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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시

385회 민현숙을 보내고

멀리 가는 향기 2013. 1. 17. 19:26

                          -민현숙 시인의 영면을 빕니다

 

해님이 가는 곳

 

가시나무라 해서

햇살이 피해가는 것 보았니?

보잘 것 없는 풀 위에

눈곱만한 꽃이 핀다고

눈곱만한 해가 드는 것 보았니?

 

썩은 물  쏱아지는 하수구 옆에

이마를 찡그린 시궁쥐를

언제 또 본 것일까?

 

쏟살같이 달려가

젖은 발 감싸 안는 해님.

-     민현숙 (1958.3.12- 2013.1.17)

 

 

 

 

민현숙 시인과 나는  몽아동문학상 10회 동기다. 박재형 선생이 장편동화부문, 내가 단편동화 부문, 민현숙이 동시 부문을 수상 하면서 1991년에 인연을 맺었다.

그 날 문삼석 선생님께서 소천 아동문학상을 타시면서 계몽아동문학회가 발족이 되었다.

 

이날 원로 선생님들 모시고 사진을 찍는데  수상자들이 엉거주춤 앉게 되었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민현숙이 난감해 하기에 내가 치마를 펼쳐 덮어주었다. 그 일로 민현숙은 나를 언니 삼아 따랐다.

 

 

 

 

홍천에 있는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았고 그녀가 서울 오빠 집에 올 때 잠깐씩 얼굴 마주하기도 했다.

그녀는 글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서  자신의 글에 그림을 그린 동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녀의 편지를 보면 반듯한 성격이 여실이 드러난다. 여리고 감수성 많은 그녀는 문단 선후배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7년  우리는 나란히 대산문화재단 창작 기금 수혜자가 되었다.

 

 

이십년 넘게 계몽 회원들이 일 년에 두 번 문학기행을 하고 총회를 가졌지만 그녀가 참석한 횟수는 너댓 번 뿐이다.

그녀는 가리는 음식이 많고 잠자리가 바뀌면 고생을 할 정도로 예민해서 그러했다.

그러니까 남들 흔히 가는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고 미혼 인 채 홍천 개구리로 살다 갔다.

 

하느님은 어쩌자고

 

하느님은 어쩌자고

독버섯 같은 인생은 가만 놔두고

가녀리고 향기로운 꽃만 쏙쏙 뽑아가는걸까?

 

내가 하느님이라면

독버섯이나 집초만 뽑아다가 가차이 두고

불쌍히 여겨 어루다독이며 꽃 피우게 할텐데.

그리하여 이 세상과 저세상 모두 꽃밭으로 만들터인데

 

하느님은 어쩌자고 저 세상만 가꾸시는걸까?

슬픔 많은 이 세상은 어쩌라고 .

 

 

그녀의 부음을 문자로 받고  한동안  멍했었다.

갑자기 왜? 교통사고였나?

 

먼저 조문을 다녀온 후배들을 통해 그녀가 암투병 중이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남이 알까 두려워 했다고 한다.

항암 수술이후 1월 1일 재 입원해 있는 동안 복수가 차올라 가족을 부르라 했다는데도

남에게 구차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어제 낮에 홀로 눈을 감은 것이다.

 

홀로 백의종군하던 병마와의 전투는 끝났다.

그녀가 승리 한 것이다.

눈 감는 순간  맞이한 평화.

더 이상 참혹한 고통도 눈물도 없으리.

눈 감으면 그만인 세상, 허망하고 덧없다.

애통과 회한은 뒤에 남은 자들의 몫일 뿐이다.

 

 

 빈소에서 그녀의 올캐가  "낯이 익다"고  누구시냐고 물었다.

그녀가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나는 나대로 은둔자처럼 지낸 그녀를 서운해 한 일이 미안코 어찌그리  무심했나 자책했다.

 

정정하신  90노모와 작은 오빠가 두런두런 이야기 끝에. 열두명 다녀간 조문객 명부를 보고 말했다.

"문삼석 이 양반도 귀에 익고, 김향이는 유명작가라던데 언제 다녀갔나? 멋쟁이라던데 왜 못 봤지?"

오빠랑 올캐가 이름을 기억할 만치 내 이야기를 많이 했으면서 그 고통 홀로 견뎌냈는지... 못나도 한참 못났다.

그동안  살가운 언니노릇  해주지도 못하고 아까운 동생 하나 잃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얹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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