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범진 조선pub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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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때부터 인형을 만들고 수집해온 김향이 작가.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인형을 ‘액막이’로 여겼어요. 집안에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니까, 인형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안된다고 금기시했지요. 구한말까지 인형은 대부분 한풀이나 저주의 대상으로 사용됐을 뿐이예요. 조선시대의 인형이 매우 드문 것은 그래서입니다.”
‘달님은 알지요’로 유명한 동화작가 김향이(62)씨는 인형에 대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달님은 알지요’는 무려 60만부가 팔린 베스트 동화. ‘쌀뱅이를 아시나요’ ‘내 이름은 나답게’ ‘우리 할아버지입니다’ 등 78권의 어린이 책을 쓴 그는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동화작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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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이 작가가 수집한 조선시대 인형.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작가로 유명한 그에겐 지난 55년간 꾸준히 해 온 일이 하나 있다.
인형을 갖고 노는 일이다. 일곱 살 때부터 직접 바느질을 해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형 콜렉터. 세계 각국의 인형 1300여점을 테마별로 소장하고 있는 작가의 서울 구파발 자택은 거실, 방, 주방, 베란다 등 곳곳이 온통 인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김 작가를 1월 21일 만났다.
“헬렌 켈러 여사가 1930년대 동경을 방문했다가 서울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사를 보면 헬렌 켈러 여사에게 한국 인형을 선물로 주었답니다. 그 당시 마땅한 조선 인형을 구할 수가 없어 일본 인형에 한국 복장을 입혀 선물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배상명이란 사람이 매우 안타까워 했는데 훗날 그가 한국 인형전시회를 엽니다.”
김 작가는 기사에 등장하는 배씨에 대해 “아마도 상명대학교를 설립한 그 배상명씨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와 달리 서양에선 인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습니다. 특히 유럽 귀족 집안의 여자아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인형의 집’이라고 해서, 실물의 1/12로 크기를 줄여서 집은 물론, 그 집에 사는 사람, 식탁, 그릇, 의자, 침대, 선반, 찻잔 등 살림살이를 모두 갖춰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 대유행이었어요. 이런 인형의 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영국 앤 여왕의 것인데요, 5층으로 지어진 성 안에 궁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하 주차장과 주차장에 들락거리는 자동차까지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가는 “1900년대 초반, 서양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오고 교류가 잦아짐에 따라, 선물용으로 인형을 찾는 서양인들이 늘어났다”며 “수요가 생김에 따라 우리 복식을 갖춰 입은 우리 인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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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의 조선시대 인형. 김향이 작가 소장.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그런데 그 정교함이 예상을 뛰어넘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노론이냐 소론이냐에 따라 여성 쪽두리의 형태가 달랐어요. 노론은 중앙이 오목하게 들어가고 소론은 봉긋하게 올라온 모습을 했는데, 그게 인형을 봐도 그렇게 돼 있어요. 당시의 조선 인형은 속치마는 물론 고쟁이, 치마, 저고리에 버선과 당혜(궁중 여인이 신던 신발)를 신고, 노리개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 양반집 규수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인형이 입고 있는 한복은 손바느질을 해서 비단으로 만든 거예요. 이렇게 정교한 인형을 서양인들이 귀국할 때 사다가 아이들에게 선물한 겁니다. 그걸 서양 골동품상이 매집해서 경매에 부쳤어요. 그 경매를 통해서 제가 구입한 거죠. 100년 만에 이들 인형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겁니다.”
김 작가는 “당시 세계 12대 인형에 조선 인형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웠으면 그랬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1923년 런던서 발표한 '세계의 인형(World of Doll)'에는 대표적인 세계 인형 12점이 포함됐는데, 조선인형도 그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 인형이 그 틈을 타고 들어왔어요. 분명히 인형 얼굴은 일본인의 얼굴인데, 복장만 우리 한복을 입힌 인형들이 나오기 시작한거죠. 일본은 우리와 달리 1600년대부터 서양과 교류를 시작했잖아요. 그래서인지 인형에도 서양식 제조 기법이 일찌감치 도입됐어요. 우리는 1900년대까지 손바느질을 했는데, 일본 인형은 미싱으로 박음질 한 옷을 입고 있었죠. 그렇게 만든 인형을 그때부터 관광 상품으로 팔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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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여행기의 한 장면. 인형 수집가인 김 작가와 미술 디자이너인 동생 김준씨가 함께 만들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조선인형 뿐이 아니다. 김 작가는 세계 각국의 인형 박물관, 중고시장, 벼룩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형을 수집했다. 그렇게 수집한 인형들로 안데르센 동화, 피노키오, 걸리버 여행기 같은 동화의 한 장면을 여럿 꾸몄다. 뿐만 아니다. ‘선녀와 나뭇꾼’ 같은 전통 이야기와 자신의 대표작 ‘달님은 알지요’의 한 장면도 인형으로 연출했다. 인형극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생생하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하고 싶어요. 동화 속 한 장면을 재연해 놓으면 그 동화책을 읽은 아이들은 금방 압니다. 아, 이거 무슨 동화의 어느 장면이야 하고 말이예요. 인형으로 연출한 장면 옆에는 설명판을 붙여놓았지요. 작품 해설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여서 말이죠. 그렇게 전시실 한바퀴를 주욱 돌고 나면, 머릿속에 세계명작의 장면 장면이 속속 새겨지겠죠? 그럼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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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가 수집한 1900년대 제페닝 케비넷에 꾸민 '인형의 집'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이야기는 김 작가의 ‘꿈’에 관한 것으로 넘어갔다.
“스위스에 가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마을’이 있어요. 동화에 등장하는 하이디의 집이 있고, 클라라가 타고 다녔던 휠체어가 있고, 그 휠체어를 버린 장소가 있어요. 어린이들은 그곳에서 하이디를 읽고 토론하며 꿈을 키우죠. 하이디처럼 숲 속을 뛰고 거닐며, 동물과 대화를 나눠봅니다. 작가인 요한나 슈피리의 삶도 살펴보고, 동화 속의 장면을 직접 연출해 보기도 하죠.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시설이 없을까. 그런 시설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일종의 동화 나라죠. 온 가족이 함께 머물고 즐기며 꿈을 키울 수 있는, 그런 꿈의 나라를 만들어보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