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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김향이의 블로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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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강연

640호 목사리 삼시 세끼

멀리 가는 향기 2015. 3. 19. 11:48

 

 

가을 선생님이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 오셨다.

월요일 오전 동대문 시장에서 가을 선생님을 만난 우리는 바느질에 필요한  천과 재료들을 사고  대전행 KTX를 탔다. 

 

지난해 11월,  옥천으로 이사를 하셨다.

자유로운 영혼 가을 선생은 그동안  분당- 상해- 제주도- 용인- 옥천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 먹기도 힘든 일을 이 양반은  거침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신다.

 

<소공녀> <<비밀의 화원>등 명작을 남긴 루이자 메이 올코트도 삶이 지루해지고  글감이 떨어지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영국으로 이사를 다녔다.

상상해 보시라. 그 당시는 배편으로 한달여 씩 이동을 해야 했으니...............

 

대전 역에 내리자 마자  역 근방 중앙 시장으로갔다.

푸성귀를 사고 (가을 선생은 노점 상인 물건 값은  깎지 않고 물건도 조금 받는다)

장대라는 생선을 샀는데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본 생선이었다. 맛이 기가막히다 셨는데 한 마리에 만원이나 했다. 

버스 타러 오다가 노점상에게서 다슬기를 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강식)

옥천에서 목사리 집까지 택시를 이용했는데 택시비 깎아주겠다는데 냅두라고 실랑이하는 인심은 첨 보았다.

 

그날 저녁은 된장 다슬기국 과 장대 양념 조림( 살을 바르고 남은 머리와 꼬리에 양념장을 발라 조렸다)

건강한 만찬으로 포식을 하고도

밤에 여행 다큐 보면서 까먹고  다음날 아침 먹고 까먹고. 결국 소화가 안돼서 밤잠을 설쳤다.

 

 

아침은  곡물 빵, 달걀 프라이, 물에 삶은 소시지, 야채를 요플레에 찍어 먹고 황차를 마셨다.

상해 시절부터 시작 된  가을 선생 아침 식사스타일이다.

 

아침 식사 후에 동대문 시장에서 끊어 온 천 펼 쳐 놓고 가을 선생 치마를 재단했다.

바느질은 선생님이  알아서 하실거라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의 화단에 수선화 튜립. 수국. 상사화 . 물망초들이 삐죽삐죽 나왔다.

왼쪽은 채마밭으로 오르쪽은 화단으로 안성마춤이었다.

집안밖을 휘 둘러 보고나서 손을 걷어 부쳤다. ( 친한 지인들 집에 가면 으레 나오는 버릇이다)

 

"뭐 하슈?"

선생님도 뒤나라 나오셨고 둘이 합심해서 허섭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아사 올 때는 말도 못하게 심란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겨우내 말린 무시레기를 삶고

 

 

나는 허섭쓰레기를 걷워다가 태웠다.

이웃 집 할매들이 오다가다 들여다 보고 참견을 했다.

"놉 얻었슈?"

 

 

 마당 풀 뽑고 어지러진 살림살이 정리하고 나니 2시가 넘었다.

 

훤해진 마당 내다 보면서 가을 선생님이 차린 건강한 밥상을 받았다.

책 읽다가 낮잠 한숨 달게 자고 나니 저녁 때가 되었다.

 

푹 삶은 시레기 넣은 닭계장에 장대 구이 만찬.

 이날 평생 처음 먹어 본 장대가 어찌나 맛나던지.

 

TV프로 <삼시세끼> 촬영장에 손님으로 출연한 거나  다름없었다.

빗소리에 새벽 잠을 깬 가을 선생이 비료 푸대를 비닐로 덮어 놓고.

아침 9시 손님을 맞았다.

가을 선생 펜들이 야생화 들고  픽업하러 찾아온 것이다.

 

매발톱 빛깔이 곱기도 하다. 때맞춰 내린 봄비에 잘 자랄 것이다.

 

계룡문고 이동선 사장을 따라 월평2동 노인정으로 왔다

영구 임대주택에 사시는 독거노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온 것이다.

 

김동성이 그린 <고향의 봄/ 파랑새>넘기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심란한 어르신들이 신바람 나셨다.

<정신없는 도깨비> 이야기에 얼굴에 활짝 웃음꽃 피우고

머리 허연 할매가 뭔 얘길 하려나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가을 선생님이 <쪽매>를 익자 중간 중간 추임새 넣으며 집중을 하고

 

나는 농사꾼이셨던  외할아버지가 사랑방에 마을 사람들 모아 놓고 책 읽어주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외 할아버지 이야기밥을 먹고 자란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76살 용띠 할매 가을 선생이 또래거나 언니뻘 되는  할매들과 함께 웃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가 살아온 길이 보인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할매들의 표정을 살폈다.

얼마나 삶이 신산스러웠으면 웃음을 잃어버렸나 싶은 분도 있었다.

 

 

이동선 사장이 이 날 읽어드린 책에 싯귀를 적어 선물했다.

 

가을 선생이 이사를 오니까 목사리 할매들이 기웃기웃 집구경을 오셨더란다.

"뭔 책이 이렇게 많대요? 이 걸 다 읽었슈? 학자신가 보네."

차 대접을 하고 그림책을 읽어드렸더니

"우리 하고 수준이 안 맞어 못 겄네. 우리는 고스톱이나 해야지."

하고 내빼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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