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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티크 레이스

멀리 가는 향기 2011. 3. 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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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는 수예의 한 분야로서 하나 혹은 다수의 실을 엮어 만들어내는 기술의 총칭입니다.
좁게는 니들레이스보빈레이스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레이스의 전통을 가진 지역에서는 일반적입니다.
넓게는 자수레이스, 구침편 레이스, 봉침편 레이스, 태팅 레이스, 피렐레 레이스 등을 포함하여 주로 19세기 이후에 레이스 기술이 전해진 지역에서 일반적입니다. 니들레이스와 보빈레이스는 중세 유럽에서는 실의 보석이라 불리울 정도로 귀중했으며, 귀족만이 살수 있었습니다.

 

벨기에의 니들레이스

 

레이스의 기원은 3가지 설이 있습니다.
1.오래된 의복의 찢어진 부분을 수선하기 위한 기술에 아름다움이 더해져 레이스로 발전되었다.
2.짜여진 천의 끝 부분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 기술이 발전되었다.
3.어망으로서 사용된 매듭이 있는 그물에서 발전되었다.

 

기원전 이집트에서는 색실로 의복에 연을 달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의복의 보수나 장식을 위해 실을 장식한 모양이 사용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의 수녀들의 일과로서 드론 워크나 컷 워크 등, 수녀들의 수예품이라 불리우는 것이 있었고 13세기 영국의 여자 수도원의 규약에 사용되고 있으므로, 레이스라는 말은 여자 수도원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15세기 무렵까지는 프랑돌 지방(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일부)나 이탈리아의 네베치아에서 보빈에 실을 말아 엮는 방법이 고안되었습니다. 15세기까지 유럽에서는 레이스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어진 것으로서, 가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레이스가 장식적인 것으로 변화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쳐 베네티아에서 드론 워크나 컷 워크에서 레티셀라나 니들 레이스가 고안되었습니다. 한편, 베네치아나 프랑돌 지방에서 장식지 등에서 바스만이나 보빈 레이스가 발전되었습니다. 이런 레이스는 베네치아 상인에 의해 유럽에 퍼지게 되었고, 레이스가 장식으로사 독립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레이스는 베네치아 상인에 의해 프랑돌 지방의 앤트웰펜을 경유하여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제 레이스는 외국에서도 주목받았고, 베네치안 레이스로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으로 베네치아 상인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레이스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1533년 앙리 3세와 결혼한 피란체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의해 이탈리아산 레이스가 소개되었고, 조카인 마리 드 메디시스가 앙리 4세와 결혼하자 레이스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레이스 구입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왕후, 귀족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연대 미상. 기계로 짜여진 레이스

 

이를 인해 프랑스에서는 17세기 중기, 루이 14세 당시 제상 쟌 바티스트 콜벨 공작의 중상주의의 일환으로 국영 제조소로 포앙 드 프랑스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양질의 마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곧바로 벨기에로 레이스 작업의 거점이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18세기 프랑돌 지방에 보빈 레이스가 발전되었습니다.

 

원래 남성 사제의 의복에 사용된 레이스를 여성복 장식으로 사용한 것이 루이 15세의 측실 퐁파드르 부인입니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레이스 애호가였고, 프랑스 혁명의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1707년에 쓰여진 시에 의해 잉글랜드의 메리 2세가 태팅 레이스의 애호가였던 것을 추측할수 있습니다. 테팅 레이스는 18세기 이후 유럽의 궁정에서 신분이 있는 여성들 사이에서 발전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랑스의 레이스는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에 의해 새로운 레이스 기계가 발명되었습니다. 복잡한 레이스가 싸고 대량으로 만들어지자 수제 레이스는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1846년에 아일랜드를 습격한 기근(감자 기근)당시, 그들이 낚시바늘로 엮은 레이스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아이리슈 크로스 레이스가 타국에도 인지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기계로 복잡한 레이스가 싸고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므로 고급 수제 레이스는 시장에 잘 나오지는 않습니다. 동남아 제품이나 관광객을 위한 공방에 의해 싼 가격으로 심플한 레이스가 많이있습니다.

 

현대의 장식용 세폭 레이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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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란?

- 리넨사(絲) 등의 레이스실로 레이스용 코바늘 또는 보빈 등의 기구를 사용하여 뜬 편물.
- 1800년 이전의 레이스 실은 대부분이 아마사였으나, 이후부터 면사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 밖에 견사와 금속사뿐만 아니라 양모, 기타 모섬유로 만든 실도 사용되었다.

 

◆ 레이스의 기원

- 이집트나 잉카의 유적에서 실을 감은 보빈(bobbin)이나 정교한 레이스 옷감이 발견되고,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스프랭(걸쳐 맨 실을 꼬아 만든 레이스)이 발굴되고 있는 사실에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완전히 발달한 레이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15세기경에는 수도원의 수녀의 일과로서 레이스가 만들어졌는데, 섬세하고 화려한 레이스류가 고안.

- 16세기 전반에 베네치아에서 발명되었다고 한다.

   바탕천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실을 당기는 컷 워크, 남부 독일의 성당에서 이루어졌던 흰실

   자수의 기술에서부터 니들포인트레이스의 근원인 레티첼라(이태리어로 작은 그물,그물코

   안에 작은 원이나 기하학적인 무늬를 떠넣은 레이스 무늬)가 생겼고, 한편 푼트 인 아리

   아가 생겼다.

- 16세기의 레이스는 르네상스 레이스라 하였는데 기하학 무늬, 자연 무늬, 꽃 무늬, 당초 무

   늬가 서로 바(bar)로 간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북이탈리아와 벨기에, 그 밖에  영국

   남부의 호니턴과 독일에서도 만들었다.

- 17세기 후반 프랑스의 재상 J.B.콜베르(프랑스 정치가)가 레이스의 기술을 도입하여, 국가

   의 보호로 알랑송이나 아르장탕 등의 도시에서 프랑스 레이스를 발달시켜, 이것을 푸앵 드

   프랑스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하였다. 이 시대의 것을 일반적으로 바로크 레이스

   라 하며, 거친 그물코(mesh)가 특징이다.

- 18세기에 들어와 벨기에와 프랑스가 레이스 공업의 중심이 되어 상호 기술향상에 노력.

  무늬는 섬세하고 우아하며 불균형적 미를 나타내었다. 이것이 로코코 레이스로서 그물코가

  극도로 가늘게 되었다. 기술이 최고도의 완성을 본 것은 물론이고, 특히 벨기에에서는 레이

  스실의 원료인 아마의 품질 개량에 성공하여 가늘고 부드러운 레이스실을 만들어 냈다.

- 독일의 작센에서는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푸앵 드 드레스드를 완성하였다. 이것은 컷 워크,

  나드론 워크, 흰실자수 등을 혼합한 고급 레이스의 이미테이션이다. 본래는 엠브로이더리

  인데, 값이 저렴하였기 때문에 파리 등지에서 인기를 모았다. 16~18세기에 걸쳐 레이스는

  의복의 끝단을 장식하였고, 두건·칼라·커프스·액세서리로서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의 궁정이 몰락되었고, 일반적인 취향이 시민 복장에

  맞는 단순한 레이스를 원하게 되자 급속히 기술은 저하되었다. 18세기 후반 이후 하먼드의

  양말 편기, 자카드의 편기, 리바스의 개량형 편기 등에 의하여 옛날의 수공 레이스의 복제

  가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되었다. 이로 따라 레이스 기술은 생산성이 낮은 몇몇 나라에서 소

  규모로 전해져 오다가, 20세기에 이르러 1920년대를 마지막으로 거의 그 모습이 사라졌다.

 

 

 

레이스(lace)란 구멍이 뚫린 모양의 성글게 짠 편물을 말한다.

레이스는 이집트에서 발견되었을 정도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섬세하고 화려한 레이스 종류, 예를 들어 기하학무늬, 자연무늬, 꽃무늬, 당초무늬 등이 고안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수도원에서 였다.

레이스의 인기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프랑스 루이 왕조 시대에는 궁전 의상으로까지 선택되었고 남성들도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옷을 입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후 손수건, 쿠션, 커튼, 테이블클로스, 깃, 옷자락의 장식, 여름용 부인복, 아동복은 물론이고 심지어 속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의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다양한 천, 섬유, 방직물들이 개발되고 유행에 뒤떨어지자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싼 가격에 거래 되면서 레이스 산업이 점점 쇠퇴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레이스의 재해석' 전시회는 레이스의 명성을 다시 한 번 재연하는 기회로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레이스 제작 회사인 퀘이커 레이스(Quaker Lace Co.)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퀘이커 레이스사의 작품과 캐나다 출신 칼 레인, 독일의 유명 디자인 그룹인 드메이커스밴 그리고 유럽 디자인 스타 토드 본트제의 작품이 모두 공개된다.

이들의 레이스 공예품과 광고 속에 등장했던 레이스 작품들 그리고 디자이너 프레드릭 찰스 베세이가 직접 도안한 13개의 레이스 스케치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기계로 만든 제품보다도 특별히 수공예로 만든 작품 전시에 중점을 뒀다. 디자인 센터측은 이번 전시회를 맞아 센터 외부 철조망 또한 전시작품으로 교체했다.

디메이커스벤 씨의 작품 '레이스 철조망'(2009)은 아연 도금된 특수 PVC로 제작된 철사를 사용, 그 화려함으로 눈길을 끈다.

캘라 베드너 디자인 센터 부대표는 "레이스 철조망은 기존의 레이스 공예품의 틀을 깬 작품으로 화려하고 섬세한 레이스가 다소 차가운 느낌의 철조망과 만나 그 조화를 이뤘다"며 "관객들뿐 아니라 지나가던 시민들도 차를 세우고 구경을 할 만큼 유명 인사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또한 센터 정원에 있는 칼 레인 씨의 '산업용 깔개'란 작품은 용접된 기름통과 그것을 잘라 깔아 논 선조세공 양식으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토드 본트제가 만든 레이스 커튼 '새벽이 올 때까지(Until Dawn)'와 스틸 소재의 레이스로 만든 '한여름밤의 빛(Midsummer Light)' 도 눈여겨 볼만하다.

특히 토드 본트제가 만든 테이터 테이터(Tete-a-Tete)는 거미줄 모양으로 만든 S자 모양의 의자로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품들 중 하나다.

캘라 부대표는 "테이터 테이터는 실제로 거대한 거미줄을 보는 듯하다. 철사 재질로 만든 레이스이지만 너무나도 정교하며 실제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수공예 작품들과 함께 볼티모어 미술관에 있는 레이스 전시품, 영국 노팅햄 등 유럽 각국 박물관에 있는 레이스 전시품들의 사진도 함께 감상 할 수 있다.

필라 대학 내 디자인 센터는 이번 “레이스의 재해석” 전시회를 맞아 외각 철조망 또한 전시작품으로 교체했다. 디메이커스벤 씨의 작품 “레이스 철조망”(2009)은 아연 도금된 특수 PVC로 제작된 철사를 사용, 그 화려함으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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