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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문득 돌아보니 한 순간

인형의 집

325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멀리 가는 향기 2012. 8. 20. 13:35

 

 

낙찰 받은 인형이 도착했다. 관세 까지 물었으니 몸값이 만만치 않다.

 

 

 

"한번만 읽어 주세요" 

 

                                    -마가렛 미첼 인형

 

스물여섯이던 그 해 마가렛 미첼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오 년이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어야 했다.그녀는 딱히 할 일도 없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취미로 쓰기 시작했지만 점점 심혈을 기울였고마침내 십년이나 걸려  소설을 완성했다.
그녀는 두툼한 원고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다.그러나 무명작가의 소설을 선뜻 받아줄 출판사는 없었다.
그렇게
칠 년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가자그녀의 원고는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닳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한 지방신문에"뉴욕에서 제일 큰 출판사 사장이 애틀란타에 왔다가 기차로  되돌아간다."

 짤막한 기사가 났다.

                    

 



그녀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원고를 들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맥밀란 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이막 기차에 올라타려던 중이었다.그녀는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사장님, 제가 쓴 소설입니다. 꼭 한번 읽어주세요."

그는 마지못해
원고뭉치를 들고 기차에 올랐다.그러나 그는 원고 뭉치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재빨리 기차역을 빠져나가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얼마 후 기차 차장이 그에게 전보 한 통을 내밀었다. 그 전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번만 읽어주세요."
그러나
그는 원고뭉치를 한 번 흘깃 쳐다볼 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얼마 후 똑같은 내용의 전보가  배달됐다.
그래도 그는 관심이 없었다.

다시 세 번째 전보가 배달됐다.
그때서야그는 그녀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르며 원고뭉치를 집어 들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
승객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그는 원고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출간된 소설이 바로 이십 칠 개 국어로 번역돼 천 육백만 부가 판매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이렇듯 자신의 꿈을 이루고 그 꿈을 인정받는 데는참으로 많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   클라크게이블과 함께한 미첼여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화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부 조지아 주 타라 농장의 딸 '스칼렛'이, '남북 전쟁'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모든 것을 빼앗기는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생각을 의연하게 추진해가는 '레트 버틀러'의 이야기다.

 

 

 

 

 

                                                                                   - 퀼트로 만든 벽걸이와  영화포스터

                           

그 유명한 '애틀랜타가 불타는 장면'을 찍을 때는 약 12ha나 되는 촬영장을 불태웠고,

 할리우드의 테크니컬러(Technicolor) 카메라 7대를 모두 동원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가 되었으며,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8개 부문에서 상을 탔으며, 거기에 명예상 2개까지 추가했다.

 

 

                                                                                               -<바람과함께 사라지다>관련 수집품들.

 

 

  깜찍하고 애교스러운 연기는 오직 비비안 리만 가능한 연기력이었고

 

그녀를 스칼렛 오하라 배역을 위해 스카웃한 데이비드 셀즈닉의 안목과 예상은 적중했다.

크라크 게이블과 더불어 호흡을 멋지게 맞추며 정열적으로 연기를 펼친 그녀로 인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불후의 걸작이 되었고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첼'은 '여성의 섬세함'으로 사랑을 좇는 젊은 여성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정확히 잡아냈다.스칼렛은 젊고 아름답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냉혹함, 탐욕스러움, 오만한 자신감이 넘친다.가업을 위해 그녀는 '사랑과 결혼'을 거래하고 세 변의 결혼을 하지만 한번도 진심에서 우러난 결혼은 없었다.나중에야 그녀가 늘 잊지 못하던 애쉴리는 무능하고 약하며, 오히려 자칭 자신과 같은 부류라던 버틀러가 사랑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그리고 자신의 고향 '타라'에 대한 깊은 사랑과, 정열적인 스칼렛의 인생 스토리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영화 베스트 원이 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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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본명은 비비안 리 하틀리이며, 아버지는 인도에서 활동하는 사업가였다.
5세때 영국으로 귀국한 후, 파리 꼬메디 프랑세즈에서 연극을 배우고 런던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공부를 하였다.
1934년 여학생 역으로 영화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무대와 영국과 미국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연극무대는 에시노어에서 공연한 1937년 <오필리아>가 대표적이며, 그녀의 영화는 1945년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1948년<안나카레리나>에서 연기를 하였으며,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 역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후 대부의 말론 브란도와 함께 출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등으로 수년가 정상급 배우로
활동하던 중 1940년 로렌스 올리비에와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결핵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1959년 이혼을 하였고, 1967년  53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비비안 리는 얼굴을 찡그리기는 커녕 활짝 웃으며 인사한 뒤

경쾌하게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비비안 리가 문을 막 열고 나가려는 순간 감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잠깐! 잠깐만요! 미소, 당신이 조금 전에 지은 바로 그 미소와 표정을 다시 한 번 지어 보세요"

그렇게 해서 비비안 리는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발탁되었다.

오디션에 떨어져 실망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시무룩해지기는 커녕 활짝 웃으며 등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감독은 스칼렛 오하라를 본 것 이다.
모든 것을 잃고서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거야!”라며 당당하게 일어서던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과
오디션에 떨어지고도 활짝 웃는 비비안 리의 모습이 닮은꼴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 의상들과 악세사리가 들어있는 옷장

 

 

 

 

 

 

 

 

 

 

 

 

 

 

 

 

 

스칼렛의 아버지와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