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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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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소 여왕

멀리 가는 향기 2010. 12. 23. 21:19

 

 

 

 

시아주버님 둘째가 분양 받은 모 건설사 아파트 행사장에 따라갔다가  미소 여왕이 되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케리커쳐를 그리던 그녀가 말했다.

'모자가 참 잘 어울리세요. 미소도 아름다우시고요."

참 별 일이다.

어려서는 예쁘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할머니가 될 나이에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려서 나는 누가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해도 비죽비죽 울음을 터트렸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어머니 등 뒤로 숨는 부끄럼쟁이였다.

가끔씩 내려오시는 서울 고모부는 그런 나를 굳이 붙잡아다 무릎에 앉히시곤 ,

"옥니배기는 고집세고 사납지만 뻐드렁니는 인정이 많고 순한 법이다." 하셨다.

아버지 닮아 앞니가  나온 것이 못내 억울했는데 고모부한테  뻐드렁니 소리를 들으니 더 서러웠다.

 

그런데 향교 고모님은 입버릇처럼 내게 이르셨다.

"늬 엄마는 순해 터졌으니 너라도 사납배기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선거철이면 개울 건너  술집에서 접대를 하셨는데, 아버지에게 술집여자가 들러붙으면  고모하고 내가  그년들을  잡아 떼어내야 한다고 하셨다)

어린 나는 헷갈렸다.  하지만 고모부 말 보다는 고모 말을 듣는게 나을 듯 싶었다.

우리 엄마 를 지켜주는게 백번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사납배기가 못 되어서

아버지 여자한테 고무신으로 머리를 맞기도 했고 뜨거운 물주전자를 뒤집어 쓸 뻔도 했다.

한창 겉멋을 부릴  여학생 때에.

 

미쓰 김으로 불릴 때도 나는 여전히 숫기가 없었고 남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웠다.

 남들이 내 입 모양을 가지고 별명을 지을까봐 .

그런  나를 하루라도 못 보면 못 살겠다는 동갑내기 남자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내가 이쁘다는  말을 믿은 나는  더 이상 뻐드렁니를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에스 동생으로  알고 지내던 남자애가 스토커처럼 귀찮게 했다.

만나주지 않고 전화도 따돌렸더니 어느 날은 회사로 쳐들어왔다. 사무실 남자직원이 교환실로 숨겨주었고

그가 날마다 보기가드를 자청하고 나섰다.

 스토커는 우리 집 앞을 맴돌다가 남동생들과 주먹다짐을 했고 파출소로 끌려갔었다.

새벽에 우리 아버지가 사준 해장국을 얻어먹고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했다.

(아직도 나는  스토커를 닮은 맹인가수 이용복이 tv화면에 나오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

 

보디가드는 나보다 일곱살 연상이었는데 국정원장 형님을 둔 로멘티스트였다.

날마다 그의 호위를 받는 동안  그에게 마음이 반 이상 건너가 버렸을 때였다.

어느 날 밤 사단장 차트병으로 있던 군인 아저씨가  휴가를 나왔고  집앞 공터로 불러냈다.

군인 아저씨가   권총을 내 손에 쥐어주고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가려거든 날 쏘고가라."

그리고 군인 아저씨가 날 부여잡고  울었다.

훔쳐 온 권총으로 내 마음을 붙잡은 그는  서둘러 지아비가 되었다.

 

그 남자들이 나의 대인기피증을 치료해주고 콧대를 조금 높여준 셈이지만,

나이들면서  알게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에서 나온 입가의 미소가  내 얼굴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출처 : 계몽아동문학회
글쓴이 : 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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