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오픈 예정인 <동화리 수목원> 주변 환경을 둘러 보고 오는 길이었다.
<벽계수 이종숙의 묘> 이정표를 발견하고 답사를 했다.
황진이의 애간장을 태웠던 ‘벽계수’는 세종의 증손자인 벽계도정(碧溪都正) 종숙(終叔)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강원 원주교육청의 박문성씨는 ‘시평’ 겨울호에
“벽계수는 조선 인종조에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이종숙이며 그의 묘는 원주 문막 동화리에 있다”고 밝혔다.
고종때 서유영이 ‘금계필담’에 적었듯 벽계수가 ‘종실(宗室)’ 인물임이 확인됐고,
금계필담 내용 중 “황진이는 풍류명사가 아니면 상대하기 어렵다
공(벽계수)은 본시 거문고의 명수이니”하는 대목에 대해서도 박씨는
“이종숙의 가문이 기묘사화(1519년)때 풍비박산 돼 불우한 나날을 보냈으며,
중종1년인 1545년에야 신원(伸寃) 된 만큼, 그는 긴 세월 음풍영월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연모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이라는 대목에 나는 동조를 못하겠다 .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의 기생.
아전의 딸 황진이 어머니는 빨래터에서 지나가던 황진사의 아들과 눈이 맞았다.
두 사람이 정을 통해 황진이가 태어났지만 서출이었다.
황진이는 어린 나이에 이미 일부다처제 봉건사회 남정네들의 부나비 사랑을 뼈저리게 아팠했을 것이다.
황진이가 열 다섯 살 때 지나가던 상여가 황진이 집앞에 멈추었다고 한다.
황진이를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동네 총각의 상여였던 것이다.
황진이가 소복을 입고 나가 치마를 벗어 관을 덮어주며 곡을 하였더니 그제서 상여가 움직였다고.
첩의 딸로 멸시 받으며 일생을 보내기 보다 자유롭게 살기를 원해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적에 입적하게 되었다.
조선의 내로라 하는 풍류객들이 황진이를 보기 위해 송도에 몰려들었다.
당시 약 3만 명의 기생이 있었다는데 미모,인품,학문을 갖춘 조선 최고의 명기로 꼽혔다.
그런 황진이가 한평생 사모한 사람은 서화담(서경덕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라고 알려졌다.
서화담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거문고를 가지고 화담의 초당에 가서 즐기곤 하였다.
만남이 깊어짐에 따라 화담은 글을 배우러 오는 그녀를 허심탄회하게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녀 역시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붙잡으려고 고심했을 것이다.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임의 정(情)이
녹수(綠水) 흘러간들 청산(靑山)이야 변할 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니져 우러 예어 가는고.
이런 감정의 갈등 속에서 진이가 화담을 찾는 날이 뜸해지자
서경덕은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밤은 깊고 적막한데 혹시나 그녀가 올까 기다리는 화담 자신의 심정을 읊었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임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긴가 하노라.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믿음직한 한 남자를 지아비로 섬기며 현모양처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왜 없었을까?
남달리 다정다감한 그녀였기에 수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웠으리.
冬至(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는 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동짓달의 긴 “밤”을 모아두었다가
임이 오신 날 펼쳐내어 임과 오래 동안 함께 있기를 바라는 심경을 담았다
노류장화의 몸이었어도 황진이는 마음의 정절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 속에 연모하는 정인 한 사람 품고 화류계 인생을 견뎌내고 싶었을지도.
임금의 증손인 벽게수가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거지 않겠노라 호언장담하자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황진이가 그를 개성으로 유인했다.
어느 달 밝은 밤 나귀를 탄 벽계수가 정취에 취해 있을 때
青山裏 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一到 滄海 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明月이 滿空山하니 쉬여 간들 어떠리
하고 시조를 읊으니 황진이의 아름다운 자태에 놀란 벽계수가 나귀에서 떨어젺다고 한다.
황진이는 사대부들의 사랑을 믿지 않았다.
자신들은 풍류 즐기며 여인에게 정절을 강요하는 남정네드ㄹ의 이율배반을 마음껏 조롱한 것이다.
남자들은 동시에 여러 여자를 사랑한다 말 할지 몰라도(발정난 수캐처럼) 여인네들은 오로지 그 사람 하나만이다.
서경덕의 마지막 글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지
음양이 모였다 헤어졌다 하는 이치는 알듯 모를 듯 오묘하다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깨우쳤는지 못 깨우쳤는지
만물의 이치를 보면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같다
시작에서 끝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항아리 치며 노래한 뜻을 알겠고
아, 인생이 약상(弱喪) 같다는 것을 아는 이 얼마나 되는가
제 집으로 돌아가듯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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