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3일 남서울미술관의< 인공정원>전을 관람했었다
<인공정원>에 대한 내 선입견과 호기심이 무너진 탈 장르의 전시였다.
뉴미디어 아트, 사운드, 건축들이 융합한 낯선 전시는 영국 벨기에 일본 오스트리아 인도 등지에서 횔동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되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이 인도출신 작가인 랑비르 칼레카(Ranbir Kaleka)의 Forest(2012)였다.
회화와 영상의 결합이라는 매체의 이질적 특성을 바탕으로 현실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시공간을 창조했다.
작품의 줄거리는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 인도인의 삶이나 이주 노동자 문제 등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나는 소리없이 영상으로 흘러가는 장면들을 바라 보면서 수세기를 흘러온 인간들의 삶,그들의 역사를 생각했다.
우리들 삶의 역사는 미래를 내다 볼 것도 없이 지금 현세에 여지없이 망가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숲이 만든 책은 자연이 황폐해짐과 동시에 불타버렸다. 섬뜩한 일이다.
이 영상이 오래 도록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스스로 경각심을 일으켜야 하는데 미술관은 한산했다.
유럽여행할 때 부러웠던 점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많다는거였다.
특히 유치원부터 학생 단체 관람객은 자주 눈에 띄였다.
프랑스인들이 어려서부터 감성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익히 알고있었다.
여행 중에 곳곳에서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적극 활용했다. 바닥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진지했다.
프랑스인들의 유아교육의 80프로는 미술관련 수업이다.
집에서는 아이들이 언제라도 그림을 그릴수있도록 벽에 보드지나 종이를 붙여놓고,
집안가득 공작재료들이 널려있단다.
아이들은 그림그리기를 통해 글씨를 배우고 공작수업을 통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운다.
3-4세가 되면 시를 읽어주는데 공책에 시나 동요를 프린트해서 붙이고
다른 한쪽에 그것을 읽거나 부르면서 떠오른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게 한다.
열살 때 서울로 전학와서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꾀병으로 결석을 일삼던 나를
아버지는 무용학원으로 데려가셨다. 몸치인 내가 적응을 못하자 아뜰리에로 이끄셨다.
여름방학 내내 아뜰리에서 그림을 그렸고 스케치북 한 권을 방학 숙제로 냈다.
개학후 첫 월요일날 신발장 위 액자에 내 그림이 담긴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 뿐만 아니다. 교실 뒤 우리들차지에 내 그림이 몽땅 걸린 것이다. 그날의 감격을 잊을수가 없다.
담임 선생님이 왜 그러셨을까 놀랐는데 나는 이제 선생님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그림과 문학을 애호하게 된 것도 일찌기 감성교육을 해주신 아버지 덕분이다.
나는 직업상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공무원들이 가장 비감성적인 사람들이었다.
특히 비감성적인 교사와 대화를 할 때 답답할 때가 많았다.
교사들이 감성적이지 못한 것에 늘 의문을 가졌다. 왜 그럴까?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 가면 화첩으로 보던 명화들을 대면하는 행운도 생긴다.
나는 로코코시대의 화가 비제 르브룬을 좋아한다.
그녀가 앙뚜아네트 왕비의 총애를 받으며 궁정인물화를 그리기 까지 여성작가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지만
남성 화가들의 질시와 음모를 꿋꿋하게 버텨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야 어려운 난관도 견뎌낼 수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은 감성 교육에 힘쓰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다.
<딸 줄리를 안은 비제 르브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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