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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회 14일차 마크 트웨인 하우스 - 올버니- 세러토가 스프링스

멀리 가는 향기 2017. 11. 7. 15:10

 9.3일 일요일.,9시 30분  마크 트웨인 센터 입장


 마크 트웨인 하우스와 박물관 (Mark Twain House & Museum)


'미국 문학의 세익스피어',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지방색 작가, 유머작가, 아동 작가로 인정 받았다.

  그의 대표작 <허클베리핀의 모험>  <멍청이 윌슨의 비극>을 통해서  남부 귀족 가문의 세속적이고 허풍스런 관습의 허상을 파헤쳤다.


 



 본명은 사무엘 클레멘스

1835년 여섯 번 째 자녀로 태어났고 1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13세에 인쇄소 견습공 식자공으로 일했디.

형과 함께 신문, 언론사 일을 했다. 해니벌에서의 생활과 미시시피강을 소재로 많은 글을 쓰게 된다. 
  필명  '마크 트웨인' 은 '깊이가 두 길'밖에 안 되어 가까스로 항해할 수 있는 강을 뜻하는 뱃사람들 용어 
   
 〈톰 소여의 모험〉, 〈미시시피 강의 생활>, 〈 허클베리핀의모험 >, "왕자와거지” “멍청이윌슨의비극” 외  다수.



 

유럽의 왕정, 봉건적 계층제도,억압적 종교제도 등 사회 비판 적 작품을 쓴  트웨인의 집은 거대하고 화려한  빅토리아 풍저택 이었다.


 현관  홀의 인테리어는 트웨인이 얼마나 사치스럽게 살았는가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려고 맘 먹고 꾸민 공간이라  당시에 구하기 힘들었을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벽과 천장으로 이어지는 장식의 정교한 문양은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이어지면서  통일감을 주었다.

 

반투명 무늬의 창문, 조각이 화려한 주물 벽난로, 장식 거울, 화려한 샹들리에 등등 눈요깃 거리로 가득했다.



 

19개의 방은 각 방 마다 컨셉과 스타일이 달랐는데 세련되고 진기한 장식품이 즐비했다.  



집안을  둘러보면서 작가 트웨인이 아닌 인간 클레멘스의 생애를  되짚었다. 

 그는  인쇄소 견습공이던 시절, 아마존 탐험기사를 읽고 코카인을 찾기 위해 뉴올리언즈로 떠나려했고,

은광에 주식투자를 하고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을 찾아헤맨 것으로 보아  일확천금을 꿈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적은  그의 작가적 태도와 상반된다.


도금시대에 대한 비판을 했음에도 물질적인 미국의 풍요로운 세속을 따랐던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작가로 입지를 굳힌 뒤로 미국 동부 상류 사회에서 합류하고자 보수적인 빅토리아 문화의 감상주의적이고 이상적인 도덕관을 따랐다.






문학적 성공과 함께 하트포드에 저택을 지었다.  이 집은 작가 트웨인이 허클베리핀을 포함한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을 집필한 곳이자 그의 세 딸을 키우면서 행복하고도 화려한 생활을 한 곳이다. 



 개인의 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3층에 있는 당구장(트웨인은 주로 여기서 집필을 했다),


그는  이 집에서 생활비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결국 자동인쇄기 타이프 제작에  투자하다 파산하게 된다.


1891년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이 집을 떠났다가  1896년 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03년 이 집을 팔아버렸다. 

그 후 하트포드 동우회가 집을 사 1974년 복구공사를 마친뒤 하트포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마크 트웨인의 일화 

  어느 젊은 신문 기자가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에게 부자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기자의 질문을 듣자마자 마크 트웨인은 소리쳤다.
"나는 백만장자들을 아주 싫어해! 신문에 써도 좋아."
신문 기자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받아 적었다. 공연히 언성을 높였던 마크 트웨인은 담배를 입에 물고,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연기를 내뱉으며 젊은 기자에게 마크 트웨인은 속삭였다. 

"하지만, 누가 백만장자를 시켜준다면, 할텐데.."


또다른 일화,

마크 트웨인이  은행에 융자를 받으러 갔는데. 은행장은 트집을 잡고 융자를 해주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던 그가 갑자기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만약 선생님께서 내 두눈 가운데 어느쪽이 의안인지 알아 맞히면 돈을 빌려 드리지요"

마크 트웨인은 바로 대답을 했다.

"당연히 왼쪽 눈이지요."

은행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그것을 단번에 알아 내셨습니까?"

"그야 쉬운 일이죠. 은행장님의 왼쪽 눈은 그래도 오른쪽 눈보다 인정이 있어 보였거든요."



이 집에서 가장 부러운 곳은 온실이었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꽃들이 자라고 있었을까?

응접실에서 라운드 형으로 돌출된 온실의 위용은 대단하다.

 

 

 딸들 방에 있는 엔틱 돌 하우스가 내 눈길을 붙잡아 몰카를 하게 되었다.


마크 트웨인의 발명 이야기



트웨인은 자신의 출판 기념 파티에 아내와 함께  예정이었다.

 아내를 기다리던 그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려 갔다가 아내의 브래지어 속옷을 목격하게 됐다.



그는 아내가 브레지어를 간편하게 착용하도록 후크를 발명한 뒤 특허를 냈다.



1900년대 여성들은 콜셋을 주로 입었으니 그의 발명은 너무 앞 선 것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다시 창작에 몰두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트포트 대저택에서의 호화생활을 감당못하던 그는  일확 천금을 위해 발명에 매진 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 하우스 관람을 마치고 뉴욕 근교 올버니로 향했다.

다운타운에서  벼룩시장에  갈 예정이었는데 비가 내려서 포기 하고 구글 맵도 말썽이라 세러토가 스프링스로 출발 했다.

여행하는 동안 일요일이  두 번 끼어 있어 벼룩시장에서 인형 수집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 했는데  두 번 다 꽝. 


새러토가 스프링스는 광천수 온천이 있는 휴양지로, 역사적인 전투지, 예술 지구, 경마 시합까지 체험할 수 있다.


 새러토가 스파 주립공원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애용했다는   루즈벨트 온천이 있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곳에서 피로를 풀기로 했다.

소아마비 대통령이 즐겨 찾던 온천수의 효능을 기대 했는데  호텔 이용객 중심의 예약제로 운영 된다고 .

시내의 온천을 찾아나섰는데 5시 30분에 마감한단다.

우리나라 온천은 새벽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운영하는데 오픈 시간도 늦다.

비오는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다가  숙소를 찾아 왔다.



이 집 인테리어 는 온 통 말과 관련 된 것들이었다.  액자, 조각품, 쿠션, 무릎덮개는 물론  책도 엄청 많았다.

 딸이 승마를 한다고. 

주인 내외가 와인 한 병을 아일랜드 식탁에 세팅 해 놓았는데  우리는 한 모금 씩 맛만 보고 싱크태 하수구에 쏟아 버렸다.

주류들이 보았다면 기막혀 할 짓을 한 것이다.  

뒷마당에서 한 비탕 공놀이를 하고  집 주변이 휴양지라 드라이브를 하고 산책을 했다.


날씨 때문에 수영장을 보고도 이용을 못했는데  나중에 이 집 물이 온천수인 걸 알고 무척 아쉬워 했다.

온천을 못해 아쉬웠는데  이 집 욕실에서 공짜 온천을 한 셈이다.

다음날  이 집을 나설 때 생수를 여러 병에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