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알마 타데마/네델란드 화가 .1887.
겨울 옷을 드라이 맡기러 갔다.
옷가지를 들춰보던 세탁소 사장님이 대뜸 김향님이시죠? 컴퓨터에 입력을 한다.
"사장님은 고객 성명을 다 외우고 계세요?"
"'제 기억력 젬병입니다. 손님 옷이 특이해서 기억하는 거죠."
옷을 수선하던 종업원이 끼어들었다.
"연예인 이세요?"
그러면서 자기 사장님이 내 옷이 들어오면 신경 써서 손질한다 했다.
지난번에 푸전 한복치마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아 전체 탈색을 했다가
다시 물을 들이느라 여러 날 걸렸노라고 했다.
"왜 그런 얘기를 안 하셨어요?"
"우리 사장님이 생색내는거 안 좋아해요.
종업원이 세탁물 가져 올 때 확인 안 한 게 실수라고 서비스 한 거예요.
우리 사장님 미대 나와서 색깔 하나는 끝내주게 맞춰요."
<아로마 향을 입으세요>라는 광고 카피에 끌러 옮긴 세탁소였다.
"사장님, 제 옷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팀 다리미질 하던 그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동대문 시장에 가면 다리쉼 할 세 없이 서너 시간 돌아치게 된다.
수없이 많은 가게에 헤아릴수없이 많은 부자재와 천들.......바느질에 소용되는 물건은 가짓수도 많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천과 무늬 중에서 내게 필요한 천을 고르고
그에 소용되는 색실, 레이쓰, 비즈, 스팽글, 단추, ,,,
머리 속에 든 디자인과 매치 시킬 아이템을 찾느라 내 눈은 두리번 두리번 쉴틈이 없다.
두 시간 째 돌고 돌아도 내가 원하는 옷감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허리 다리가 아파 상인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는 편이 빠르겠다 싶었다.
"초코브라운 칼라 땡땡이 린넨 좀 찾아주세요."
주인이 자기 집에는 없고 다른 가게에서 보았다며 다녀오겠단다.
그녀가 스와치를 잘라온 온 원단이 맘에 든다 했더니 전화로 주문을 넣었다.
창고에서 가져오려면 30분 걸릴테니 그동안 장보고 오란다.
그녀가 다리품 팔아 다른 가게 물건을 팔아준 격이기에
샘풀북에 있는 천을 주문했는데 단종이 되었단다.
아쉬워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녀가 가위로 잘라 내게 건넸다.
그걸 왜 잘라! 그녀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퀼트 하는 사람들은 무늬 하나 보고 한마를 사는데 단종 된거 서비스하면 좋잖아."
친절한 그녀, 나를 단골로 잡았다.
파리의 푸낙 서점 아동물 코너에서 책을 고르다가 다리가 아파서 쭈그리고 앉았다.
한참 책을 고르고 있는데 정복을 입은 젊은이가 다가와 뭐라고 말했다.
나는 비닐봉지 속의 헝겊책을 꺼내보지 말라는줄 알았는데
목소리를 높이며 일어나라고 손동작을 했다.
그때 키 크고 마른 대머리 아저씨가 나타나서 젊은이를 혼냈다.
그리고 나한테 종이 박스를 내주면서 편히 앉아서 고르라고 몸짓을 해줬다.
그래서 내가 엄지를 세우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우리동네 7723버스 헤드셋 기사 아저씨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뿐만 아니다. 러시아워가 끝난 한가한 시간이면 승객들과 이야기도 한다.
“맨 뒷좌석 손님, 더우세요? 에어컨 켤까요? 어떠세요. 추우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책에서 읽은 건데요. 우리가 먹는 물 있잖습니까?
그 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면 물의 결정이 별처럼 예쁜 모양으로 변한데요.
“노인분들이 차를 놓칠까봐 뛰어 오시는데 그럴 땐 뒷문으로 타셔도 됩니다. 기다려드리니까 서두르지 마세요.”
노인들에게 버스는 대중교통이 아니었다.
굼뜨게 오르내리다간 집안에 처박혀 있지 왜 돌아다니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노인이 차를 타려고 하면 차문을 닫아버리는 기사를 여럿 보았기에 아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언젠가 시간에 쫓겨 뒷문으로 올라탔다가,
“아줌마! 뒷문은 내리는 문인 거 몰라요!“ 하고 무안을 당한 적이 있는 나는 더욱 감동을 먹었다.
그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생명을 맡긴 승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의무를 다하는 중이었다.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아는 진정한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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