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 (1883-1956) 화가 , 시인,
마리 로랑생의 어머니는 파리의 세무감사관, 의원을 지낸 유명인사의 ‘숨겨진 여자’로 살았다.
마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교사가 되어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와의 갈등 속에 포슬린 페인팅을 배우며 조르주 브라크를 만나 자신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그의 소개로 피카소', '막스 자코브'들과 만나게 되었고 1907년에 ‘세탁선’에서 첫 개인전도 열었다.
1차 대전 이전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파리의 몽마르뜨에 피카소의 아뜰리에가 있었다.
이곳은 마티스, 모딜리아니, 루소 등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는데 그들의 아지트를 '세탁선'이라 불렀다.
박숙희와 아름이랑 서유럽 여행 중 파리에 들렀을 때 고은별 작가가 우리 일행을 가이드 했었다. 세탁선 앞에서 설명을 듣는 중
피카소가 살았던 '세탁선'(세느강에서 세탁을 하는 작은 배에 빗댄 ,작은 원룸을 자조적으로 빗댄 말)당시 인상파 화가들이 집값이 싼 몽마르뜨에 모여 살았다.
입체파와 야수파 남성 화가들이 주목받던 1905년 이십대 무명 화가였던 마리 로랑생도 세탁선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 해에 유일한 가족이자 후원자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고독을 잊기 위해 충동적으로
만난 지 1년도 안된 독일 남작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며칠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
프랑스와 독일이 적국이 되어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었다.
전쟁 동안유럽을 떠돌다 스페인으로 망명했으니 그녀의 삶은 고통의 나날로 점철된다.
남편의 도박과 외도로 불행한 가정생활, 조국에 대한 그리움, 작가와 여자로서의 삶, 학살과 전쟁을 피해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이혼하고 귀국했다.
마리는 스페인에서의 삶을 소재로 여성들의 춤추는 모습이나 기타를 치는 모습을 그렸다.
이 때부터 분홍, 보라, 파랑, 회색 등 파스텔톤 색채들이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안으면서 우아한 색채의 콘트라스트로 세상과 소통을 시작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소위로 입대했던 아폴리네르는
머리에 파편을 맞고 후송되어 두 번 수술을 했으나 종전을 3일 앞두고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폴리네르의 부고를 들은 마리 로랑생은 충격을 받고 절망에 빠졌다고
1920년대 이후 마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디자이너롤 영역을 넓히며 왕성한 활동을 한다.
마리로랑생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일러스트
샤넬의 초상화
1883년생인 샤넬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아원에서 생계를 위해 바느질을 배운 그는 이후 부유한 남자들의 정부가 됐다. 그 남자들의 도움으로 모자 가게와 양품점을 열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여성복을 디자인하며 마침내 파리의 고급 양장점 거리로 진출하게 된다.
샤넬과 동갑인 로랑생은 여성 예술가가 드물던 시대에 엇비슷한 행로를 걸었으니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발레 뤼스의 무대의상과 미술을 담당한 인연으로 샤넬은 로랑생에게 초상화를 부탁했다.
그러나 샤넬은 자신을 조금도 닮지 않은 초상화 라며 인수하지 않았다. 당시 샤넬은 일하는 여성을 위한 단순하고 기능적인 정장으로 이름을 알린 때였으니 진취적인 여성상을 담아낸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초상화를 원했을 것이다.
( 내 눈에는 상류층에 어렵게 발 들여 놓은 사넬의 회의적이고 자조적인 내면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 같다. )
샤넬이 거절한 이 초상화는 로랑생 사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옮겨져 로랑생의 대표작으로 알려진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 밖에 없으며,
그림만이 나를 영원토록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마리는 죽기 2년 전 그녀의 하녀가 낳은 사생아를 입양하여 가족을 이룬다.
‘하얀 옷을 입고 한손에는 빨간 장미를 들고 가슴에는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안고 73세에 숨을 거두었다.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 아폴리네르의 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묻혔다.
"- 마리 로랑생, 사랑에 운명을 걸고"(강만원 옮김, 까치, 1994)
마리의 화풍의 중요한 특징은 남성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출생과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부성애의부재, 연인에 대한 불신, 남편과의 갈등 등이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소재가 여인, 꽃, 동물 등으로 제한된 것이다.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화는 그 인물의 내면을 시각화 했다
한 여성의 내면에 여리고 앳된 소녀, 열정을 앓았던 처녀, 삶을 관조하는 중년이 중첩된다. 소녀와 여인의 이중적 이미지는 모호함과 신비감을 주어 몽환적 이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 스스로 상처를 어루만지고 감싸 안아 고통을 치유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세계 대전으로 죽음과 삶이 공존하고 고통이 삶인 시절을 겪어 내면서 평온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마리가 미라보 다리 근처 오퇴유에 살 때 아폴리네르가 이사 오면서 두 사람은 이 다리를 오가며 사랑을 키웠을 것.
Le Pont Mirabeau 미라보 다리
Guillaume Apollinaire 기욤 아뽈리네르(1880-1918) 고은별 번역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강이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지 우리들의 사랑을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시간아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à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é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손에 손잡고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리니
영원을 갈망하는 눈빛 그토록 지친 물결이
우리들 팔의 다리 밑을 지나가더라도
밤이여 오라 시간아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사랑이 가네 흐르는 물처럼
사랑이 가네
삶이 느리고 더딘 것처럼
희망이 격렬한 것처럼.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시간아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é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하루하루가 가고 매주가 지나고
가버린 세월도 옛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강은 흐른다.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시간아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2011년 서유럽 문학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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