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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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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추억

709호 광주-곡성- 담양-옥천 -청주-괴산

멀리 가는 향기 2015. 11. 3. 12:06

 

10월 마지막 날 ,  광주행 고속 버스를 탔다.

터미널에 마중나온  김성범, 손동연 작가를 만나 곡성에 있는 섬진강 도깨비마을로 향했다

 08.4월 광주, 나주, 화순, 사평, 보성, 장흥 곡성 여행길에 도깨비 마을에 들르고  7년만에 발걸음 한 것이다.

이 남정네가 그동안 섬진강변 산자락에 도깨비를 천 여개 만들어 세웠다.

 

 

 

산자락에 길을 내고 아기자기 가꾸느라 몸고생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신바람을 냈을 터이지만.

곡성군과 추진하던<도깨비 마을> 사업을 기독교단체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니 마음고생이 얼마나 컷을까.

 

 

 

장난기가 발동한 손동연 시인이 엎드려 공양하는 스님의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머잖아 전국에서 아이들이 견학을 오고 요들깨비 노래가 이 골짝에 메아리 칠 것이다.

 

그는 원래 동화도 쓰고 동시도 쓰는 작가다.  재주가 많아 동요도 작곡하고 도깨비도 조각한다.

 

그동안 세월이 그리 흘렀어도 엊그제 만난 듯  반갑다.

허허 실실 늘 웃어대는 그가 좋다. 그 웃음 속에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을지라도 다 지나갈 것이다.

 

나이든 남자 사람을 아이들이 좋아하니 행복하다는 그.

체험학습 온 아이들 데리고  책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인형극도 하고  참 재미나게 산다.

 

2층에 도깨비 전시관이 있다.

엣 문헌에 나온 도깨비들을 나라별 시대 별로 조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도깨비 기록을  찾아내느라 공부도 많이 했지만 도깨비를 빚은 솜씨도 좋다. 

 

 

 문학, 미술, 음악에 재주가 있는건 인정하겠는데  그가 세무사 였다는 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섬진강 참게장으로 맛난 저녁을 먹고 이가을 선생님 일행을 만나러 나섰다.

가을 선생님은 완주에서 강연 끝내고 전주를 거쳐 광주로 오셨다.

담양군 대덕면 무월리. 달을 어루만지는 마을이란다.

달이 손 뻗으면 닿을 만한 위치에서 휘엉청 밝기에 나는 마을을 안내하는  조형물인가 했었다.

그렇게나 큰 달은 처음 보았다.

 

 

무월리에서 7대째 토박이로 살고 있는 집주인은 토우를 빚는 도예가 송일근 이다.

그는 빈손으로 대들보를 다듬고, 서까래를 구하고, 벽돌을 찍어내고, 마루를 짜고, 흙벽을 발라 집을 짓는데 12년이 걸렸다.

본가. 허허공방. 너와 지붕의 게스트 하우스 4채나 되는 한옥을 손수 지었단다.

"사람이 자식도 만드는 데 왜 집을 못 만들겠는가"

 

그의 아내는  어린 것 등에 없고  남편을 도왔단다. 토수들도 힘들어하는  천정의 흙도 직접 발랐다니 얼마나 고개가 아팠을고.

나는 방바닥에 누워 한참동안 서까레를 올려다 보았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두고,

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이 담양 면앙정을 지은 감회에 다름없다.

 

 아내 정다정 씨는 침선을 한다. 도자기 빚는 남편과 바느질 하는 아내.

그들 부부는 천상 배필이다.

 

 

늦잠 자고 일어나니 시골 마룻장 고재 식탁에 아침상이떡 벌어지게 차려졌다.

 

단감 따다가 차 마시고 어슬렁 거리며 마을 구경에 나섰다.

 

 

이장인 송일근씨가 마을 정비사업에 앞장서서 돌담을 쌓고 집들을 손 보았다는데 문퍠들이 개성있다.

아내의 이름을 앞에 넣고 혹은 커다랗게 써 넣은 것이 보기 좋았다.

일행 중 누군가 경상도 남정네들은 문패를 저리 못 만들구로 했을꺼라 했다.

마을의 명물 목탁 바위

 

 

천연 염색 공방도 기웃거리고

송일근씨 형님댁도 구경했는데 그의 아내는 동화작가 안영옥씨

 

 

 

 

 

 

 

무월리 한옥 체험관

장대로 감 따느라 히히낙낙.

 

 

광주 광산구 광산동 너브실마을의 고택 애일당(愛日堂)

 

이곳 너브실은 행주 기씨의 집성촌. 조선의 대학자 기대승(奇大升·15271572)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고봉 선생의 묘지, 수양하면서 공부했다는 귀전암 터, 고봉 선생의 아들이 시묘살이를 하던 칠송정, 고봉을 추모하는 서원인 월봉서원이 있다.

 

고봉 선생의 6대손인 기언복이 숙종 때 터를 잡은 애일당은 노모를 위해 1910년대에 지었던 광주 누문동 집을 81년에 그대로 옮겨온 집이다.

  현재는 고봉 선생의 13대 후손 기세훈(초대 가정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을 지낸 법조계 원로. 올해 101세로 작고) 소유다.

 

애일(愛日)이란 당호에는 부모님이 하루라도 더 오래 사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스며있다.

애일당은 고봉학술원을 겸하고 있다. 강기욱씨가 학술원 연구원 겸해서 집을 관리하고 있다.

 

나나무 판자를 부채꼴로 덧댄  천정 모서리가  독특해서 물었더니 선자 라고 했다.

 

 

강기욱씨가 우사를 개조해서 만든 전시장 겸 응접실.

 

요새 사람들은 뭔가에 매이지 않으면 불안한지 스스로 매여 살려고 애쓰는 것 같이 보여요.”

그는 20년간 애일당 관리인겸 연구원으로 매인 데 없이 살아왔다.

갱쟁하고 이기는 것들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혼자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그.

 

연봉이 사람 몸값이 되고 사회적 지위가 되는 세상에서 그는

덜 쓰고, 덜 욕망하고, 덜 갖고, 덜 일하는 자유를 누리고 산다

 

 

 

전라도 땅에는 시방 붉은 감이 풍년이다. 주먹보다 더 큰 대봉시들이 가지가 찢어지게 열렸다.

광주에서 가을 선생님 댁으로 와서 자고 게룡문고 이동선 사장님 차로 괴산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청주 <꿈꾸는 책방> 내부의 서가 일습은 이연호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다는데  내부 사진이 흔들려서 못 쓰게 나왔다.

충주 글터사점과 중원에 있는 서점도 운영하신다고.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는 어려운 상황에 버텨 주셔서 고마을 뿐이다.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엔 57가구가 모여산다.

 

미루마을 28호에 국내 최초 가정식 서점<숲속 작은 책방>이 있다.

아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남편은 책 오두막을 짓고 집의 일부를 서점으로 꾸미게 되었단다.

 

남편이 마당에 지은 책오두막

 

살림집 응접실이 서점이 되었다.

이층에 있는  군대간 아들 방은 주말에 북 스테이 용 객실이 되었다.

 

이층에서 내려다 본  응접실

이낭 <고인돌> 이라는 만화로 유면한 박수동 선생 내외분이 오셨다.

서울을 떠나 음성에 자리잡으셨다는데  서점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셨다고.

동네 서점의 유쾌한 반란  백창화, 김병록 지음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아내는 유럽의 도서관책마을, 서점 등을 소개한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남편은 <가업을 잇는 청년들><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를 출간 했다.

 

우리도 덕분에 박수동 선생님 사인을 받았다.

2박 3일 여행이 이렇게나 차지고 여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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