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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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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추억

851회 11일차 소로우,호손, 에머슨, 루이자 메이 올콧,

멀리 가는 향기 2017. 10. 21. 11:44

 벌링턴은 콩코드와 보스턴 중간 지점이라 유안이 숙소를 옮기지 않고  콩코드 일정과 보스턴 일정을  소화 할 수있게 조정했다.


 

-The Old Manse -

미국 독립운동 첫 발생지 흑인 로빈스의 집 박물관

 


숲속의 작은집에 아프리카 흑인 로빈슥 살던 집. 로빈스의 사진이 담긴 안내판이 세워진 집은 박물관이 되었다.


Old North Bridge

미국 독립운동 첫 발생지



목사관

목사였던 에머슨의 조부가 지은 집으로 이 집에서  너새니얼 호손이 신혼 살림을 시작 했다.


슬리피 홀로 공동묘지


콩코드 메인스트릿에서 오른쪽 진행 방향에 있는 작가들의 동산. 

애머슨, 너새니얼 호손, 올컷, 헨리소로의 묘지가 있다.


18번 소로우 가족묘지 19 호손 20 루이자 메이 올콧 24 에머슨 가족 묘지 

헨리 소로우 묘지


작가를 흠모하는 이들이 다녀가면서 편지, 꽃, 찻송이, 연필 등을 남겨두었다.

나는  미리 만들어간 붉은 털실로 뜨게질한 꽃 한 송이  헌화 했다.


19세기를 살았던 작가의 글을 읽고   머나먼 이국 땅 까지 찾아와  그가 살았던 생을 되짚어 보는 일은  우리에게도 감동이다.


이 선생이 헨리 소로우 <시민 불복종>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소로우는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하루동안 감옥에 같힌 적이 있는데 이 경험이 유명한 에세이 <시민적 불복종>의 토대가 되었다.

이 에세이에서 돈이 없기 때문에 세금을 체납한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에 항의하여 세금내기를 거부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국민을  다스리지 않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 글은  간디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무정부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기도 했다.




너세니얼 호손 묘소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호손의 <큰바위 얼굴>을 읽고나서  사람은 그가 살고자하는 방향에 따라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큰바위 얼굴을 보고 싶었다.


호손은 큰바위 얼굴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명예 권력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다." 라는 것을  말했다.




루이저 메이 올콧 묘지

 여행지 검색을 하다 콩코드에 루이자 메이 올컷의 하우스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열 살 때 <작은 아씨들>을 얼마나 감명깊게 읽었는지.


루이저 메이 올콧(1832~88)

올콧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정신적 양식을 주었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달리 현실주의자였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출판사의 상업주의와 타협한다.

단편소설 <경쟁하는 화가들>로 데뷔한 후 소녀취향의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작은아씨들>을 집필한다.

어머니와 자신을 포함한 네자매 모두가 이 소설에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군목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하는 아버지는 편지와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얌전한 큰언니 매기, 작가지망생이자 루이자의 분신인 죠, 피아니스트가ㅣ 되고시ㅍ은 베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막내 에이미가 등장하는  <작은아씨들>은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이외에 에머슨이 모델이 된 로렌스 할아버지의 손자인 로리가 남성인물로 등장

로리는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인 취향을 지닌 병약하고 내성적인 공부벌레 타입의 인물로서 묘사된다.

 

 <작은 아씨들>은 출판되자마자  초판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운다.

이 때부터 올콧은 경데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출판사는 수정판을 찍으면서 대중적인 취향에 부합하는  인물로  개작을 요구한다.

로리는 검은 고수머리의 사내다운 소년으로, 어머니는 키가 크고 고귀하게 생긴 여성으로 변모된다


출판사는  네자매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속편을 써달라 요구한다.

올컷은 자신의 분신으로 등장하는 죠만은 독립적인 독신여성으로 남기를 원했지만,

출판사측은 죠와 로리를 결혼시킬 것을 요구한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있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 타협에 응하지만, 결국 그녀는 죠가 로리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결국 절필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올컷의 작품속 여성은 남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여성들로 그들 사이에는 당면한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공동체 정신이 자리한다.

 이런 면에서 루이저 메이 올콧은  아동문학이나 대중문학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립적 여성문학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올컷은  아버지가 사망한  이틀 뒤 1888년 3월6일에 세상을 떠났다.


에머슨의 <자기신뢰> 한 대목을 경청.


묘지를 나와서 콩코드 메인스트릿 주변에 있는 올콧과 에머슨의 집을 찾아나섰다.





Orchard House

 콩코드 렉싱턴가 399번지 <작은 아씨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올콧 집안은  웨이사이드를 팔고 보스톤으로 갔다가  콩코드로 돌아와 과수원이 딸린 집을 사고 Orchard House (과수원집)이라 불렀다.

거실에는  베스가 쓰던 피아노가 놓여있었고, 어린시절 연극의 무대로 곧잘 활용되곤 했던 식당은 거실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그녀가 원고를 집필했던 지붕밑의 다락방에는 낮은 책상이 놓여있었고 옆벽의 책장에는 <작은 아씨들>의 한국어 번역판과 함께 그녀가 생전에 쓴 32권의 작품이 꽂혀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설 속에 묘사된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 인형의 방이었다.



Wayside

올콧 집안에서 1845년에 구입한 <힐 사이드>는  1852년에 콩코드를 떠나면서 너세니렐 호손에게 팔았다.

호손이 웨이사이드(길가집)으로 바뛌다. 훗날 이 집은 아동문학가  마가렛 시드니에게 팔렸다.


 

  호손은 콩코드 근방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조상중에 마녀재판에 관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성을 바꿨다.

그리고 콩코드로 이사를 한 다음에 고향을 찾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늘 고향을 그려  고향 세일럼을 무대로 '칠박공 집'을  썼다.

 


초월주의 주창자 에머슨의 문하생으로 초월주의를 실행에 옮기려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그는 생의 본질만 바라보고 그 삶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수있는지 실험하려고 월든으로 갔다.

죽을 때 삶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고싶지 않아서 였다.

소로가 지은 오두막 전경


 

오두막

소로는 독립기념일인 1845년 7월4일, 28달러 12센트를 들여  직접 지은 오두막에서 기거한다.

소로가 이곳에서 숲속 생활을 시작한 것은   자신의 사상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업자본주의의 도입으로 노동의 노예가 되어  돈벌이 혈안이 되어있는 미국인의 풍조를 개탄한다.

 10년에서 15년을 일해야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노동자들, 20,30,50년 동안 농사를 지어도 토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는 농민들, 이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그가 보기에  유럽식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욕심을 버리고 작은 땅에서 적은 양의 농사를 지으며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자신과 같은 모습을 따르라고 권고한다. 

 


월든호수

 빙하시대의 얼음이 녹아서 생겨난  월든 호수는 이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의 휴양지가 되었다.





에머슨가에서 소유한 토지를 소로에게 빌려준 당시 월든 호수는 1844년 기차가 개통되기 전까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원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소로우가 오두막을 지을 당시의 풍광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으나.

나 또한  그 곳 모래 사장을 맨발로 거닐며 충분히  적적하고 고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