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동문학인협회 세미나는 10월 9일 경주 교육문화 회관에서 열렸다.
오전에 심사를 마치고 어머니 모시고 내려간 시각이 9시30분.
다음날 아침 호텔정문앞에서 이지현이 키운 영양 사과를 맛보다.
아삭, 씹히는 맛이 달고 시다.
인생이 이리 맛나면 오죽 좋을까.
전국에서 모여든 회원들이 오랫만에 회포를 풀며 거닌 곳은 안압지.
우리 엄니는 경주 박숙희를 딸처럼 예뻐하신다.
"너 큰일 당했을 때 박숙희가 즈이 서방 보낸것처럼 울고 또 울더라. 너처럼 야리야리하니 정도 많더라. 언니동생삼아 잘 지내라."
우리는 동갑인데다 생일도 비슷해서 내가 한달 언니지만.박숙희가 언니노릇은 다한다.
경주마마 박숙희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를 엄청 부러워한다.
그녀는 병석의 어머니가 딱 5년만 더 살게 되면 어디도 가보고 어디도 가볼낀데...
하셨다면서 불효를 아파한다.
그녀는 내게 어머니 모시고 내려오라고 조르다시피 했었다.
모시고 내려올 여가가 없으면 어머니만 버스 태워 보내라고....
마침 세미나가 경주에서 열린 참에 그녀 당부대로 날을 잡은 것이다.
안압지에서 발견한 선조들의 놀이 풍습 주령구.
주사위처럼 생긴 주령구를 굴려서 벌칙을 정하는데 벌칙들이 참 재미나다.
다음 행선지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양동마을.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반촌.
조선시대 손(孫), 이(李) .동성취락으로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의 가옥은 ㅁ자형이 기본형이며,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을 보이고 있다. 주택의 규모는 대체로 50평 내외이고, 방은 10개 내외이다. 8·15해방 직후까지도 양반집 한집에 평균 한집반씩 노비집이 딸려 있어 가랍집·하배집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모두 밭이 되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아직도 유교사상이 짙게 남아 있어 매년 4, 10월에 선조를 제향하는 의식을 마을 공동으로 거행하고 있다.
이날 중년의 7080 새대들이 교복을 입고 우르르 몰려 다녔는데
정영애 선생이 교복입은 아저씨들과 환담을 나누는 모습이 포착 되었다.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누마루가 고졸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돌담이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멋들어진다
코스모스 여인 김자연 선생,
이날 우리끼리 공유한 비밀은 두고두고 웃음꺼리가 될것이다.
점심 뒤에 일행들은 서울팀 지방 팀으로 나뉜 전세 버스를 타고 떠났다.
어머니 모시고 불국사에 떨어져 가을 햇살을 즐겼다.
무수한 사람들이 경내를 들고나며 추억들을 찍느라 분주했다.
어머니는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신다.
있던 사진도 손수 없애 버리셨다.
모든것이 부질없다고
비스듬히 쌓아 올린 우리의 축조기술은 세계인을 놀라게 했단다.
불국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것은 바로 이 축조기술 때문이라고 귀동냥했다.
박숙희가 남편 조동화 선생의 목회일을 돕고 서둘러 불국사로 달려왔다.
조동화 선생의 안내로 <동리목월 문학관>을 찾았다.
동리의 서재.
나 하나 꽃 피어 |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동리 선생의 육필 노트
<무녀도>의 한 장면을 미니어쳐로 연출해놓았다.
나는 임실에 살던 초등2학년때 아버지의 한국 단편문학전집으로 <무녀도>를 읽었다.
동화책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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