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계몽문학회 문학기행은 지리산 둘레길과 혼불 문학관.
4월 11일이 봄나들이 피크였나 보다. 정안 휴계소에 들렀다 화장실을 꽉 메운 사람들을 보고 아연실색,
그동안 단체 여행을 다녔어도 화장실이 붐비는 건 처음 보았다.
당연히 길이 막히고 예정 시간 보다 늦게 남원에 닿았다,
남원 추어탕 보양식으로 점심을 먹고 (간이 짜지 않고 진짜 맛있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남원 주천 -구룡계곡 순환 코스 출발.
광주 순천 부산 회원들이 바리바리 준비해 온 비상식량을 나누고 산행시작.
누구라고 말 몬하지만 .... 경로 우대 회원이신 허호석 선생님 말씀 마따나 지옥길 코스다.
무사히 구룡폭포 앞에서 사진을 박고.
신종풀루로 15일간 입원했나 나오신 오순택 회장님은 지리산 정기로 차츰 기력을 회복하셨다.
몇 몇 회원들이 감기를 앓았는데 한상순 회원도 신종플루로 고생하는 중이라 불참했다.
이 나이 먹도록 지리산 자락만 에돌다가 산을 오른 건 처음이다.
꽃이 꽃을 탐한다
진달래 물고
찍고 또 찍고
눈길 가는데 마다 꽃세상이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리의 산행이 즐거운 건 산사나이 박경태 총무가 사전 답사를 한 덕분이다.
둘레길 코스에 숙소에 맛집에 ............
봄날은 간다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는 ........
육모정
바람에 산벚꽃잎이 시나브로 진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광한루에 들러 남원의 절경에 취했다.
거기에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가가 곁들였으니...........
솔직히 광한루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고증없이 조악하게 꾸며 놓았으려니 했는데 볼만했다.
밤에 보는 경치는 주변의 난삽한 배경을 지워 버려 더욱 환상이었다.
숙소는 켄싱턴 리조트.
세월호 참사로 무산 되었던 작년 여행 코스를 재 예약하면서 숙소 때문에 박경태 총무가 고생을 한 모양이다.
다행히 금성문학회 양지숙 작가 남편 ( 남원 부시장님) 도움으로 숙소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고.
그녀가 양주를 들고 인사를 와서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
우리 회원중 최고령이신 허호석 선생님의 <산벚꽃 )(이 시는 서울 지하철 7개 역 스크린에 계시되었다.)낭송
4.19 세대이신 선생님의 시작 메모를 듣고 나니 그 시가 귀에 들어 왔다.
진영희 회원은 애주가라 여행 때마다 술과 안주를 캐리어에 싣고 온다.
산에서 따온 진달래와 찔레순으로 카나페 안주도 만들고.
지난 밤을 조용히 보낸 회원들이 기념촬영.
멀미로 고생을 한 이수경은
동창 모임으로 온 50대들이 광란의 밤을 보내는 통에 한숨도 못 잤다고 투덜투덜,
회덕쉼터- 사무락 다무락- 연리지- 구룡치 개미정지- 주천 코스
일요일 아침 산행 시작
논둑 밭둑을 걸으며 시작된 산행은
오르막 내리막 깔딱 고개로 이어지고
아이고 삭신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걷기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괜찮은데 등산은 종아리가 아프다.
게다가 깔크막진 비탈길은 다리가 후들거려 미끄러질까 겁난다.
풀꽃지기 이영득은 강의 없는 날은 산과 들로 내달리는 사람이다.
풀꽃박사 설명을 들으며 걷는 산길은 고행을 잊게 한다.
게다가 어마무시하게 무거운 카매라를 메고 찍 소리 없이 사진을 찍는데 사람이 따뜻하니 사진도 정감있게 좋다.
문삼석 회장님은 연리지 앞에서 계몽 여인들의 애인이 되어 주셨다.
밭둑에 핀 쪼그마한 꽃다지와 냉이꽃이 자꾸 날 좀 보소 시선을 붙들었다.
이집에서 먹은 산채 정식은 보약이다
32가지 나물과 청국장은 밥도둑이다.
이 집 계단의 로즈마리와 라벤더 분재가 예사롭지 않아 탐색을 했는데 다육이 하우스가 있었다.
장독대 너머 남새밭까지 있었다. 그러니 진짜 백이 밥상을 받은 것이다.
(심원 첫집 기억 하십쇼)
혼불 문학관
최명희.
아름다운 모국어로 전통문화와 민속·풍습을 치밀하고 폭넓게 복원해낸 대하소설 〈혼불〉(전5부 10권)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초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의 종부 3대가 겪는 삶의 역정을 그려낸 〈혼불〉은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는 여느 대하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인의 세시풍속·무속신앙·관혼상제·관제·직제·신분제도·의상·가구·침선·음식·풍수 등 당대의 습속과 풍물·가치를 눈에 잡힐 듯 환하고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방대한 고증과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 구성, 생기 넘치는 인물 묘사로 우리 민족혼의 원형을 빚어냈다'고 극찬했다.
최명희가 무려 17년 동안 오롯이 이 한 작품에 기울인 공은 각별했다. 〈
혼불〉의 주요 무대가 된 중국 동북지방과 선양[瀋陽], 무단 강[牧丹江] 유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족을 만나 취재한 1994년 64일간의 장정은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암에 걸려 몇 차례 혼절을 거듭하면서도 원고지 1만 2,000매 분량에 이르는 이 작품의 집필과 수정·보완 작업을 매듭지었으며,
작품 완간 1개월 뒤 기어코 쓰러져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가정신은 3차례의 수술과 2년여 투병 생활 중에도 제6∼7부의 집필 계획에 골몰할 만큼 강인한 것이었다.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단재상(1997)·세종문화상(1997)·전북애향대상(1997)·여성동아대상(1998) 및 호암상 예술부문상(1998)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혼불〉 외에 〈몌별 袂別〉·〈만종 晩鐘〉·〈정옥이〉·〈주소〉·〈제망매가〉 등의 단편들이 있다.
이후 ≪신동아≫ 연재 부분과 새로 집필한 부분이 더해지고 기존 출간 부분도 대폭 수정 보완되어, 최종적으로 1996년 12월에 전 5부 10권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다.
이후 작가는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투병하던 중에도 제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끝내 집필하지 못하고 타계하여, 1996년에 간행된 판이 최종본이 되었다.
문학관을 둘러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뼈속까지 작가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였다.
어느핸가 어머니와 전주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을 둘러 본 일이 있는데 그 때 어머니가 말씀 하셨다.
"너는 저렇게 글쓰지 마라. 글 쓰느라 진이 다 빠져서 일찍 죽었다."
문학관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9월에 있을 만남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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