동료가 셔터를 눌러댔다.

(갑자기 놀래키지 않았더라면 이쁘게 사진 찍혀 줄건데 .)

내가  젊은 애 팔뚝의 문신을 보고 놀라는 사이 우리의  보디가드 주영쌤이 나타나면서 상황 종료.

 

"보디가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냐"는 내 말에

주영쌤이 "키 큰  덩치들을 보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해서 또 숨이 넘어갔다.

 

식사 후에 야외 카페에서 노닥거리다가  민속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한 무리의 젊은 애들 발견.

 

결혼식을 마친 신부가 빵을 팔아 살림밑천을 장만하는 전통놀이였다.

빵바구니를 든 신부 친구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며 설명을 하고 빵을 팔았다.

우리 수중에 있던 동전을 쏱아주었더니 "탱큐"를 뭐라 하느냐 묻기에 "감사 합니다'고 가르켜 주었다.

 

이 때 일본 아줌마들이 우르르 모여들었고  그녀들은 일본 아줌마들에게 빵을 팔고 "감사합니다"를 연발 했다.

 

이렇게 우리들의 북유럽 자유여행은 사고없이 무탈하게  끝이 났다.

이만하면 "꽃보다 누나" 보다  더 멋진 여행 했다고 자화자찬!

 

 7월 20일 (일)

탈린 공항에서  오후 2시 40분 비행기 타고 헬싱키 와서

헬싱키에서 5시30분  핀에어 타고 다음날 8시 20분에 인천 도착 예정이었다.

 

전날 구시가지에 서 숙소로 올 때 남은 버스 티켓 사용한다고 버스타고 오다 길을 헤맨 덕에

마트 옆에 있는 리싸이클 매장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다. 근처에 동대문 종합시장 같은 대형 매장이 있었다.

뭐 눈에는 뭐만 뜨인다고 내가 관심있어 하는 곳은 잘 찾아낸다.

 

원래 토요일 일정은 탈린 벼룩시장과 시청주변 탐색이었는데 국립공원 가이드 투어 일정과 바꾸었다.

유안과 나는 벼룩시장에서 엔틱을 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물거품이 된터라  꿩대신 닭으로 리싸이클 매장이라도 가보자 했다.

 

 

대형 매장이라 빈티지 레이쓰나 자수용품이 있지 않을까 기대 했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터덜 터덜 돌아오는길에 들판에서 야생화를 꺾어 왔다. 

 

배유안은 여행중에  부산일보와 신간 출간 인터뷰를 이메일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 뺑덕 = 동네에서 '뺑덕'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병덕은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실이 나빴다는 어머니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여기는 병덕.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을 떠나 선원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돌연한 사고로 친구 강재를 잃게 된 병덕은 친구의 평소 권유대로 어머니를 찾게 되는데......

'초정리 편지' 등으로 스테디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배유안은 이 소설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효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다시 일깨운다.

 

전날 케잌을 자르며 조촐한 축하연을 하려 했건만  숙소 옆 대형 빵집도 6시면 문을 닫는다.

야생화 꽃다발로 축하를 대신하고  그녀의 책이 승승 장구하기를 빌어주었다.

 

 

 

 

<향기통신>으로  북유럽 광고를 내고 동행을 물색했지만  배유안만 확실한 의사를 밝혔다.

여자 둘이 움직이기 불안해서  이주영 선생한테 김향이 히야까시 당하면 안되니까 보디가드 해달라 꼬셨다.

그들 부부가 합류한 여행은 결과적으로 얼마나 다행이었나.

자유여행이 처음이라  몸고생이 심했을 헤숙씨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선생님, 다음 여행 할 때도 꼭 끼어 주세요. 그때는 안 아플게요." 했다.

 

나는 연장자라고 뒷전이고 배유안이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여행 떠나기전부터 학원 다니며 영어 공부 열심히 하더니 잠꼬대도 영어로 했다.

(학원에서 영어로  잠꼬대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했다며 좋아라 했다 )

배유안과 이선생이 지도 붙들고 씨름하면

나는  "헬로 , 익스퀴즈미"하고 길 가던 사람 붙잡아서 배유안한테 인계했다.

그러고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저기 갈매기 나는 것 보니 항구가 가깝다."눈치로 목적지를 찾아냈다.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니 못할 게 없었다.

오히려 현지 사람이 설명을 길게 해서 우리를 헷갈리게 했을 뿐이다.

 

탈린 공항 시설은  아기자기하고 쾌적한데다 이용객들도 차분하고 조용했다.

 

탈린 공항에 기아차가 전시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헬싱키 공항 면세점에는 유럽 공항 최초로  한글 안내판이 있었다.

아마도 직항노선 개설하면서 협상을 한 것 같다.

 

런던에서 오는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두시간 더 공항에 머물게 되었다

그 사이 주영쌤은 여행경비 결산을 마무리했다.

 놀라지 마시라 . 우리의  18박 19일 자유여행 경비는 3,774,100원!

북유럽은 서유럽 경비의 두배가 든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초저가 럭셔리 여행을 한 것이다.

이제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녹여낼  숙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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