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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운 아버지

멀리 가는 향기 2010. 12. 23. 19:55

 

자료 찾을 게 있어 뒤적이다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보고

눈물 바람을 했다.

우리 아버지 법 없이도 살 양반이라고

평판 좋게 사셨는데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맺고 끊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어머니한테 잘못 한 거 빼고는 참 좋은 분이셨다.

 

친척 어른들은  내가 아버지 쏙 빼닮아 착하다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이 욕처럼 들려서 싫었다.

사춘기 적부터  속으로 아버지 닮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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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핸가 가족끼리 섬진강 쪽으로 놀러갔을 떼

곡성 천변에서 은어잡이 하며 놀다  아버지하고 나만 볼일이있어

새마을 타고 서울로 올라올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내려오 실 때마다 내 선물은 물론이고 내 친구 것들도 챙겨 주시곤 해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공주님이었다.

10살 때 서울로 올라와서는  동아 백화점(신세계 전신)에서 옷을 사주고 ,

명동 롯데 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셨다.

 

승환이를 낳고 까무러쳤을 때 아버지가 내 팔다리를 주무르며 우셨다 했다.

나 먹을 보약을 지어 시어른 보기 민망하다고 창문으로 건네주고 휭하니 가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몸이 약한데 살림이 고되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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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내 자존심을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버지 나 이 사람하고 안 살고 싶어요."

내가 남편한테 할 수있는  가장 큰 보복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 때는 내 맘 다친 거만 생각하고 아버지가 얼마나 놀라셨을지 생각못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어머니 달려오셨다.

아버지가 써주신 봉함 편지를 전달하며  어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뒤로 나는 싸울 일이 있어도 혼자 삭였다.

절대로  친정 부모님이나 시어머니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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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삼국지를 줄줄 외우다시피 하셨다.

아버지 서류함에는 상국지 필사본이 많았다.

명절날 조카들이 세배를 오면  삼국지에 나온 인물을 예를 들어 덕담을 해주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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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수술을 하고 입원 중이실때

말씀을 못하셨다.

나는 답답해서 공책을 마련하고 손에 볼펜을 쥐어 드렸다.

"입원 일수가 얼마나 되느냐?"

아름이가 미국에서 나온 다는 말을 듣고

"그 먼데서 뭐하러 자주 들락거리느냐 고생스럽게 올 거 없다고 해라"

 

아버지는 아름이를 참 예뻐 하셨다.

아름이 돌무렵에 친척언니가 아름이가 안 예쁘다고 했더니,

"그런 말 말아라 이담에 크면 미스코리아 감이다."

친척 언니는 삼촌이 무척 서운해 하시더라고 지금도 얘기 한다.

 

아버지가 학교에도 자주 찾아오셔서 아이들이 와이로 먹인다고 시샘을 낼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실 때 내가 어머니 편을 들었더니,

"아버지가 살인죄를 졌더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하고 무척 서운해 하셨다. 그날 밤 아버지 허리를 꽉 끌어 안아 서운함을 풀어드렸다.

어후...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부르던 노래들이 오늘은 너무나 그립다.

 

출처 : 계몽아동문학회
글쓴이 : 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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