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돌이 데리고 산책하다 들른 엄씨할머니 외딴 집
유난히 튼실하게 잘 자란 작물들은
5월 중순 경에 모종 사다 심은 우리 밭의 작물들과 비교 되었다
풀 잡은 깔끔한 밭고랑
(할머니의 마디 굵고 굽은 손가락이 떠올라 짠 해졌다)
부직포 덮은 호박덩이 올릴 둔덕
넝쿨 올릴 지주대 곁에 줄세워 놓은 패트병
물인지 액비인지
패트병에 담긴 건 물비료 같았다
벌레 쫒는 천연 살충제 같고
버섯 종균을 꽂은 참나무도 있다
정신없이 어질러진 여느 시골집과 다르게 살림이 단촐하고 깔끔하다
쓰고 남은 지주대도 얌전히 묶어 놓았다.
쓰고 제자리에, 정리해 놓은 농기구들
비료 봉지까지 알뜰한 재사용
집 주변만 돌아 봐도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알 수있다.
바지런하고 정리 정돈 잘하는데다 알뜰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
내가 지켜 보는 것도 모른 채
모종판에 들깨씨 묻느라 집중한 할머니
"어서 오슈."
반갑게 맞아주는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 동안 마음이 흐뭇했다.
올해 92세. 우리 엄니와 동갑이신 할머니는 엄니처럼 5남매를 거두셨다.
자식들 출가 시키고 빈 집 지키며 여생을 사는 분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팔다리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땅을 일구실 분
할머니 얼굴에 그늘이 없어 보기 좋다.
"외롭지 않으세요?"
"외로운 건 몰라. 아들 하나는 수원 살고 딸 넷은 다 서울 살어.
손주가 열 이나 되서 식구들 모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방으로 들어가서 커피 마실려? 그 놈이 주인 따라 마실도 오구 팔자 폈네."
개돌이 끌고 돌아서는 발길이 가붓했다
문득 미국의 국민 화가로 친근한 그랜마 모지스가 생각났다.
평생 농장을 돌보고 버터와 감자칩을 만들어 팔았던 그녀는
관절염으로 소일거리 삼아 수 놓던 일이 어려워지자 바늘 대신 붓을 들었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80세에 개인전을 열었으며,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 받았다.
모지스의 그림이 들어간 크리스마스 카드가 1억여 장이나 판매됐을 정도.
그녀가 92세에 출간했던 자전 에세이집<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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