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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조선일보 기사

멀리 가는 향기 2005. 10. 6. 22:11
인형의 집… 주인은 동화작가
김향이씨, '파주어린이 책잔치'서 인형전 열어
어릴때부터 모은 300여점 직접 만든 인형도 선보여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사진=김창종기자 cjkim@chosun.com
입력 : 2005.10.05 18:33 31' / 수정 : 2005.10.06 04:24 04'




아이가 있든 없든, 당신이 가을을 사랑한다면, 이 청명한 계절이 다하기 전 ‘파주어린이책잔치’(10월9일까지)가 열리고 있는 파주출판도시로 가볼 일이다. 통일로 너머 벼이삭 누렇게 영그는 들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빚어놓은 조형물들, 그 사이를 달음박질하며 책과 어우러져 뛰노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다 뭉클해진다.
올해의 이 책잔치가 특별히 더 즐거운 사람이 있다. ‘달님은 알지요’를 비롯해 ‘나는 책이야’ ‘붕어빵 한개’를 내놓은 유명 동화작가 김향이(53)씨다. 소녀적부터 모으기 시작해 온 인형들 중 300여 점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처음 선보이기 때문이다.

“숭인동 벼룩시장에서부터 미국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인형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왜 좋아하냐고요? 음… 그냥 좋아요. 예닐곱살 땐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인형을 남동생이 요강에 빠뜨려 망가뜨리면서 유달리 집착하게 된 탓인지도 모르지요.(웃음)”

‘푸른숲’ 사옥 1층에 전시된 인형들은 형태며 국적이 가지각색이다.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 인형,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진초록색 ‘커튼 드레스’를 입은 스칼렛 인형을 비롯해 인도, 태국, 페루, 일본 인형까지 다양하다.

 
 
전시장 제일 앞에 서있는 ‘이쁜이 인형’은 특별한 사연을 지녔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미국으로 수출했던 인형을 뉴욕에서 구했어요. 짝꿍이 나뭇꾼이길래 원래 입고 있던 혼례복 대신 선녀복을 만들어주려고 옷을 벗기는데 소맷자락에 1원짜리 지폐가 돌돌 말려 있었어요. 이 돈이 여기 왜 들어가 있을까. 이걸 만든 이름 모를 여공이 실수로 그랬을까. 아니면 먼 길 노잣돈으로 넣어준 걸까. 며칠밤 잠을 못 이루기도 했어요.”

인형들 중에는 김씨 자신이 직접 만든 것도 여럿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얼굴사진을 옷감에 프린트해 노랑 저고리·분홍 치마를 입혀준 인형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장성한 두 남매에게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만들었던 장갑인형도 있다. 수십년 된 이 인형은 전시장에 놀러 온 요즘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줄 때도 그대로 활용한다. “인형 만드는 법은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죠. 종이인형은 시시해서 헝겊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친구없이 방안에서만 논다고 별명이 ‘방안퉁수’였던 제겐 더없이 좋은 친구였어요.”

구경 와 좋아라 하는 건 아이들뿐 아니다. “인형을 보면 그 나라 문화가 읽혀지니까요. 개발도상국의 엄마 인형들은 아이를 업고 안고 베틀을 짜거나 일하는 모습이 흔하답니다. 그것도 둘 셋씩요. 유럽의 인형들은 주로 귀족을 다루죠. 실크 드레스 입은 엄마, 꽃장식 요람에 누운 아기…. 인형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수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